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장사 신중탱
글쓴이 : 학예실     첨부파일 :       날짜 : 12-02-11    조회 : 2571
  신중탱神衆幀은 부처님의 정법正法을 수호하고 도량道場을 청정하게 하는 신들神衆을 도상화한 그림을 말한다. 신중탱은 대부분 주불전의 신중단神衆壇에 봉안되어 있으며, 조선후기에 제작된 불화 가운데 전해지는 수가 많은 편이다. 이러한 신중탱이 조선후기에 크게 유행한 원인은 무엇일까? 우리나라에 있어서 신중신앙의 구체적인 의미와 신중의 역할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신중이란 고대 인도신화 속에 등장하는 신들로서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감화되어 호법선신護法善神의 역할을 맡게 되었다. 이들은 부처님이 설법하실 때에 여러 성중聖衆들과 함께 나타나 불법을 찬탄하며 수호하게 된다. 신중 가운데에는 사천왕四天王과 인왕仁王, 팔부중八部衆과 같이 널리 알려진 존상이 있는가 하면 이름도 생소한 수많은 신중이 존재한다. 이러한 신중에는 제석천帝釋天이나 범천梵天같이 모든 신을 주재하는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는 신이 있으며, 인왕이나 사천왕, 팔부중 등 주로 불법의 외호外護를 맡은 신들도 있다.『화엄경華嚴經』에 등장하는 화엄신중華嚴神衆,『법화경法華經』의 영산회상靈山會上 수호신장守護神將,『인왕호국반야경仁王護國般若經』,『대반야경大般若經』에 등장하는 팔부신중八部神衆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삼국시대에 불교가 수용된 이후 일찍이 화엄신중도량華嚴神衆道場이 개설되어 삼산三山, 오악五嶽, 제천諸川 등의 여러 토속신土俗神을 불교적으로 수용하는 데 중요한 신앙적 기능을 하였다. 이 과정에서 해당 지역의 토착신이 불법의 수호신장이 되었고, 이들을 모시는 신중신앙이 나타났다. 신중신앙은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여러 토속신土俗神들을 모두 불법의 수호신으로 신앙하는 형태이며, 둘째는 각각의 신이 토속신과 융화되어 하나의 독립된 신앙으로 분화한 것이다. 전자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신중신앙이며, 후자는 산신山神, 칠성七星, 용왕龍王, 제석신앙帝釋信仰 등이다. 


  신중에 관한 기록은『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 볼 수 있다.「대산오만진신조臺山五萬眞身條」에는 통일신라시대에 화장사華藏寺에서 밤마다 화엄신중을 외웠다는 기록과, 문수갑사文殊岬寺에서 복전福田 7원員이 밤낮으로 늘 화엄신중예참華嚴神衆禮懺을 행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늦어도 8세기 초에는 화엄신중에 대한 신앙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주로 탑과 사리기舍利器에 신장상이 부조되는 한편 석굴암에 제석천과 범천이 조각되는 예를 통해 볼 때 신중에 대한 이해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몽고침략기인 고종高宗(재위 1213~1259) 때에 호법신중護法神衆의 의미가 부각되었는데, 사천왕도량四天王道場과 천제석도량天帝釋道場을 위시한 마리지천도량摩利支天道場, 문두루도량文豆婁道場 같은 신중도량으로 국난을 타개하고자 하였다. 이 시기에는 주로 사경에 신장神將이 그려지거나 제석독존帝釋獨尊 형식의 제석탱이 그려져 신중의 외호적 의미가 강조되었다. 이 밖에도 해인사 사간판寺刊板의 화엄경변상도華嚴經變相圖에는 화엄신중상華嚴神衆像 가운데 토속신인 주화신主火神, 주풍신主風神, 주공신主空神 등이 삽화로 묘사되기도 한다.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전란을 겪으면서 일반 서민들의 삶이 더욱 피폐해짐에 따라 현실적인 불안심리에서 탈피하기 위하여 내세적인 신앙보다는 병마病魔나 재액災厄의 퇴치와 현세의 복락福樂을 기원하는 현세구복적인 신앙이 확대되었다. 이는 『불정심다라니경佛頂心陀羅尼經』같은 진언집眞言集이나 『천수경千手經』 같은 밀교 경전, 『밀교집密敎集』 같은 밀교계 전적이 17ㆍ 18세기에 주로 간행되었다는 사실이 뒷받침한다. 이 가운데 『불정심다라니경』은 온 마음으로 읽고 지니면 재앙을 피할 수 있다는 신앙에 의해 널리 유통된 경전이다. 조선후기에는 고려시대와 같이 국가차원에서 행해지던 대규모의 호국적인 신중 관계 불사들은 사라지고 민간계층이 발원한 불교행사가 많아지게 되었다. 고려시대까지 중요시되던 호국적인 기능은 축소되고 정법正法을 수호하고 도량道場을 청정하게 하는 기능이 강조되었다.

   조선후기 불법을 옹호하는 신중들의 다양한 예를 「화엄경약찬게華嚴經略纂偈」에서 확인할 수 있다.   


