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사 금강령
글쓴이 : 학예실     첨부파일 :       날짜 : 12-11-05    조회 : 2281

금강령 
 
   우리 박물관에는 고려시대에 제작된 금강령이 전시되어 있다. 하지만, 워낙 작은 것이어서인지 관람객들의 큰 관심을 끌지는 못하는 것 같다.  전체가 금강저金剛杵Vajra를 비롯한 종교적 문양과 도상圖像으로 빼곡하게 장식되어 있는 금강령은, 그 의미와 상징성을 알고 보면 무척 인상적인 유물이다. 

   금강령金剛鈴Vajra-Ghanta은 불교의식에 사용되는 중요한 법구의 하나이다. 보통 3가지의 뜻을 담아 사용한다고 한다. 우선, 의식이 행해지는 도량 주변의 악한 기운에게 날카로운 소리를 내어 경고하여 정화한다. 그리고 청아한 소리로 여러 불·보살들을 청하고 공양한다. 끝으로, 중생이 금강령에서 나는 소리의 찰나성을 통하여, 존재하는 것의 무상함을 깨달아 성불成佛의 길로 들어서도록 이끌어준다. 
   금강령은 몸체, 손잡이, 금강저로 이루어져 있다. 몸체는 종鐘 모양이고, 흔들면 부딪혀서 소리를 내도록 내부에 진자振子가 달려 있으며, 하단은 꽃잎 모양이거나 혹은 편평하게 마무리되어 있다. 몸체 외부에는 다양한 불교의 도상들이 새겨져 있고, 그에 따라 이름이 다르다. 우선, 오대명왕五大明王Vidyaraja이 새겨진 오대명왕령五大明王鈴이 있다. 오대명왕은 8세기 이후 밀교의 발전 과정에서 성립되는 것으로,  중국에서 불공의 『인왕염송의궤仁王念誦儀軌』에 비로소 한 그룹으로 등장한다. 이들은 오불五佛의 명령을 받아서 교화하기 어려운 중생과 내외의 마장魔障을 항복시키기 위해, 활활 타는 불꽃에 둘러싸인 분노한 얼굴로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둘째, 수미산 중턱의 사왕천四王天에 살면서 사왕천은 물론 인간계를 관찰하고 수호하는 일을 하는 사천왕四天王Caturmaharaja이 새겨진 사천왕령四天王鈴이 있다. 셋째, 사천왕에 불교의 수호신인 범천梵天Brahma과 제석천帝釋天Indra을 더한 범·석 사천왕령梵·釋 四天王鈴이 있다. 이들이 유물 중 가장 많다. 마지막으로 불법을 지키는 신장들인 팔부중八部衆이 새겨진 팔부신중령八部神衆鈴도 있다. 이외에도 용龍 또는 명왕明王과 독고저獨鈷杵를 교대로 배치하여 표현한 특이한 예도 있다. 
   손잡이는 사악한 기운을 물리친다고 믿어지는 귀신의 눈〔鬼目〕이나 얼굴〔鬼面〕이 중심에 있고, 그 아래위에 안다〔Anda;알〕와 연꽃이 대칭으로 장식되어 있다. 안다는 생명의 싹을 말한다. 연꽃은 창조신 브라흐마Brahma를 탄생시킨 근원이면서, 또 진흙 속에서 피어나면서도 스스로는 물들지 않으니, 그 속성을 우러러 예로부터 다양한 장식에 사용되어 왔다. 특히 밀교에서 연꽃은  창조와 재생, 본원적 순수를 상징하며 팔성물八聖物〔양산, 한 쌍의 물고기, 보배 화병, 연꽃, 하얀 소라 고동, 끝없는 매듭, 승리의 당번幢幡, 황금 수레바퀴〕의 하나이다. 안다와 연꽃이 금강령에 장식된 것은 금강령에게 생명을 부여하여 화생化生시킨다는 의미이리라. 
   손잡이 위에는 대개 금강저가 붙어 있다. 이것은 어원상 다이아몬드와 번개를 뜻한다. 어떠한 장애라도 능히 깨뜨릴 수 있으나, 그 자체는 결코 파괴되지 않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불교에서는 무명과 번뇌를 부수어 자기 자신의 청정한 지혜를 발현하게 하는 방편으로 사용된다. 금강저의 가지는 불법을 수호하는 팔부중의 하나인 용, 혹은 불운한 기운을 막아주는 강인한 힘을 가졌다고 하는 마카라Makara의 입에서 뻗쳐 나온다. 이 가짓수에 따라 가지가 하나 뿐인 독고저는 독고령獨鈷鈴, 세 개인 삼고저三鈷杵는 삼고령三鈷鈴, 다섯 개인 오고저五鈷杵는 오고령五鈷鈴, 아홉 개인 구고저九鈷杵는 구고령九鈷鈴으로 부른다. 드물게는 탑塔이나 보주寶珠가 달린 것도 있으며, 이들은 탑령塔鈴, 보주령寶珠鈴으로 부른다. 우리나라 유물의 대다수는 삼고령과 오고령이다. 
