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불교 설화
글쓴이 : 김의숙     첨부파일 :       날짜 : 02-07-05    조회 : 1929
화엄시조(華嚴始祖) 의상대사


  의상대사(義湘大師)는 신라 후기의 승려로서 아버지는 한신(韓信)이요, 성은 김씨이다.
그는 나이 29세에 서울 황복사(皇福寺)에서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었다.
스님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중국으로 가 법을 구하고자 하였다.
그래서 원효(元曉)와 함께 요동 변방으로 갔는데,
거기에서 변방의 순라군에게 간첩으로 잡혀 갇힌지 수십일만에 겨우 풀려서 돌아왔다.

그때의 이야기가「해골물 사건」으로 구비전승한다.

  곧 둘이서 당나라로 들어가는 길에 비가 와서
처음에는 토감(土龕) 곧 진흙동굴에서 잠을 잤다.
다음에는 분묘굴에서 잠을 잤는데 무덤이라는 번뇌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 일로 해서 원효는 깨달음을 얻어 당나라에 가는 것을 그만 두었다.
그때 원효가 깨달음을 노래한 오도송(悟道頌)이 전해 오는데,

   心生故種種法生      마음이 일어나니 갖가지 번뇌가 일어나고
   心滅故龕墳不二      마음이 고요하니 토감과 무덤이 하나일세
   三界唯心萬法唯識    삼계는 마음의 표상일뿐이요 만법 또한 생각일 뿐이니
   心外無法胡月別求    마음 밖에 법 없으니 어찌 달에게서 달리 구하리오


  의상대사는 중국에서 법을 얻은 후에 고국으로 돌아와
전국 10곳에 화엄종의 사찰 10개를 건립하고 702년(성덕왕 1년)에 세수 78세, 법랍 49년으로 입적하였다.

고려의 숙종은 의상에게 해동화엄시조(海東華嚴始祖) 원교국사(圓敎國師)라는 시호를 내렸다.

  의상은 영휘(永徽) 초년(650)에 당나라 사신이 마침 배를 타고 본국으로 돌아가므로 그 배를 타고 중국에 들어갔다.

처음 종남산 지상사에 가서 지엄(智儼)을 뵈었다.

지엄선사는 그 전날 밤 꿈에, 큰 나무 하나가 해동에서 났는데 가지의 잎이 널리 퍼져서 중국에까지 덮였고, 가지 위에 봉황의 집이 있어서 올라가보니 마니보주(摩尼寶珠)가 빛났다.

꿈에서 깨자 놀랍고 이상스러워 집을 깨끗이 소제하고 기다리는데
의상이 오므로 지엄은 특별한 예로 맞이하면서 말했다.

  '내가 꾼 어젯밤의 꿈은 그대가 내게 올 징조였구려.'

  이에 입실(入室)할 것을 허락하니
의상은 화엄경의 깊은 뜻을 자세히 해석했다.

지엄은 학문을 의론할 만한 상대자를 만난 것을 기뻐하고,
새로운 이치를 터득해 내었다.

  이때 본국의 승상 김흠순(또는 仁問)과 양도 등이 당나라에 갇혀 있었는데,
고종이 장차 군사를 일으켜 신라를 치려고 하므로
의상을 권하여 먼저 돌아가게 하니 함형(咸亨) 원년 경오(670)에 본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당나라의 일을 조정에 알리자 나라에서는 신인종(神印宗)의 고승 명랑(明朗)에게
명하여 밀단(密壇)을 가설하고 비법으로 기도해서 국난을 면하였다.  

  의봉(儀鳳) 원년(676)에 의상은 태백산에 들어가서 조정의 뜻을 받들어
부석사를 세우고 대승(大乘)을 펴니 영험이 많이 나타났다.

그리고 영(令)을 내려 열 곳의 절에서 불교를 전하니 태백산의 부석사, 원주의 비마라사, 가야산의 해인사, 비슬산의 옥천사, 금정산의 범어사, 남악의 화엄사 등이 그것이다.

또 <법계도서인法界圖書印>과 <약소略疏>를 지어서 일승(一乘)의 요점을 모두 기록하여
천년의 본보기가 되게 하였으니 이를 여러 사람이 다투어 소중히 지녔다.
이밖에는 저술한 것이 없었으니 온 솥의 고기맛을 알려면 한 점의 살코기로도 족한 것이다.

<법계도>는 총장(總章) 원년 무진(668)에 완성되었으며,
이 해에 지엄도 세상을 떠났으니 이것은 마치 '공자가 기린을 잡았다'는 구절에서 붓을 끊은 것과 같다.

      
  세상에 전하는 말에 의하면 의상은 금산보개(金山寶蓋)
곧 부처의 화신이라고 한다.

의상의 제자 오진(悟眞)은 일찍이 하가산의 골암사에 살면서 밤마다 팔을 뻗쳐서 부석사 석등에 불을 켰다.

또  표훈(表訓)은 일찍이 불국사에 살면서 항상 천궁(天宮)을 왕래하였다.

의상이 황복사에 있을 때 여러 무리들과 함께 탑돌이를 하였는데 항상 허공을 밟고 올라가 층계는 밟지 않았으므로
그 탑에는 사리를 설치하지 않았다.

그 무리들도 층계에서 3척이나 떠나 허공을 밟고 돌았기 때문에
의상은 그 무리들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세상 사람들이 이것을 보면 반드시 괴이하다고 할 것이다.
그러니 그들에게는 가르치지 못한다.'  

[삼국유사, 권4, 5의해, 의상전교 義湘傳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