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룡사 화악당 지탁, 화담당 경화, 보월당 혜소 진영
글쓴이 : 관리자     첨부파일 :       날짜 : 03-11-10    조회 : 3801
김룡사 화악당 지탁 진영
  

화악 지탁華嶽知濯(1750~1839)의 법명은 지탁知濯아고 법호는 화악華嶽이며, 삼각산에 살았다 하여 호를 삼봉三峰이라고도 한다. 진영에 적힌 ‘華嚴宗主’라는 칭호대로 화엄학의 대가로 이름을 떨쳤으며 뛰어난 문장력을 갖추고 유학에도 밝아 사대부와 교류가 두터웠다. 김룡사 대성암에는 그의 진영과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86~1856)가 지은 <화악대사 영찬華嶽大師影讚>현판이 함께 전해온다.
화악 스님의 진영은 일반 진영에서는 보기 드물게 정면을 바라보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얼굴이 정면을 향할 때 가장 그리기 어려운 부분은 코인데, 화악 스님의 코는 짙은 황색선으로 형태를 잡고 음영을 주어 입체감을 잘 살렸다. 그러나 신체 묘사에 있어 목을 그리지 않고 머리가 가슴 위로 이어지는 모습으로 그려 전체적으로 어눌한 인상을 풍긴다. 두손은 무릎 앞에 있고 왼손에는 주장자가 들려 있다. 바닥에 둥근 방석을 깔고 앉았으며, 뒤는 아무 배경 없이 황갈색으로만 처리하였다. 화악 스님은 화려한 장삼과 가사를 입은 모습으로 그려지는 다른 진영과 달리 짙은 회색 장삼을 입고 적색 가사를 걸치고 있는데, 이런 옷차림에서 검소했을 그의 성품을 짐작할 수 있다. 짙은 회색의 장삼은 검은 필선으로 겹겹이 겹치는 옷주름을 그리고 음영을 적절히 주어 오히려 풍부한 색감을 표현하고 있다.
진영 왼쪽에는 법손인 혜소慧昭 스님이 화악스님의 살아온 모습을 함축해서 지은 제찬이 적혀 있다. 화악스님의 문집인 『삼봉집三峰集』에는 혜소 스님이 사미沙彌 시절때 유점사楡岾寺에 머물고 있던 칠순 넘은 화악 스님을 만났던 일을 기록한 글이 실려 있다. 혜소 스님은 이 글에서 “용모는 단아하고 정신은 시원하고 맑으니 범은은 맑고 명쾌하며 얼굴에 자비가 가득하네ꡒ[容貌端雅 情神爽明 法音淸亮 滿面慈悲]ꡓ라며 화악 스님의 모습을 회상하였다. 혜소 스님이 찬을 남긴 이 진영은 아마 그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화악 스님의 모습에 근거하여 실제에 가깝게 그려진 작품이 아닐까 한다.