  부처님을 호위하는 많은 금강신들과 몸 많은 신중신들과 불도를 행하는 족행신足行神과 도량을 지키는 도량신들, 성城을 주관하는 주성신主城神들과 땅을 맡은 주지신主地神들, 산의 주인 주산신主山神과 숲을 맡은 주림신主林神들, 약을 맡은 주약신主藥神과 곡식을 주관하는 주가신主稼神들, 강을 주관하는 주하신主河神들과 바다를 지키는 주해신主海神들, 물을 맡은 주수신主水神과 불을 맡은 주화신主火神들, 바람을 맡은 주풍신主風神과 하늘을 맡은 주공신主空神들, 사방을 맡은 주방신主方神과 밤을 주관하는 주야신主夜神들, 낮의 주주신主晝神들과 성 잘내고 싸움 잘하는 아수라阿修羅들, 용을 잡아먹는 가루라왕迦樓羅王과 음악을 좋아하는 긴나라왕緊那羅王들, 뱀의 신인 마후라가왕摩喉羅伽王들과 사람을 잡아먹는 야차왕夜叉王들, 여러 큰 용왕들과 사람 정기 빨아먹는 구반다왕鳩槃茶王들, 하늘에서 노래하는 건달바왕乾達婆王들과 달빛 뿌리는 월천자月天子, 밝고 밝은 태양 일천자日天子와 도리천忉利天의 천신들, 야마천夜摩天의 천왕들과 도솔천兜率天의 천신들, 화락천化樂天의 천왕들과 욕계의 가장 높은 타화자재천왕他化自在天王, 사바세계 대범천왕들과 색계 제2선천의 광음천왕光音天王들, 색계 제3선천의 변정천왕遍淨天王과 제4선천의 광과천왕廣果天王들, 3천계에서 가장 자재한 대자재천왕大自在天王들도 많이 모였네.

  당시 민간계층에서 유행했던 신중신앙의 중심을 이루던 것은 화엄신앙으로 조선시대의 의식집인『범음집梵音集』(1721)과 20세기 이후 편집된『석문의범釋門儀範』(1935) 등의 신중단神衆壇 의식에 나타난다.


 지심귀명례 화엄회상 욕색제천중  至心歸命禮 華嚴會上 欲色諸天衆          

 지심귀명례 화엄회상 팔부사천중  至心歸命禮 華嚴會上 八部四天衆                   

 지심귀명례 화엄회상 제법선신중  至心歸命禮 華嚴會上 諸法善神衆   


라고 하여 화엄신앙이 신중단의식의 중심사상임을 알려주고 있다.『법음집法音集』에서는 신앙의 대상에 따라 신앙체계를 3단으로 나눈다. 그 체계가 사찰의 전각에 수용됨으로써 불단佛壇을 중심으로 좌측이나 우측 벽에 신중단神衆壇을 만들게 되는데, 신중단에 탱화를 하나만 봉안하는 것이 일반화되면서 그때까지 따로 제작되었던 제석탱화와 천룡탱화를 한 화면에 그려 넣었다.

  

  이 달의 문화재로 소개할 <남장사 신중탱>(그림 1)은 제석과 범천, 천룡팔부중天龍八部衆을 함께 묘사한 제석ㆍ범천ㆍ천룡탱화에 속한다. 이 형식은 신중탱의 형식 가운데 가장 오랫동안 애용되었던 것으로, 현존하는 작품 중 가장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 형식은 화기에 제석천룡합위帝釋天龍合位, 또는 제석신중탱帝釋神衆幀 이라고 적혀 있는 경우가 있다.    


  일반적으로 신중탱은 제석천과, 범천 위태천을 중심으로 상, 하 또는 좌, 우로 나눠지는 구도이지만, 이 그림은 제석천과 범천, 위태천을 상, 하로 배치하고 기타 권속은 좌, 우에 배치한 구도이다. 화면 상단의 중심에 붉은 연꽃가지를 든 제석천이 보이는데(그림 2), 범어梵語로 인드라Indra로 불리며 고대 인도부터 신앙되었던 신이다. 이후 불교에 유입되어서는 호법선신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제석천의 옆에 하얀 연꽃가지를 들고 있는 범천梵天은 본래 힌두교의 신으로, 범어로는 브라흐마Brahmand이며 불교의 33천天 중 색계色界 초선천初禪天의 왕이다. 화면 하단의 중심을 이루는 위태천은 새 날개 깃이 장식된 투구를 쓰고 갑옷 위에 초화문草花文으로 장식된 복식을 걸쳐 입고서, 합장한 자세로 오른팔과 가슴의 사이에 금강저金剛杵를 걸쳐놓은 자세로 시립해 있다. 위태천은 불교에 수용된 이후 불법 수호의 신, 특히 가람伽藍 수호의 신으로『금광명경金光明經 』및『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등에 나타난다. 남방증장천南方增長天의 8대 장군의 하나이자 귀신을 통솔하는 신으로 석가모니의 열반 때 부처님의 정법正法을 수호한다는 의미인 유법호지遺法護持를 담당하였다고도 한다. 위태천의 상호는 둥근 얼굴에 코를 중심으로 몰려있는 눈과 작은 입술을 갔고 있는데, 반면에 주위의 권속들은 생동감 있는 표정을 보여주고 있다.

