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장사 수미단
글쓴이 : 학예실     첨부파일 :       날짜 : 13-12-23    조회 : 1849

  우리가 법당 안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세 분의 부처와 보살을 마주하게 된다. 법당 내부는 탱화ㆍ벽화ㆍ닫집 등으로 장식하여 부처님이 계신 세계를 화려하게 장엄하고 있다. 이 가운데 한눈에 시선을 끌진 않지만 부처님이 앉은 자리를 더욱더 빛내주는 것이 있으니 대좌臺座 아래에 장방형의 나무로 된 수미단須彌壇이다. 부처님을 모시는 단을 일반적으로 불단 혹은 수미단이라고 하는데, 이 수미단 위에는 불상을 모시거나 때로는 불사리가 안치되고 예불과 의식에 필요한 공양구인 향로, 촛대, 화병 등이 놓인다. 현재 사찰에 전래되는 조선시대 수미단은 대개 17~18세기 작품으로 70여 점 정도가 남아 있다.

  이 달의 문화재로 소개할 남장사 수미단(도 2)은 법당에 고주高柱와 후불벽 없이 독존을 봉안한 소형 수미단의 대표적인 예이다. 본고에서는 수미단이 제작된 유래와 우리나라의 수미단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들을 살펴보고, 남장사 수미단을 통해 조선시대 소형 수미단이 갖는 특징을 살펴보고자 한다.



  ‘수미단’은 불교의 우주관에 입각한 세계의 중심에 우뚝 솟은 거대한 산, 곧 수미산의 명칭에서 유래하였다. 『장아함경長阿含經』, 『대지도론大智度論』같은 불교 경전을 보면 불세계의 중심을 상징하는 수미산에 대한 설명과 묘사를 찾을 수 있다. 수미산을 아래가 좁고 위가 넓은 ‘상광하협上廣下狹’의 모습이라 하여 구리로 만든 촛대에 비유하고 있다.

  수미단이라는 말은 중국 육조六祖 이후 불교가 유입되고 나서 건축물의 기단 형식에 불좌佛座를 표현한 데서 처음 시작되었다. 유래는 송나라 때 토목건축에 관한 책으로 1097년에 출간된 『영조법식營造法式』의 「수미좌를 쌓아 올리는 규정」에 나온다. 일본의 고대 문헌에서도 수미좌의 구조를 허리 부분이 가는 고복형鼓腹形의 모습이라 하였다. 현재 이런 상광하협의 모습을 한 가장 오래된 대좌는 중국의 유송劉宋 원가元嘉 14년(437) 금동여래좌상金銅如來坐像의 대좌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구려 장천 1호분 벽화의 여래좌상을 비롯하여 시기적으로 차이는 있지만 고려시대 장곡사나 고달사지의 대좌(보물 제8호)에서 확인할 수 있다. 또 고려시대 법당의 모습을 압축해서 표현한 금동삼존불감(국보 제73호)에서는 고복형의 형태를 지닌 수미좌의 모습이 처음으로 등장하며, 고려불화에서도 상광하협의 틀을 본보기로 한 수미단을 찾아볼 수 있다.

  수미단의 재료는 중국이나 일본처럼 나무나 금속 등으로 수미산 형태의 단을 만들어 기존의 불단과 그 개념이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다가 조선시대 불교 의식의 발전에 따라 물건을 바치는 헌공獻供과 예배를 위한 가구 시설의 변화, 또 불상 장엄을 위한 공양 탁자의 상징성과 기능성이 확대되면서 점차 화려하게 장엄되기 시작했다. 수미단이라는 정확한 명칭이 사용된 것은 근대 이후로 추정되며, 그 이전에는 ‘탁자卓子’라는 용어로 많이 불려졌다. 예컨대 먹글씨로 ‘탁자卓子’라고 쓰인 것도 있고, 각종 화기畵記나 사지寺誌에서도 ‘탁자’라는 이름이 사용된 예가 있다. 탁자라는 것은 지금의 의미와 크게 다르지 않아 물건을 올려놓는 기구, 또는 부처님 앞에 붙박이로 설치해 공양물이나 다기茶器 등을 차려놓은 상을 의미한다. 탁자는 조선 후기 불상 봉안의 기능과 함께 공양을 위한 역할까지 담당하는 실용적 구조물로, 가장 처음 이 용어가 쓰인 곳은 1361년 봉정사 대웅전이다.

  조선시대 이전 시기에는 불전에서 공양과 예불용 법구를 놓기 위해 단 앞에 별도로 놓았던 소형 탁자에 불상 봉안을 위한 대좌가 결합하면서 장엄화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봉정사 극락전, 장곡사 상대웅전, 수덕사 대웅전에서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발달 과정을 거친 수미단은 조선 중기 이후에는 불교의 대중화로 법당의 크기와 예불의 형식에도 변화가 찾아오면서 1651년에 조성된 직지사 대웅전 수미단(도 1)처럼 장방형의 화려한 수미단으로 바뀌게 된다.

