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사 진공대사보법탑비
글쓴이 : 학예실     첨부파일 :       날짜 : 05-01-11    조회 : 3483
  
지난 제3회 특별전에 전시되었던 탁본의 대상 가운데 가장 오래된 고승탑비는 <비로사 진공대사보법탑비>이다. 이 비는 경상북도 영주군 풍기면 소백산 국립공원 내 비로사에 세워진 진공대사의 비이다.

진공대사는 통일신라말과 고려초에 활약한 승려로 경주출신이며 속성은 김씨이다. 가야산의 선융화상을 은사로 출가하여 신라 경문왕 14년(874)에 구족계를 받았다. 소백산에 절을 짓고 삼장을 두루 공부하다가 선융화상이 은둔에 들어가자 행각의 길을 떠났다. 스님은 한동안 설악산 진전사에 머물면서 도의국사의 유허를 답사하며 영탑에 예배하고, 그 뜻을 따라 선수행에 힘을 쏟기도 하였다.

진공대사는 왕건의 후삼국 통일을 직접 찾아가 축하했을 정도로 태조와 긴밀한 관계가 있었다. 통일 후 말년을 소백산에서 보내던 중 937년에 이르러 열반하니 태조는 대사에게 진공眞空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탑호塔號는 보법普法으로 하여 비를 세우도록 명을 내렸다. 비 앞면의 마지막 부분에 새겨진 “歲次己亥八月十五日立 刻者崔煥規”라는 기록에 근거하면 이 비는 스님의 입적 2년 뒤인 939년에 세워졌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이 비는 귀부와 이수를 온전히 갖추고 있으며, 이수 한가운데에는 “故眞空大師碑”라는 제액을 전서로 새겼다. 과거 크게 파손되어 없어진 비신 부분은 다른 돌로 끼워 맞춘 뒤 시멘트로 접착하여 보수하였는데, 화강석의 색깔과 재질이 서로 다르고 맞닿는 부분을 정교하게 처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보기가 그리 좋지는 않다. 보통 비 뒷면에는 비를 세운 시주자의 명단이나 관여한 사찰 등을 새겨 넣는 예가 많으나 이 비의 뒷면에는 특이하게 진공대사가 남긴 유언을 기록하였다.

비문은 최치원의 사촌동생인 최언위崔彦 가 지었으며, 글씨는 이환추李桓樞가 절도있고 단정한 구양순체歐陽詢體 해서로 썼는데 이는 신라말과 고려초에 우리나라에서 크게 유행했던 서체이다. 이환추는 구양순의 서체를 구사한 당시의 대표적인 서예가로서 그의 글씨는 구양순체보다 오히려 더 굳세고 엄정한 필력을 보여준다. 비문은 입자가 곱고 견고한 암석에 정교하게 각자刻字하였는데, 남아있는 부분은 천 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글씨가 생생하다. 글씨 자체도 뛰어나지만 그 획 하나하나를 단단한 돌 위에 섬세하게 살려 새긴 최환규의 솜씨도 예사롭지 않다.
  

비문 탁본은 지난 가을 학예실에서 직접 방문하여 실시하였는데 비신의 높이가 2m가 넘었으며 너비도 1m가 넘는 큰 비였기 때문에 완성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탁본을 하는 과정에서 비석의 원석 부분만 떠낼 것인가 새로 보수한 부분까지도 떠낼 것인가 잠시 망설였으나 현재 비의 상황을 그대로 옮기자는 취지에서 보수한 돌 부분까지 먹을 올리기로 하였다. 완성된 탁본에는 갈라진 균열 부분과 비석의 소실된 부분이 하얗게 남게 되면서 결과적으로 화면에 역동적인 분위기가 생겨났는데, 이는 탁본에서만 맛볼 수 있는 느낌이다. 전시준비를 하면서 도움을 받았던 어떤 분에게 ‘이번 전시된 탑비 중에는 개인적으로는 진공대사비 탁본이 마음에 듭니다. 저 멋지게 갈라진 부분에서 오히려 카리스마가 느껴지지 않습니까 ’라고 했더니 ‘비는 깨져야 제 맛이 나는 법이죠’라고 재치있게 응수하시던 기억이 난다.