  

  신중탱은 범천, 제석천, 위태천 같은 주요 존상 외에도 팔부신중과 토속신이 그려진다. 팔부신중의 하나인 용龍과 긴나라緊那羅 (그림 3)는 화면 왼쪽의 윗부분에 서로 마주한 모습으로 서 있다. 용왕은 검을 팔 사이에 끼고 입을 크게 벌린 채 눈썹을 날리면서 눈을 아래를 향해 부릅떠 성난 표정이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용왕은 바다의 신水神이며 동시에 호국신護國神의 역할을 한다. 또한 민간신앙에서는 비를 가져다주는 우사雨師이고, 악한 귀신들을 물리치고 복을 가져다주는 벽사辟邪 기능을 하기도 한다. 용왕의 아랫부분에는 사람과 새를 합친 머리 형상의 긴나라가 있다. 긴나라는 인도의 재래신으로서 불교에 수용되면서 팔부신중八部神衆의 하나가 되었다.

  그 밖의 토속신은 화면 상단의 제석과 범천의 좌우와, 화면 하단의 위태천 좌우에 배치되어 있다. 화면 상단에는 장막의 일종인 당幢을 들고 있는 동자와 동녀童女가 있고, 제석천의 오른쪽에는 깃발의 일종인 번幡을 들고 있는 동자가 있다. 동자와 동녀를 구마라천鳩摩羅天 혹은 범동자梵童子라고 부르는데, 동자는 중생들을 교화하고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신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범천의 옆에는 팔부중의 하나인 야차夜叉가 있는데, 성난 표정에 붉은 머리를 한 모습이다. 화면 하단에는 해를 상징하는 일궁천자日宮天子와 달을 상징하는 월궁천자月宮天子, 부엌의 신인 조왕신竈王神이 있다. 일궁천자는 머리의 보관 위에 경책을 얹고 손에는 홀笏을 쥐고 붉은 도포를 걸치고 있다. 12천신天神 중의 하나로 어두운 곳을 비추어 곤궁한 자를 구제한다. 월궁천자는 12천신 중 하나로 번뇌와 괴로움을 제거하는 신이다. 제석천의 향우측에는 탕건宕巾을 쓰고 긴 수염을 드리우고 있는 조왕신이 있다. 화신신앙火神信仰이 조왕신앙의 뿌리이며, 그는 삼신三神과 함께 육아의 기능을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집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하늘의 옥황상제께 고하는 신이기도 한 조왕신은 조신竈神, 조왕각시, 조왕대신, 부엌신, 아궁이신 또는 부뚜막신이라고도 한다.  

  세부 표현으로는 적갈색의 구름과 황색의 구름을 배치하여, 신들의 공간임을 강조하여 신령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제석과 범천의 신광身光은 적색, 청색, 흰색, 녹색으로 구불구불하게 묘사하였으며, 어깨에서 두광頭光의 옆으로 각각 한 줄기씩의 빛이 있는데, 지혜와 권능의 빛인 거신광擧身光의 빛을 잘 표현하였다. 고려불화에서 사용되었던 초화문草花文이 권속眷屬의 옷자락에 장식되어 화면을 돋보이게 만들고 있기도 하다. 채색은 주로 적색과 녹색이 사용되었다.

  그림의 하단에는 화기畵記가 남아 있다. 이에 따르면 남장사 신중탱은 순조 24년(1824) 사불산화파四佛山畵派의 화승畵僧인 신겸信謙이 금어金魚로서 일을 주관하고 정엽定曄, 영태永態, 정규定奎, 부홍富洪, 유有� 등이 함께 참여하여 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사찰에 가보면 신중단神衆壇이 빠짐없이 설치되어 있다. 이를 보더라도 19세기에 신중신앙이 얼마나 성행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아침저녁 예불 때마다 불자들은 법당 중앙에 모셔진 부처님께 예불문을 외우며 절한 뒤, 왼쪽이나 오른쪽에 자리한 신중단을 바라보며 온갖 중생들이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반야심경般若心經』을 독송한다. 또한 사시예불巳時禮佛 때는 불단에 올렸던 마지摩旨(밥)를 신중단에 옮겨 올리고, 신중단을 향하여 반야심경을 봉독하면서 사시예불을 마치는데 이를 퇴공退供이라고 한다. 신중들이 퇴공을 받는 이유는 부처님과 보살들이 먼저 공양을 드신 후 물려받은 것으로 공양을 하겠다는 서원을 세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웅전大雄殿 의 한 켠에 봉안된 신중탱을 바라보며 반야심경을 독송할 때마다 그 의미를 알고 독송한다면 신중의 의미가 더욱 새롭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신중은 불법이나 가람의 수호자라는 외호外護적인 성격과 벽사辟邪, 소재消災라는 내호적內護的인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밖으로는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나라를 지켜주는 신으로, 안으로는 질병을 없애주고 복을 내려주는 신으로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꾸준히 신앙되고 있다.


임태우(직지성보박물관 학예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