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다사 용두
글쓴이 : 학예실     첨부파일 :       날짜 : 08-05-24    조회 : 4292

<수다사 용두> 

  사찰의 입구에서 바라보면 멀리 병풍처럼 둘러쳐진 능선이 구불거리고, 건물의 용마루가 산등성이와 조화를 이룬다. 용마루 양쪽 끝머리에는 용머리가 올려져 있는데,
  
용은 신령스런 영물로 위대한 힘의 상징이 라고 믿는 신격화 된 동물이다. 사찰 내에서는 범종의 용뉴나, 처마 밑의 공포, 기와의 무늬, 용왕도, 각종 목조각 등등 곳곳에서 용의 형상을 찾을 수 있다. 이 가운데 특히 지붕 꼭대기의 양끝 머리에 있는 커다란 용두가 인상적이다. 이 용두는 용마루에 앉아 지붕을 이루고 있지만 길상이나 장식적인 기능을 가진 것으로 일반 기와처럼 빗물의 침수를 막아내는 기능은 아주 적다고 할 수 있다.   구미시 무을면 상송리 연악산 기슭에는 진감국사眞鑑國師 혜소慧昭(774∼850)스님이 창건한 수다사가 있다. 조선시대에 이곳의 용마루에 올라 화마火魔를 막아내던 용두가 우리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달의 문화재>로 ‘수다사 용두’를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용두가 어떻게 나타나게 되었는지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자.
  기와는 지붕에 얹는 건축 부재인데, 그 종류로는 크게 암키와와 수키와의 평기와, 암막새와 수막새의 막새기와, 그리고 마루기와가 있다. 평기와는 빗물을 막아주는 기본기능을 하고, 막새기와는 처마의 끝에 놓여 서까래의 끝머리가 빗물에 부식되는 것을 막는 구실을 하며, 마루기와는 길상吉祥이나 벽사辟邪의 의미를 담아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져 지붕을 장식한다.
  마루기와 가운데 용두는 기와가 만들어지던 초기에는 없었다. 초기의 기와는 중국 서주西周시대에 단순한 사각형의 암키와로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으로 보고 있는데, 한나라 때가 되면 빗물의 침수를 막는 기본적인 기능을 넘어 화려하게 치장되고, 다양하게 제작된다. 우리나라에는 기원전 2~1세기 무렵 한무제漢武帝가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한사군漢四郡을 설치하면서 중국의 다양한 문화와 함께 자연스레 유입된 것으로 본다.
  
기와를 만들어 사용하던 초기에는 용두가 놓이지 않았다.  용두가 사용되기 이전에는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에 새 꼬리 형상의 치미鴟尾가 성행하였고, 고려 중기에는 치미를 대신하여 새 머리 형상의 취두鷲頭를 사용하였다. 고려 중기 이후 취두의 출현과 함께 나타난 용두는 조선시대까지 매우 성행하였는데, 주로 대형인 취두를 얹을 수 없는 작은 건물의 용마루나 내림마루, 추녀마루에 장식되었다.
   치미는 4~5세기경의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용과 함께 나타나는데 간간히 건물터에서도 출토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황룡사터에서 출토된 대형 치미(신라)가 있다. 치미는 고려 중기 이후로는 크기가 차츰 줄어들고 모습이 변하면서 그 자리를 취두와 용두가 대신하게 된다. 취두가 먼저 만들어졌지만 조선시대에 이르러 취두는 점차 줄어들고 용두가 더욱 성행하게 된다. 이렇게 용두는 궁전이나 관아, 사찰 건물 등에 올려졌는데, 용두를 비롯해 치미, 취두가 있는 건축물이라면 그것은 국가(왕)나 종교와 관련된 것이다. 또한 당시 일반 백성이 사용할 수 없었던 용 무늬를 사용한다는 것은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했다. 그렇다면 사찰에는 왜 용 무늬가 나타나는 것일까?
  