  조선시대 수미단의 구조를 살펴보면 크게 상대臺ㆍ중대中臺ㆍ하대下臺로 이루어져 있으며, 중대는 다시 가로 방향의 여러 칸으로 나뉜다. 수미단의 장엄이 한껏 베풀어지는 곳은 몸체에 해당하는 중대이다. 중대를 이루는 청판廳板은 정교하게 나누어진 격간格間 내부에 연꽃을 비롯한 꽃무늬, 상서로운 동물, 동자 또는 악기를 연주하는 비천상과 같은 각종 무늬가 소담스럽게 조각되어 있다.

  























  이 달의 문화재로 소개할 남장사 수미단(도 2)은 불상 봉안을 위해 제작된 소형 수미단의 대표적인 예이다. 이러한 소형 수미단은 현재 개목사開目寺 원통전圓通殿, 현등사, 남장사 등에 3구가 전해진다.

  남장사 수미단은 경상북도 지역 장엄 수미단의 축소판으로, 상대ㆍ중대ㆍ하대를 갖추고 있으며, 중대는 일반적인 4단 형식으로 17세기 초반의 고식 수미단의 특징을 보여준다. 남장사 수미단은 남장사의 중창기인 1635년 정수正修의 금당 중창 이후에 1694년 관음전 관음보살상의 수미단으로 북장사에서 이전된 유물로 추정된다.

 먼저 수미단의 하대를 살펴보면 족대足臺 내 중앙에는 불법佛法을 수호하는 사자 네 마리가 연꽃 가지를 입에 물고 있고, 사자의 좌우에는 국화를 입에 문 용이 자리하여 벽사의 기능을 하고 있다.

  남장사 수미단에서 눈길을 끄는 부분은 겹꽃잎으로 이루어진 앙ㆍ복련 사이의 청판 내부이다. 청판의 전체적인 구조는 4단으로 되어 있고, 수중계와 천상계에 등장하는 서수瑞獸와 화훼문花卉文이 장엄되어 있다. 수미단 장식문양의 기본은 연꽃이 주종을 이루며, 민간에서 길상화로 널리 애호되는 모란, 작약, 국화, 당초, 초화草花 등도 보인다.


  































  















  청판의 내부를 순서대로 살펴보면 가장 아래 부분인 1층에는 보상화문을 중심으로 활짝 핀 연꽃과 봉오리가 어우러진 연밭에 두 명의 동자가 연줄기를 잡고 놀고 있다. 동자는 불교의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를 표현하는 소재로, 본생담에서는 부처님의 전생을 연꽃과 어우러진 동자의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자손번창과 무사태평을 바라는 대중적 염원을 담은 길상적인 의미로 유행하였다.

  연줄기 사이의 물새는 수면에서 헤엄을 치지만 물에 속박되어 있지 않고, 물을 벗어나면 창공을 날아오르는 습성에서 볼 때 불교에서 말하는 무애無礙 혹은 해탈의 의미와도 상통한다 하겠다.

  그 위로 2층에는 여의주如意珠ㆍ당초唐草ㆍ화훼문花卉文을 중심으로 승천하는 네 마리의 용이 있는데 용두龍頭와 용미龍尾를 서로 교합하고 있는 모습이다. 상서로운 동물인 용은 불교적인 의미에서 불법의 수호자라는 상징성을 지니며, 화재예방을 위한 수중세계의 벽사적 의미가 담겨 있다(도 3).

  청판의 상부에 해당하는 3ㆍ4층은 천상의 서수인 봉황이 모란과 국화 등 공양화 사이를 날고 있다(도 4). 봉황은 고대 중국 전설에 나오는 네 가지 신령한 동물 중 하나이다. 중국 고대의 백과사전인 『설문해자 說文解字』나 〈악즙도樂汁圖〉에서는 닭의 머리와 제비의 부리, 뱀의 목과 용의 몸, 기린의 날개와 물고기의 꼬리를 가진 상상의 동물로 표현된다. 불교에서는 극락조極樂鳥로서 용과 더불어 불교를 수호하는 정토세계의 상서로운 동물로 표현된다.



  지금까지 살펴 본 남장사 수미단의 전체적인 장식성은 현실과 상상의 세계에 있는 동ㆍ식물들이 어우러지고, 공간적인 측면에서는 수중에서 천상으로 이동하는 시점으로 표현되어 바라보는 이로 하여금 부처님이 앉아 계신 곳으로 시선을 이끈다.

  수미단은 부처님의 자리를 장엄하기 위해 종교적 열망과 환희심이 녹아 있는 대표적인 불교미술품 가운데 하나이다. 부처님은 오늘도 높은 자리인 수미단 위에 앉아 온 세상의 삼라만상과 중생을 말없이 굽어 살피고 계신다.



장 미(직지성보박물관 학예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