   삼고령의 삼고는 불부佛部·보살부菩薩部·금강부金剛部의 삼부존三部尊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한다. 혹은 신身·구口·의意 삼밀三密로 하는 밀교의 수행법인 삼밀가지三密加持를 상징한다고도 한다. 중생이 몸으로 불·보살의 행위인 결인結印을 행하고, 입으로 진리를 상징하는 언어인 진언眞言을 외우며, 마음으로는 탐욕·성냄·어리석음의 삼독三毒을 없애고 삼매三昧에 들어 대일여래를 생각하는 것이다. 객체인 본존과 완전히 상응일치相應一致하여 하나가 되는 즉신성불卽身成佛을 이루는 것이 그 궁극적 목표다. 그래서 삼고령을 드는 것 자체로 즉신성불을 이룬다고까지 말해지기도 한다. 오고령의 오고는 5불五佛· 5지五智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 밀교에서 성립된 특징적 개념이다. 중심의 고는 있는 그대로의 본성을 아는 법계체성지法界體性智를 나타내는 대일여래大日如來Vairocana를 표현한 것이다. 사방 4개의 고는 대일여래의 구체적 작용으로 나타나는 4불四佛·사지四智를 상징한다고 한다. 
   유물로 본다면, 금강령은 8세기경에 등장한다. 최초의 것은, 인도 사르나트Sarnath박물관이 소장한 석조 부조에 5불五佛이 새겨진 보관을 쓴 금강살타보살Vajrasattva이 좌·우 지물로 들고 있는 금강령과 금강저이다. 또한 당나라 유물인 일본 나라奈良국립박물관 소장 오대명왕령, 이야타니지弥谷寺 소장 사천왕령, 그리고 도쿄東京국립박물관이 소장한 구카이空海(774~835년)의 오대명왕령과 오고금강저 등도 있다. 이들 초기의 금강령은 오고이며, 밀교의 특징적 존상尊像인 오대명왕을 품고 있고, 밀교에서 처음 등장한 보살의 지물이고, 대표적인 밀교승의 유품이었다. 금강령의 등장이 밀교와 깊은 관련을 갖고 있다는 근거가 아닌가 한다. 
   금강령에 대한 기록은 8세기 중엽 당나라 때, 불공不空이 번역한『인왕호국반야바라밀다경仁王護國般若波羅密多經』1)과 『인왕반야다라니석仁王般若陀羅尼釋』2)에  최초로 등장한다. 금강령이 반야바라밀을 뜻하는 것이고, 금강약차보살의 지물이라 설명되어 있다. 
   이후 9세기에 일본, 중국, 인도네시아 등에서 제작된 금강령이 현재 유물로 남아 있어 이때에는 이미 아시아 여러 나라들에서 금강령을 제작·사용하였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8세기 말 의림義林, 불가사의不可思議, 혜일惠日 등의 밀교승이 들여와서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측하지만, 초기의 유물은 남아 있지 않다. 
   유물은 고려시대의 것이 가장 많은데, 대체로 중국 당·송대의 것과 유사하다. 금강저가 크고 당당하며, 손잡이가 굵고, 몸체에 다양한 불교도상이 조각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고려사』에 의하면 고려시대에는 69종의 불교의식이 행해졌는데, 대부분 『인왕경』등의 밀교경을 소의경전所依經典으로 개설된 밀교 의례였다. 이들 의례들에 필수 법구로서 금강령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였을 것이고, 그 결과 많은 수가 남겨지게 된 것으로 짐작된다. 
   조선시대에는 손잡이 끝에 보살의 얼굴이 새겨진 얼굴새긴령(그림3)이 출현하게 된다. 이것은 티벳 계통의 금강령과 아주 유사한데, 고려후기에 유행한 라마교의 영향을 받은 결과가 아닌가 한다. 보살의 얼굴 위에 달려 있는 금강저는 대개 삼고저이고 크기가 작은데, 뒤에는 이조차도 사라지게 된다. 게다가 몸체의 도상도 점차 단순한 장식으로 바뀌다가 거의 없어진다. 
   비록 금강저도 없고, 손잡이에 문양도 없고, 몸체에 더 이상 도상도 품고 있지는 않지만, 이와 같은 금강령의 전통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다만 불교 의례나 사상의 변화에 따라, 과거 밀교적 의례가 유행했을 때는 금강저와 쌍을 이루었겠지만, 이제는 단독으로 사용되고 있다. 

