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호서첩南湖書帖
글쓴이 : 관리자     첨부파일 :       날짜 : 04-10-17    조회 : 4373
  
남호 영기南湖永奇(1820~1872)가 손수 글씨를 쓴 서첩이다. 서첩은 앞뒤의 표지를 포함하여 18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글씨는 한 면에 2자씩 34면, 모두 합쳐 68자가 씌어 있다. 바탕은 물들이지 않은 종이이고, 먹물을 이용하여 그 위에 글씨를 썼다. 표지는 무늬없는 쪽빛 비단으로 장황되어 있는데 안쪽에 능화판으로 민 표지가 덧대어져 있는지 자잘한 사방연속의 능화무늬가 은은하게 배어 나온다. 앞 표지 왼쪽 상단에 주황색 비단을 네모지게 붙이고, 그 위에 해서체로 ‘南湖書帖’이라고 써서 제첨을 달았다.    
남호 스님은 출가한 이래 경전을 베껴 쓰고 그것을 판각하거나, 이미 있는 경판을 인경하여 유포하는 따위의 일에 주력한 분이었다. 이를테면 그는 철종 3년(1852) 철원 보개산 지장암에서『아미타경』을 사경하여 이듬해 삼각산에서 그것을 판각, 간행한 바 있으며, 이어 『십륙관경十六觀經』, 『연종보감蓮宗寶鑑』을 판각하여 양주 수락산 흥국사에 봉안하기도 하였다. 또 철종 6년(1855)부터 이듬해에 걸쳐 뚝섬의 봉은사에서 『화엄경소초花嚴經疏鈔』80권을 판각하는 방대한 사업을 주도하여 완성을 보았다. 당시의 일은 만년을 봉은사에서 보내고 있던 추사 김정희가 평생의 지기였던 이재 권돈인彛齋 權敦仁에게 보낸 편지 속에서도 언급하고 있다. 이때 만들어진 경판은 판전板殿을 지어 봉안하였는데, 이 건물의 편액 ‘板殿’이라는 글씨가 김정희의 절필작이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밖에도 남호 스님은 고종 2년(1865) 해인사에 보존되어 있는 고려대장경 2질을 인경하여 설악산의 오세암과 오대산 상원사 적멸보궁에 봉안하기도 하였다.
  
이렇듯 일생의 많은 부분을 글씨와 가까운 일에 진력해서 그런지 큼직큼직하게 써내려간 글씨에서는 만만찮은 필력과 거침없는 필세를 느낄 수 있으며, 필획을 부드럽게 운용하고 있으나 그 속에는 강한 힘이 내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보존 상태도 좋아 서첩의 면면에서는 방금 붓을 놓은 것 같은 생생한 느낌이 아울러 전해진다.

서첩에 쓴 글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洞深蘤意     골 깊어 꽃피려나    
  山疊水聲     산 첩첩 물소리뿐
  谷谷杜鵑     골골이 두견이 울음
  猶有恨之     무슨 한이 남았는가
  年年芳艸     해마다 꽃다운 풀
  豈無情滿     정이 가득 않을손가
  三日東風     봄바람 사흘 불어
  一邨垂柳     온 마을이 수양버들
  一村花之     동네 가득 꽃덤불
  短亭低竹     야트막한 정자에 고개 숙인 대나무
  密小艇隱     성근 대숲 사이로 거룻배가 뵐 듯 말 듯
  寒蘆高臺     차운 갈대 높은 누대
  石出靑獨     물이 줄자 돌 드러나 저 홀로 푸르구나
  坐閒白雲     한가로이 앉아서 흰구름 바라보니
  嵓下起歸     바위 아래서 일었다가 그 아래로 스러진다
  路駕曼壑     수레 매어 길 나서니 아름다운 골짜기는
  煙也霞中     노을 속에 안개로다

흥선(직지성보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