김룡사 화담당 경화 진영
  

화담 경화 華潭敬和(1786~1848)는 양주 화양사華陽寺의 성찬性讚 스님에게 출가하여 율봉 청고栗峰靑杲에게 구족계를 박도 화악지탁華嶽知濯의 법맥을 이어 받았다. 그는 29년 동안 장좌불와長坐不臥를 통해 선수행을 하였고, 수많은 화엄법회를 개설하고 조실로 활동하면서 대중교화에 힘썼다. 또한 선교겸수禪敎兼修뿐만 아니라 계행戒行을 철저히 지켜 율사律師로도 이름이 높았다.화담 스님의 진영은 현재 김룡사, 대승사, 통도사, 표충사, 국립중앙박물관 등에 모두 5점이 전한다. 화풍에 조금씩 차이가 나고 영제影題, 제찬자가 서로 다를 뿐 모두 정면을 응시하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김룡사의 화담 스님 진영에는 대종사大宗師에게 명명대는 ‘傳佛心印扶宗樹敎一國名現’이란 존칭과 대강백을 일컬었던 ‘華嚴大法師’라는 칭호가 적혀 있다. 진영 오른편에는 그의 법제자인 혜소慧昭 스님이 화담 스님의 행장行狀을 함축해서 지은 제찬이 적혀 있다.
진영 속의 화담 스님은 화악 스님의 진영과 마찬가지로 정면향에 가부좌를 한 자세로 앉아 있다. 얼굴은 마치 가슴 위로 올려놓은 듯 목을 표현하지 않아 매우 어색한데, 이는 주인공이 정면을 바라보는 시선과 경상 위의 서책을 본다는 두가지 시점을 함께 표현하고자 했던 의도로 해석된다. 정면을 응시하는 날카로운 눈, 오똑하게 선 코, 고집스럽게 다문 입 등 강인한 인상을 풍기는 그의 얼굴은 제찬 내용처럼 수행자의 올곧은 의지와 정신을 잘 드러내고 있다. 서안 위에 펼쳐진 『열반경涅槃經』과 『유마경維摩經』은 화담스님이 평소 강의하고 탐독했던 경전으로 여겨진다. 김룡사 대성암大成庵에는 화담 스님의 스승인 화악 스님의 예처럼 추사 김청희가 쓴 <승련거사 위화담율사찬 勝蓮居士爲華潭律師讚>현판이 함께 전한다. 화악 스님과 화담 스님의 진영은 인물 표현기법이 유사하고, 문도인 혜소 스님이 같은 형식의 제찬을 남기고 있으며 또한, 김정희가 두 선사를 위해 쓴 影贊 현판이 사중에 전승되는 점 등을 고려하면 같은 시기에 함께 제작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룡사 보월당 혜소 진영
  

보월 혜소寶月彗召는 『삼봉집三峯集』에 실린 화담 스님의 여러 제자 중 수법제자受法弟子로서 그 이름이 첫머리에 올라 있다. 화담 스님(1786~1848)의 생몰연대로 추정해보면 보월 스님은 19세기 후반에 활동했을 것으로 보인다. 보월 스님을 포함해 김룡사에는 화악 지탁華嶽智濯의 법맥을 잇는 스님으로 화담 경화華潭敬和․윤파 평익潤波平益․계월 의민桂月義旻 등의 진영이 전하고 있어, 19세기 후반에 화악문도가 김룡사에서 융성했음을 알 수 있다.
진영에서 보월 스님은 장염주와 주장자를 잡고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배경은 바닥에 화문석 돗자리를 깔고, 뒤에는 산수화 병풍이 둘러져 있다. 의자에 앉아 있고 측면을 바라보고 있지만 화악 스님과 화담 스님의 진영과 마찬가지로 목을 그리지 않고 머리가 가슴 위에 붙어 있는 것처럼 표현하였다. 실제로 보월 스님의 머리에 혹이 있었는지 진영에도 그의 머리에 작은 혹이 솟아 있다. 왼쪽에는 보월스님의 학덕을 상징하는 서류함과 필통에 꽂힌 붓과 종이, 그리고 안경집과 전적들이 있다. 이 가운데 펼쳐져 있는 책은 『법화경法華經』으로 평소 그가 즐겨 읽던 경전으로 추정된다. 이 진영 역시 오른족을 바라보는 주인공의 시점, 화문석 돗자리무늬와 의자의 태극무늬처럼 정면과 측면에서 응시한 시점, 탁자 위에 올려진 경전과 서류함처럼 위에서 바라본 시점 등 다양한 시점이 적용되어 있다.

사진1) 화악당 지탁 진영 전체와 찬문세부
사진2) 화담당 경화 진영 전체와 얼굴세부
사진3) 보월당 혜소 진영 전체


이용윤(직지성보박물관 학예연구원)


※ 11월 이달의 문화재가 늦었습니다. 양해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