직지사 소장 범·석 사천왕령
  

   이 금강령은 몸체 내부에 진자振子까지 완전하지만 아쉽게도 금강저의 가지 하나가 부러져 있다. 몸체의 아랫단은 여섯 장 꽃잎 모양이고, 여섯 면의 몸체에는 범천, 제석천, 사천왕이 고부조로 표현되어 있다. 오고 범·석 사천왕령이다. 
   금강저 부분은 중앙에 굵은 고鈷를 하나 두고, 사방에 서로 대칭되게 협고脇鈷가 달려 있다. 고의 끝부분이 예리하고, 상하 구분이 명확하다. 고의 가지는 용의 입〔龍口〕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손잡이와 연결된 고의 받침대 같은 장식 위에 얹혀 있는 모양이다. 고려시대에는 흔히 용의 입에서 고가 뻗쳐 나오듯 달려있는 예가 많은데, 고려후기가 되면 이처럼 용의 입이 약화되어 단순한 받침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손잡이 부분은 오랫동안 사용한 탓인지 무늬가 흐려져 있다. 귀목을 중심에 두고, 안다를 아래위에 대칭으로 놓았다. 이들은 불규칙한 세로선으로 표현한 매듭으로 나뉘어져 있다. 손잡이의 상하 끝은 겹으로 된 연꽃잎으로 장식되어 있다. 금강령의 몸체와 연결된 부위는 종의 천판처럼 넓게 하여, 겹으로 된 여섯 장의 연꽃잎을  중첩으로 새겨 도드라지게 하였다. 대체적으로 조각이 섬세하지 못하여 형식적인 느낌이 강하다. 
   몸체에는 물고기 알처럼 생겼다 하여 어자문魚子文이라 부르는 작은 원문이 촘촘하게 찍혀 있다. 이 바탕 위에 범천과 제석천이 대칭으로, 그 좌우에 사천왕이 둘씩 협시脇侍처럼 새겨져 있다. 범천과 제석천은 관모冠帽형의 보관을 쓰고 경직된 자세로 합장하고 서 있다. 눈·코·입이 큼직하나 형식적이고, 얼굴은 약간 옆으로 하였으나 동적動的이지 않으며, 옷 주름은 상·하·소매 등으로만 구분하여 굵은 선으로 일률적으로 표현하였다. 도상에 변화가 없어 범천과 제석천을 구분하기 어렵다. 이들의 좌·우로는 창과 탑을 든 북방다문천왕과 칼을 든 동방지국천왕이, 그리고 창을 든 서방광목천왕, 활과 화살을 든 남방증장천왕이 나뉘어져 서 있다. 사천왕의 갑옷은 상하로 나뉘어 굵은 선으로 간략하게 표현되어 있음에도 무늬가 잘 나타나 있다. 굵은 곡선으로 처리된 천의와 둥글게 말려 올라간 끝자락이 역동적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무늬가 유려하지 못하고 도식적이다. 
   몸체의 아랫단은 이중으로 두텁고, 내부에는 부드럽게 각진 방망이 같은 진자가 있다. 진자까지 온전하게 남아 있는 사례는 드문데, 13세기경 제작되었다는 청주 사뇌사思惱寺 금강령의 물고기 모양 진자와 비교하면 많이 단순해진 것으로 보인다. 

   이상과 같은 직지사 금강령은 고려시대에 가장 많이 만들어진 금강령의 하나이다. 전체의 모양으로 볼 때, 고부鈷部에 용의 입이 생략되어 간략해졌고, 고의 가지 장식도 많이 약화되어 왜소하게 표현되어 있다. 귀목이 새겨진 손잡이 또한 불안정하게 분할되고, 가늘고 길게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몸체에 표현되어 있는 도상들의 세부 표현은 미약하여 섬세하지 못하고, 경직되고 도식화되어 부드럽지 못하다. 정점을 비껴난 시점인 고려후기에 조성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오늘날 금강령은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유물이 되었다. 사찰에서도 특별한 재를 지내거나 의식을 행할 때 요령을 사용하지만, 그 모양새와 품고 있는 상징은 많이 달라졌다. 삿된 것을 몰아내고, 무명 속에서 헤매는 중생에게 공의 실체를 보아 광명의 세상에 들라 하는 섬광 같은 소리가 박물관 진열대 속에서 세상 밖으로 울려 퍼질 날은 언제일까?


윤정숙(직지성보박물관 학예연구원)









1)  7. 봉지품奉持品 “… 동방의 금강수金剛手보살마하살은 손에 금강저金剛杵를 가지고 청색의 빛을 놓으며 사구지四俱胝보살과 함께 가서 그 나라를 보호할 것이다. … 북방의 금강약차金剛藥叉보살마하살은 손에 금강요령을 들고 유리색 광명을 놓으며 사구지의 야차와 함께 가서 그 나라를 보호할 것이다.'
2) 제1권 “…金剛鈴者 表般若波羅蜜義 振鈴警悟愚昧異生 一聞鈴音 覺悟般若波羅蜜 顯名摧一切魔怨菩薩 是故此 菩薩手持金剛鈴 …금강령은 반야바라밀을 뜻하는 것으로 어리석고 사리에 어두운 중생이 령의 소리를 한번 들으면 반야바라밀을 깨달아서 세상에 드러난 모든 魔怨菩薩을 멸할 수 있다. 그래서 보살이 금강령을 지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