사랑, 그리고 배움
글쓴이 : 김의숙     첨부파일 :       날짜 : 02-11-12    조회 : 2198
1970년대 후반 《죽었다 깨어난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희한한 제목의 책 한 권이 등장하였다. 이 책은 임상학적으로 완전히 죽어서 흰 천으로 덮었으나 얼마 후에 다시 살아난 환자들의 영적(靈的) 체험을 기록한 것으로서 미국 버어지니아대학 병원의 정신과 의사인 레이먼드 무디 박사가 펴낸《Life after life》에 대한 번역본이다. 이 책에서 무디 박사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들 수십 명을 수소문하여 일일이 찾아가 인터뷰한 것을 정리하여 보고하고 있는데, 각자의 진술 내용이 매우 유사하고 일관성이 있어서 믿기에 족하다.      
  교통사고를 당한 40대 남성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차가 언덕으로 굴러서 크게 다친 남자가 병원으로 옮겨져 응급처치를 받았으나 심장 박동이 멈추었으므로 몸이 흰 천으로 덮이었다.
그때 알 수 없는 어떤 힘이 육신으로부터 영혼을 분리시키었으므로 영혼은 병원의 천정에서 처참하게 일그러진 육신을 내려다 볼 수 있었다. 육신을 부여잡고 울부짖는 아내의 모습도 보였다.
이내  영혼은 공간을 투과하여 무한히 비상하였다. 그 과정에서 영혼은 역대의 조상들을 모두 만나 회포를 풀었다.
그리고 다시 비상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과거가 활동사진처럼 펼쳐지는 것을 보았으며, 잘 한 일이 나타날 때는 지극히 행복했으나 잘못이 보일 때는 부끄럽고 괴로웠다.
또다시 영혼이 공간을 투과하여 갔는데 그 과정에서는 두 가지의 물음이 묵직하게 눌러왔다. 하나는 얼마나 생명을 사랑했는가? 그리고 하나는 얼마나 배워 알고 있는가? 끊임없이 밀려오는 물음에 고뇌스러워 하던 그때에 강렬한 어떤 빛의 에너지에 의해 영혼은 되돌림을 받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병원에 이르렀고, 그 어떤 알 수 없는 힘이 부서진 육신으로 영혼을 밀어 넣었다. 그래서 깨어났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도 '보았다' '깨달았다' 느꼈다' 등의 서술용어의 표현이 다를 뿐 내용은 상당히 유사하다. 게다가 제보자들이 한결같이 고백하는 '사랑'과 '배움'이라는 두 가지의 물음이 주는 '맺힘'에 대한 언급도 동일성을 지닌 것이어서 신기하다.
특히 이 부분을 조심스럽게 살펴보면 사랑과 배움이 우리 인생의 목표임을 분명히 시사하고 있어서 귀중하다.
모든 사람들은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는 사랑을 베풀거나 인내하지 못하고 폐해를 끼친 것을 후회하면서 죽어간다. 노인들에게, '다시 젊어진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으면 대개가 서슴지않고 '공부를 열심히 해보고 싶다.'고 말한다. 즉각적으로 그런 대답이 나오는 것은 그런 의식이 가슴에 맺혀있기 떄문이다.
  맺힘이 깊으면 그것이 한(恨)이 된다. 한은 맺혀있기에 무게가 있어서 영혼을 짓누른다.「죽었다가 깨어난 사람들」을 가슴앓이하게 한 질문도 그것이 한으로 맺혀있기 때문이다.
후회스럽지 않은 인생을 살기 위해서 생명에 대한 사랑을 키워야 하고, 특히 젊은이들은 열심히 진리를 탐구하여야 한다.
십여년 전에 필자가 폴리네시안 문화를 연구하기 위해 하와이에 머물고 있을 때 노인회의 초청을 받아 강연회를 가진 바 있었다.
강연이 끝나자 청중들은 다 돌아갔으나 박씨 성의 70대 할머니 한 분이 교실에 남아서 청소를 하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 이유인즉 한 시간 후에 열리는 '이민자를 위한 기초영어' 시간의 공부를 위해서라고 한다. 그때 필자는 황당한 질문을 하였고 그 분의 대답을 듣고는 스스로 매우 부끄러웠다.
연세도 많은데 왜 늦게 영어를 배우시냐고 여쭸더니, 한국에서는 형편이 안 돼 영어를 배우지 못해 이곳에서 고생하고 있는데 지금 배워두어야 다음 생(生)에라도 고생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배움에 대한 할머니의 열정과 '생 뒤의 생'(Life after life)을 준비하는 웅장한 스케일의 인생관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젊은이들은 훗날의 평안한 영혼을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풍요로운 삶을 위해 배움을 향한 박씨 할머니의 열정을 본받았으면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 가지 더 명심할 것이 있으니 곧 마하트마 간디의 당부 말씀이다.        
      
  『하늘에서  그리고 다른 나라에서 불어오는 바람, 어디서 불어오는 바람이라도 당신들은 마음과 정신의 창문을 열어 두어라. 그리고 그 바람으로부터 배워라. 그러나 그 바람에 자신을 날려버려서는 안 된다. 언제나 발을 튼튼히 땅 위에 딛고 있어야 한다.』

(강원대 국어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