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불도 놀이
글쓴이 : 관리자     첨부파일 :       날짜 : 03-02-03    조회 : 4844
  
정초, 절집에서 행하는 놀이로 성불도 놀이가 있다. 윷놀이나 승경도陞卿圖놀이처럼 성불도 놀이도 주사위를 던져 나온 점수에 따라 패를 움직여 부처의 단계[佛位]에 가장 먼저 도착한 사람이 승리하게 된다. 이 놀이를 처음 만든 사람은 청허 휴정淸虛休靜(1520~1604)이라 한다.
성불도 놀이에는 부처가 되는 과정을 도표로 만든 그림인 성불도成佛圖를 포함해 주사위와 패가 쓰인다. 직지성보박물관에 소장된 2점의 성불도는 본래 청암사 백련암 암주스님이 가지고 놀던 것으로 하나는 한문본이고 다른 하나는 한글본이다. 한글본에 비해 한문본이 제작연대가 앞선다고 한다. 성불도의 구성은 2점이 거의 동일하지만 좌우 배치가 서로 반대로 되어있고 외곽을 두르는 육도六道와 28천의 명칭이 부분적으로 다르게 되어 있다. 각 칸에는 해당자리 이름이 크게 적혀 있고, 그 밑에는 주사위를 던져 나오는 단어에 따라 패가 이동해야 하는 칸의 이름이 작은 글씨로 명시되어 있다.  
주사위는 3개가 사용되며 사각형의 주사위가 잘 구르도록 모서리를 잘라 다각형으로 만들었다. 6면에는 南·無·阿·彌·陀·佛이  새겨져 있다. 윷놀이의 말처럼 주사위를 던져 나오는 점수에 따라 움직이는 5cm정도의 막대기가 있는데, 불패佛牌라고 한다. 불패에는 석가여래, 문수보살, 보현보살,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 등 불보살의 존명이 적혀있다. 놀이에 참여한 사람은 각자 패를 잡고 주사위에 새겨진 남·무·아·미·타·불에 따라 패의 위치를 변동한다.  
  

현재 성불도놀이는 겨우 그 명맥을 유지할 정도이며 노는 방식도 그때마다 바꾸어 놀기 때문에 조금씩 차이가 난다. 성불도 놀이 방식을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두 명 이상의 인원이 모여 논다.
․ 놀이에 앞서 각자 자신의 불패를 정한다.
․ 정한 패는 놀이가 처음 시작되는 인취人趣 위에 놓고 차례로 주사위 3개를 두 손에 쥐고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며 성불도 위에 던진다. 이때 주사위 윗면에 나타난 글자에 따라 불패를 옮긴다. 불패가 옮겨지는 자리는 각 칸 아래에 써져 있다. 예를 들어 인취에 불패를 놓고 주사위를 던져서 2개가 불佛이 나오면 불패는 정절문으로, 1개가 불이면 원돈문으로, 불타佛陀가 함께 나오면 원돈문으로, 타陀가 2개 나오면 입산으로 자리를 옮긴다. 이런 방식으로 주사위에 나온 글자와 칸마다 적혀 있는 이동 자리에 따라 불패는 자리를 바꾸면서 옮긴다.
․ 한사람이 주사위를 던질 때마다 모두 합장하고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한다. 놀이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의 경우 한 사람은 불패를 운행運行하고 한 사람은 염불 목탁을 치게 한다.
․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먼저 성불한 사람에게 다 함께 삼배를 올린 후 설법을 듣고, 먼저 성불한 사람은 그 판에서 가장 늦은 사람의 편이 되어 함께 진행한다.      

성불도는 불교의 우주관과 수행방식을 놀이판에 맞게 재구성하였다. 하단 중앙의 인취人趣를 시작으로 좌우에 사대륙四大陸이 있고 왼쪽부터 욕계欲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의 28천과 육도六道, 천신天神의 이름을 차례로 배치하면서 사방을 둘렀다. 사방 중간에는 아귀문餓鬼門,단상斷想,참죄문懺罪門을 두고 모서리에는 독사毒蛇, 전나라全那羅, 관노官奴, 무골충無骨虫 등의 함정을 마련해 변화를 주고 있다.
  
중앙에는 세 가지의 수행방법을 통해 부처의 단계로 올라가는 과정이 그려져 있다. 보다 자세히 살펴보면, 염불문念佛門·정절문正截門[徑截門]·원돈문圓頓門을 중심축으로 하여 위로 염念·선禪·교敎와 관련된 용어들이 나열되어 있고, 맨 위에는 각각의 수행방법을 통해 얻게 되는 최고 경지인 화신化身·등각等覺, 법신法身·대각大覺, 보신報身·묘각妙覺 등의 불위가 적혀 있다.
선과 함께 교와 염불을 함께 닦는 삼문수업三門修業을 주창한 이가 바로 청허 휴정이며, 이후 진허 팔관振虛捌關은 《삼문직지三門直指》(1769)에서 삼문을 염불문,경절문,원돈문으로 나누어 체계적으로 설명하였다.
조선 후기에 독자적으로 형성된 불가의 수행방식인 삼문수업은 성불도로 응용되어 누구나 쉽고 즐겁게 놀 수 있는 놀이로 발전하였으며 몇 십년 전까지만 해도 절집의 전통놀이로 성행하였다고 한다.  

이용윤(직지성보박물관 학예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