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국사 석가모니후불탱,지장탱,신중탱
글쓴이 : 관리자     첨부파일 :       날짜 : 03-07-05    조회 : 4656

순조 4년(1804)에 혜국사 보광명전에는 세 점의 탱화가 제작되어 봉안되었다. 화기에 적힌 탱화 명칭은 봉안위치에 따라 상단탱上壇幀, 중단탱中壇幀, 제석합부탱帝釋合部幀 등으로 적고 있다. 여기서는 화기의 명칭보다는 도상에 따라 석가모니후불탱, 지장탱, 신중탱으로 구분하여 설명하였다.
이 세 점의 혜국사 탱화는 순조 3년(1803)에 제작된 김룡사 탱화들과 함께 19세기 중반까지 경상북도 북부지역에서 유행했던 화풍의 초기 단계를 설명할 수 있는 자료들이다. 18세기 불화는 주로 밝은 홍색과 녹색을 주조색으로 하고 밝은 중간색을 사용하였다. 그리고 바탕천이 보일 정도로 투명하게 색을 칠하였다. 이에 반해 19세기 초에 그려진 혜국사 탱화들은 짙은 적색과 녹색을 사용하면서 색의 대비가 강해지고 두텁게 색을 칠하였다. 상호는 둥근 얼굴에서 타원형으로 바뀌고 눈은 안으로 좁게 몰리고 코가 길게 그려지는 등 18세기 불화의 상호와는 사뭇 다르게 그려졌다. 신체는 어깨가 좁고 길어지면서 체형도 앞 시대보다 길죽하게 바뀌었다. 이런 변화는 19세기 초반에 경상북도 북부지역에서 활동했던 화승들에 의해 주도되었고 이후 활발한 활동을 펼친 신겸愼謙 스님의 화풍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순조 4년에 그린 세 폭의 탱화는 각 폭마다 조금씩 다른 화풍으로 그려졌다. 이는 탱화 제작을 누가 주도했느냐에 따라 각각 화풍이 달라지기 때문인 듯하다. 화기에 적힌 화사의 이름을 보면 석가모니후불탱에는 수화사로 홍안弘眼,신겸愼謙,수연守衍 스님이 순서대로 적혀 있고, 지장탱에서는 수연守衍,신겸愼謙 스님순으로, 신중탱에는 신겸愼謙,홍안弘眼,수연守衍 스님 순으로 이름이 기재되어 있다. 따라서 석가모니후불탱에는 홍안 스님의 화풍이, 지장탱에는 수연 스님의 화풍이, 그리고 신중탱은 신겸 스님의 화풍이 많이 반영되었다고 본다.

혜국사 석가모니후불탱

화기에 ‘상단탱’이라 밝히고 있는 이 불화는 석가모니후불탱이다. 이 탱화를 그린 화사는 홍안弘眼, 신겸愼謙, 수연守衍, 유심有心, 관옥寬玉, 두찬斗贊, 보원普遠, 여훈呂訓, 정철定哲, 달인達仁, 체원体圓 스님 등으로 이 중 홍안 스님과 신겸 스님은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전반에 걸쳐 경상북도, 충청북도, 강원도 등을 넘나들며 수많은 불화를 제작하였다. 두 사람이 공동 작업한 불화로는 혜국사 불화 외에도 순조 3년(1803)에 김룡사에서 제작한 여러 불화를 들 수 있다.  
  
화면 구성은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14분의 보살, 사천왕, 나한, 신장 등이 좌우대칭으로 열을 지어 자리하고 있다. 석가모니불은 오른손의 경우 촉지인을 하고 있으며, 왼손은 가슴 위로 올려 엄지에 중지와 약지를 결한 설법인을 하고 있다.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로 자리한 협시보살들은 연꽃, 고사리 모양의 지물을 들고 있거나 합장인, 설법인을 하고 있지만 지장보살을 제외하고 이 지물과 수인만으로는 각 보살의 존명을 파악할 수 없다. 이처럼 혜국사 석가모니후불탱에 보이는 석가모니불 도상과 아미타불 도상이 혼재되는 양상은 순조 3년(1803)의 김룡사 석가모니후불탱과 순조 12년(1812) 용문사 석가모니후불탱에도 보이고 있어 19세기 불화의 한 특성을 이룬다.
하단 좌우로 사천왕이 2분씩 배치되어 있다. 이 사천왕은 이목구비가 굵고 강렬한 인상에 S자형으로 튼 역동적 자세를 하고 사선으로 가로지르는 칼과 다층으로 높게 쌓아 올린 금탑을 들고 있는데, 이런 표현은 19세기 초반부터 중반까지 경상북도 북부 지역에서 계속 등장하고 있다. 상단에는 10대제자와 야차, 건달바를 포함한 신장들이 자리한다. 광배와 상단에 있는 존상들을 둘러싼 둥글게 말린 구름 모양도 19세기 불화에서 많이 사용되는 표현이다.
각 존상의 상호는 타원형의 얼굴에 코는 길고 눈은 가늘며 입은 작고 옆을 바라보는 얼굴은 이마와 볼이 둥그스름하게 튀어나와 있다. 화면의 색은 짙은 홍색과 녹색의 대비로 각 존상이 명료하게 드러나고, 금색을 사용하여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혜국사 지장시왕탱