진공대사의 유언이 새겨진 비 뒷면 탁본을 번역과 함께 소개해 본다.

小伯山大師 臨遷化之時 遺誡

告諸大衆 吾今已至西垂之時 在居數日之內 不愁早霜侵春花 豈憂黃葉落淸溪 斯納中之事 禮徒之宗 揖上如父母 愍下謂赤子 上下和合 愼莫狼藉 吾在之時 常有 暴之事  復己後 恐若爲也 莫爲小小 眷屬親情 東走西走 慢閑過日 各自護持  衣綴鉢 到處無難 從上已來 第一不累門風 卽是也 南北之中 依住此山 七八年之間 十方同侶 尋光覓色 ○冬過夏 隨分不少 隨時逐世 別無軌則 應是之理 又无蕩逸 不失棟梁 可非之事 如避火坑 從頭不行 直至大小 常護欺嫌 如法住持 我將今往 莫以世相之意 亂慟非常 今生已盡 來來世世 同會法席

소백산 진공대사가 열반에 임하여 유언으로 남긴 훈계

  
모든 대중에게 당부하노니 나는 지금 이미 해가 서산에 드리운 것과 같이 죽음 직전에 있으므로 살아 있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새벽 서리가 봄꽃을 해치는 것도 아쉬워하지 않거늘 어찌 가을의 노란잎이 맑은 계곡에 떨어지는 것을 근심하랴. 이는 마음속에 간직할 일이며 예를 따르는 이들이 으뜸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윗사람 공경하기를 부모와 같이 하고, 아랫사람 사랑하길 적자와 같이 여길 것이니라. 위아래가 화합하여 항상 삼가고 예의와 질서가 없이 狼藉하게 하지 말라. 내가 생존시에도 말과 행동이 과격하고 거칠었던 사실이 있는데, 하물며 내가 죽은 후에도 이같은 일이 있을까하고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작은 일로 권속간의 인정에 얽혀 동분서주하여 부질없이 세월을 보내지 말고, 각기 스스로 잘 계율을 지키고 승복과 꿰맨 바리때를 갖추면 이르는 곳마다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예로부터 문풍에 누를 끼치지 않는 것을 제일로 삼았다고 했는데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이 나라의)남쪽과 북쪽을 두루 다니ㅁㅕㄴ서 이 소백산에 주석한 7-8년 동안 十方의 승려가 本光을 찾고 本色을 탐구하면서 어언 여러 해를 지나게 되었다. 분수를 따라 정진하여 때와 세상을 좇되 특별한 軌則은 두지 말고, 평범한 진리를 따르도록 하라. 또 방탕하거나 안일하지 말 것이며, 중임을 맡길 큰 인물이 되려는 원력 또한 잊지 마라. 옳지 않은 일은 불구덩이를 피하듯 처음부터 행하지 말라.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간에 항상 조심하여 법에 따라 수행토록 하라. 내 이제 곧 이 세상을 떠나려 하니, 세상의 형편대로 속되게 애통해 하거나 허둥지둥하지 마라. 금생이 이미 다하였으니, 내세에는 다 같이 부처님 법석에서 만나게 되기를 바라는 바이다.

* 본문 중 ‘○’에 들어갈 한자는 ‘달릴 치( +至)’字로 인터넷에서 지원되지 않는 한자임
* 비문 번역은 李智冠, 『校勘譯註 歷代高僧碑文』고려편1, 伽山文庫, 1994, pp. 128-130을 주로 참고하였고 부분적인 수정에는 흥선스님께서 도움을 주셨다.
 
한재원(직지성보박물관 학예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