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산 직지사 완문 金山 直指寺 完文
글쓴이 : 관리자     첨부파일 :       날짜 : 03-05-04    조회 : 3963
완문이란 조선시대 관부官府에서 향교‧서원‧결사結社‧개인 등에게 발급하던, 어떤 사실의 확인 또는 권리나 특권을 인정하는 확인서, 인정서의 성격을 갖는 문서이다. 직지사 완문은 직지사에 관례로 부과되던 갖가지 잡세와 요역을 도순사都巡使의 이름으로 줄여줌을 확인하는 공문서이다.
  완문은 책자로 만들어 발급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직지사 완문 역시 책자의 형태로 전해온다. 책자는 앞과 뒤의 표지와 내지 14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앞 표지 왼편 상단에는 간정한 해서체로 ‘金山 直指寺 完文’이라는 표제가 씌어 있다. 14장 28면으로 묶여진 완문의 내용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면부터 제8면까지는 완문을 발급하게 된 경위가 적혀 있고, 제9면부터 24면까지는 존치할 세목과 혁파할 세목을 구분하여 조목별로 적고 있으며, 나머지 2장은 빈 상태로 두었다. 책이 커서 가로로 절반을 접어 보관해 온 탓인지 접혔던 부분이 일부 손상되어 있으며, 따라서 그 부분의 글자는 판독이 어려운 경우도 있다. 현재는 매 장마다 종이를 덧붙이고 표지 위에도 새로운 표지를 덧대어 장황한 상태이다.  
  
  
발급 경위를 살펴보면 대강 다음과 같다. 직지사는 삼한의 고찰이자 열성조列聖朝의 태실胎室과 어필御筆을 봉안한 장소이며, 나아가 세자를 위해 축원하는 곳이어서 그 소중함이 여타 사찰과 크게 구별되는 절이다. 그런데 승려들은 흩어지고 절은 피폐해져 아침저녁을 보장키 어려운 지경이 되었다. 다행히 시강원侍講院에서 특별히 공명첩空名帖 5백장을 내려주어 절을 수리하게 하였으니, 이에 발맞추어 진상進上 물품을 제외한 각종 잡역을 면제하여 승려들로 하여금 성심껏 국가의 무량한 수복壽福을 기원토록 하는 바이니, 이를 변함없이 준행遵行해야 할 것이다.
  이어서 완문의 뒷부분은 직지사에 부과된 33가지 잡세와 요역 가운데 7가지만을 존치하고 나머지 26가지는 혁파할 것을 ‘雜役存革’이라는 항목 아래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나열하여 적시하고 있다. 그 내용은 대체로 왕실과 중앙정부에 납부하던 물품이나 대금은 그대로 존치하고, 지방 관아에서 부과한 잡세와 잡역은 면제하는 것으로 대별된다. 존치하는 7항목을 나열하면 아래와 같다. ① 어람지御覽紙 203속束, 상백지常白紙 58속과 장지壯紙 대전代錢 113냥, □□24냥은 매년 진상할 것 ② 세자궁世子宮에 납부하는 축상자ꟍ箱子 대전 10냥은 매년 진상할 것 ③ 국휼國恤시 편숙마片熟麻 7근斤씩 수납輸納할 것 ④ 영문營門의 축상자 5부部 대전 25냥에서 본가本價 2냥은 제외할 것 ⑤ 봉화저주지奉化楮注紙 관례로 납부하던 대전 2냥씩 수납할 것 ⑥ 율목정차관栗木定差官에게 관례로 납부하던 대전은 10냥씩 수납할 것 ⑦ 성균관 책지冊紙 대전 3냥씩 상납할 것.
  
  
다음으로 혁파의 대상이 되는 26조목은 일일이 매거하지 않는 대신 품목을 대충 들어 보면 아래와 같다. 식년式年 호적 대전, 향교에 납부하던 장지‧백지‧피지‧황의지‧밀가루‧사기그릇‧노끈‧수수, 미투리, 누룩, 유석油席(비올 때 쓰기 위하여 이어붙인 두꺼운 기름먹인 종이), 돗자리, 조리, 주걱, 체, 장유지壯油紙, 짚신, 태장笞杖, 가화假花, 백미, 삼끈, 송화가루……. 이상의 여러 물품들을 갖가지 명목으로 직접 납부하거나 돈으로 대납하는 것이 관례였는데, 이를 모두 혁파한다는 것이 26조목의 내용이다.
  완문은 일반적으로 발급일자에 연호를 사용하지 않고 간지만을 표기하므로 연대를 추정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직지사 완문 역시 발급일자에 연호는 밝혀져 있지 않고 ‘丁亥 五月’로 간지만이 표기되어 있어 정확한 발급 연대가 언제인지 단언키 어렵다. 다만 완문 내용 가운데 직지사가 태실과 어필을 봉안한 곳이자 세자궁을 위해 축원하는 절이라고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때의 정해년이 영조 43년(1767)이 아닌가 짐작된다. 완문은 ‘도순사都巡使’ 명의로 작성되었는데, 이때의 도순사는 ‘도순찰사都巡察使’를 일컫는 듯하다.
  
조선시대의 도순찰사는 재상급 관료로서 왕명을 받아 외방에 파견되던 임시관직이었다.『속대전續大典』에 따르면, 도순찰사는 종1품관 또는 정2품관으로 임명하는 것이 관례였다.
  완문은 당시의 사회‧경제적인 실태를 엿볼 수 있는 자료이다. 직지사 완문 또한 당대의 사원경제 운영 현황, 사찰과 승려들의 사회경제적인 지위, 지방 관아나 향교 등 공공기관의 재정운용 형태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소중한 문헌이다.  

흥선(직지성보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