지장시왕탱地藏十王幀은 죽은 자의 죄와 고통을 구제하기를 서원한 지장보살신앙과 인간의 전생의 죄를 심판하여 사후 태어날 곳을 정해주는 시왕신앙이 결합되어 있는 불화이다. 혜국사 지장시왕탱에는 지장보살과 협시인 도명존자道明尊者, 무독귀왕無毒鬼王, 그리고 육광보살六光菩薩을 중심으로 시왕, 사자, 동자, 옥졸 등이 등장한다.
각 존상을 살펴보면, 지장보살은 승려의 모습으로 머리에 검고 투명한 두건頭巾을 쓰고 오른손에는 투명한 보주寶珠를 들고 있다. 대좌 아래로 공양물을 든 천녀와 죄인의 선업과 악업이 적힌 두루마리를 든 판관이 서 있다. 그 좌우로 석장錫杖을 들고 있는 젊은 승려의 모습을 한 도명존자道明尊者와 원류관을 쓴 노인 모습의 무독귀왕無毒鬼王이 자리하고 있다. 지장보살의 좌우로는 시왕들이 자리하는데, 명부전에서 짝,홀수로 시왕을 배치하는 방식에 따라 지장보살 오른쪽에는 제2 초강대왕, 제4 오관대왕, 제6 변성대왕, 제8 평등대왕, 제10 오도전륜대왕이 있고, 왼쪽에는 제1 진광대왕, 제3 송제대왕, 제5 염라대왕, 제7 태산대왕, 제9 도시대왕이 자리하고 있다. 시왕 위로는 판관과 육광보살을 포함한 지옥의 마두馬頭,우두牛頭 옥졸과 귀왕, 그리고 사자와 옥졸이 모여 있다.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일렬로 존상들이 서 있는 이런 구도는 등장하는 존상 수가 많고 구름과 장식으로 화면을 촘촘히 메웠음에도 불구하고 각 존상을 쉽게 구별시키고 정리된 인상을 준다.
  
상호는 타원형의 얼굴에 코는 길게 눈과 입은 작게 그렸는데, 그림 아래에 보이는 먹선으로 된 이목구비와는 차이가 난다. 이 먹선은 초본草本의 필선으로, 이 필선과 화면에 그려진 얼굴선과 눈․코․입 등을 비교해보면 조금씩 위에 자리하고 있다. 이는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초본보다 얼굴 형태와 코를 길게 바꾸어 그리면서 나타난 결과로 짐작된다. 또한 존상 표현에서 손을 유난히 크게 그리고 필선도 가늘게 처리하는 것도 이 지장탱의 특이한 표현법이다. 이러한 몇 가지의 표현은 석가모니후불탱이나 신중탱과는 분명히 차이가 있는데, 아마도 화사 중 첫머리에 이름이 올라온 수연守衍의 화풍이 많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혜국사 신중탱

혜국사 신중탱은 순조 4년(1804)에 신겸愼謙, 홍안弘眼, 수연守衍 스님 등을 포함한 여러 화사들의 공동작업으로 제작되었다. 기본 구도는 제석천과 범천을 중심으로 한 천부天部인  상단과 위태천을 중심으로 한 팔부중이 하단으로 구분된다. 상하 이단 구조를 따르면서도 위태천을 팔부중 위로 높이 자리하게 함으로써 제석천,위태천,범천이 거의 동일선상에 놓이게 된다. 이는 위태천이 점차 중시되면서 18세기 신중탱에서는 하단에 위치했던 위태천이 19세기에는 점차 상단으로 이동되었기 때문인 듯하다.
  
혜국사 신중탱은 수많은 존상이 빼곡이 자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바닥은 격자무늬로 메워지고 하늘은 구름으로 촘촘히 차 있어 거의 여백이 보이지 않는다. 제석천과 범천 아래는 일월천자를 포함한 여러 천자들과 공양물을 든 천녀가 있고, 그 위로도 천자, 천녀 등이 에워싸고 있다. 위로 우뚝 솟은 위태천을 제외하고 나머지 신장들은 신중간의 상하질서를 엄정히 따르고 있다. 신장 뒤로 살짝 보이는 구름은 천부와의 경계선을 의미하지만 그 역할이 미약하다. 위태천은 금색의 금강저를 세로로 세운 채 합장하고 있으며 9명의 신장들은 여의주 관을 쓴 용왕을 중심으로 두 명씩 서로 마주보는 자세를 하고 일렬로 서 있다.
제석천, 범천, 위태천 등의 상호는 둥근 얼굴에 이목구비가 작으면서 안으로 몰려 있고, 신장은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강렬한 인상이다. 이런 존상 묘사는 신겸의 다른 작품에서도 꾸준히 사용되는 표현방식이다.
혜국사 신중탱은 전체적으로 색이 선명하고 화려하면서도 들뜨지 않고 가라앉은 분위기를 준다. 이는 밝은 홍색이나 녹색 대신 짙은 적색과 녹색을 사용하고 다른 불화에 비해 금색을 많이 사용하면서 안료를 두껍게 칠했기 때문이다.

이용윤(직지성보박물관 학예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