불교에서 용은 고대 인도의 토착사상에 나타나는 나가Naga가 변용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원래 이 나가는 악마나 귀신에 해당하지만, 석가에게 교화된 뒤 불법을 수호하는 신으로 재정립되어 부처와 부처의 가르침을 호위하는 호법신護法神, 호불신護佛神의 성격을 가지게 된다. 호불신이 된 용은 천왕팔부중天王八部衆(천天, 용龍, 야차夜叉, 건달바乾達婆, 아수라阿修羅, 가루라迦樓羅, 긴나라緊那羅, 마후라가摩睺羅伽) 가운데 불문을 수호하는 용신 또는 용왕으로 표현되고 반신반사半身半蛇를 한 신장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불법인연승호경佛法因綠僧護經』『대방등대집경大方等大集經』『정법념처경正法念處經』『불설장아함경佛說長阿含經』『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등에서 용의 기록을 볼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용두에서 나타나는 용의 모습은 초기 인도 불교에서 나타나는 용의 모습이 아니라 중국에 존재하던 용의 모습이다. 중국 용의 초기 모습을 볼 수 있는 한 예로 앙소仰韶문화에 속하는 서수파西水坡유적을 들 수 있다. 45호 무덤 내부를 보면 음택 풍수에 맞추어 매장한 것으로 보이는데, 피장자의 서쪽에는 호랑이를 동쪽에는 용의 형상을 조개껍질로 만들어 놓았다. 용의 모습이 현재 우리가 표현하는 것과 많이 닮았음을 알 수 있다.
  용은 서민에게는 기원祈願의 대상, 왕에게는 성군聖君의 상징, 부처의 세계에서는 호법신으로 나타나는데, 대개 씩씩한 기상과 생동감이 넘치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용은 명明, 청靑 시대에 정형화된 것이며, 용 자체의 생김새에 대해 비교적 자세하게 묘사한 것은 송宋나라 때이다. 나원羅愿이 쓴 『이아익爾雅翼』에 보면 ‘용의 뿔은 사슴, 머리는 낙타, 눈은 토끼, 목은 뱀, 배는 대합, 비늘은 물고기, 발톱은 매, 발바닥은 호랑이, 귀는 소와 닮았다.’(龍, 角似鹿, 頭似駝, 眼似兎, 項似蛇, 腹似蜃, 鱗似魚, 爪似鷹, 掌似虎, 耳似牛) 라고 하였다. 용을 직접 본 사람은 없지만 이러한 설명처럼 용은 그 모습이 괴수怪獸이지만 성수聖獸로 사람들에게 공포심을 일으키지 않고 위력적인 힘을 느끼게 한다.
  이와는 달리 방금까지 시골 논밭을 갈아엎던 소의 머리 형상으로 만들어진 한 쌍의 용두가 있는데, 우리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수다사 용두’이다. 비록 생김새가 사납고 무시무시한 형상이 아니라 바보스럽게 웃는 듯한 소의 모습이지만 엄연히 용마루 끝에 당당히 올라 화마를 막아내던 용두이다.
  ‘수다사 용두’의는 크기는 길이 43㎝, 너비 36㎝, 높이 40㎝ 정도이며, 머리 아래쪽에는 반원형의 홈이 있고 정수리에는 원형의 홈이 있어 지붕 위에 얹을 수 있도록 하였다. 조선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일반적인 용두와는 다른 독특한 생김새를 가지고 있다.
  용의 뿔은 보통 2개의 사슴뿔로 표현하는데, ‘수다사 용두’는 3개의 뿔로 마치 농기구의 거릿대 같고, 도깨비에서 표현하는 뿔과도 비슷하다. 눈알은 툭 불거지게 만든 다음 사금파리를 박아 눈동자를 반짝거리게 표현했다. 이것은 광명을 상징하는 양의 색깔로 흰색을 통해 음기를 가진 악귀를 내쫓고자 했던 벽사의 의미로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조각만으로 표현한 일반적인 용의 눈과는 달리 반짝거리는 하얀 색깔로 표현함으로써 길상과 벽사의 의미를 더욱 강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용의 눈썹은 대개 삐죽삐죽하고 강한 느낌으로 표현되는데, 이 용두에서는 눈썹이 없이 둥그스름한 호선弧線의 눈두덩이로 표현했다. 완만한 곡선의 눈두덩이와 연결되는 오똑한 코는 서로 묘한 대조를 이룬다. 사람의 코처럼 반듯하게 세우고 콧구멍 2개를 적당히 뚫어 놓았다. 양쪽 뿔 옆에는 일반 용처럼 귓바퀴가 넓은 쇠기로 만들었다. ‘U’자처럼 귀 아래까지 벌려진 입은 벙긋 웃는 듯하며, 살짝 벌려진 입안에는 야구공만한 여의주가 보인다. 이빨은 뭉툭뭉툭하고 길게 연결되어 초식동물 같지만, 양쪽으로 뾰족한 송곳니를 표현해서 그나마 사나운 모습이 조금 남았다.
  
  하얀 색깔의 눈동자, 3개의 뿔, 뭉툭한 이빨, 둥구런 눈두덩, 오똑한 코, 히죽 웃는 입을 보면 해학적인 한국의 탈이 연상된다. 그 가운데에서도 재앙이나 질병의 원인이 되는 사기나 악귀같은 혐오의 대상을 위협해서 내쫓는 벽사가면처럼 느껴진다. 이 용두에 보이는 해학성, 소박한 미감, 특별한 기교를 부리지 않는 점 따위는 역시 조선시대 공예품이나 민속품에서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는 특징이다.
  이처럼 ‘수다사 용두’는 순박한 소의 얼굴 같기도 하고, 탈 같기도 하여 범상하기 짝이 없다. 불거진 눈알에 사금파리를 박은 것은 아주 독특한 모습으로 여느 용두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또 입 안에 물고 있는 여의주도 매우 독특하다. 점토로 구워낸 야구공 크기의 여의주는 입 안에서 이리저리 굴러다니지만 벌려진 입 밖으로 빠지지는 않는다. 현재의 거친 모습으로 짐작컨대 여의주는 입 안의 공간을 만들면서 생긴 흙을 뭉쳐 모양을 만든 뒤 그대로 구워서 완성한 듯하다. 어찌 만들었든 벌린 입의 높이 보다 지름이 더 긑 여의주가 밖으로 빠지지는 않으면서 입안에서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모습은 퍽 재미있다. 세간에 승천하던 용이 여의주를 놓치면 구렁이로 또다시 천년을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우스개 소리 때문인지 용들은 대부분 여의주를 꽉 악물고 있는데, 이 수다사 용두은 여의주를 꽉 물고 있기는 커녕 입안에서 이리저리 놀리는 정도이니 용 중의 용이 아니겠는가?
  용은 우리나라에 전래된 뒤 흔히 왕권을 상징하는 동물로 여겨졌으며, 불가에서는 불법을 수호하고 귀의하는 사람들을 지켜주는 용신이 되었다. ‘수다사 용두’는 터주신이나 토지신 같이 우리네 삶을 평화롭고 복되게 이끌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용이며, 길상이나 벽사의 기능이 담겨진 서수이다. 어느 사찰을 다녀 보아도 ‘수다사 용두’처럼 순박하게 생긴 용을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곧 민중의 얼굴, 민중의 마음을 담고 있는 용이 ‘수다사 용두’가 아니겠는가?
  

한승찬(직지성보박물관 학예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