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룡사 목조동자상 金龍寺 木造童子像
글쓴이 : 관리자     첨부파일 :       날짜 : 02-12-03    조회 : 4009
  
해맑은 어린아이의 모습을 한 동자상은 사람들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불교 조각품 가운데 하나이다. 동자상은 주로 명부전에 모신 시왕(十王) 옆에 자리하며 드물게 나한전에 놓이기도 한다. 명부전에는 많게는 10구에서 적게는 2구의 동자상이 있다. 이들은 열 명의 대왕의 심부름을 해주는 시동(侍童)들이자 어둡고 무서운 명부(冥府)세계에 생기를 불어넣는 존재들이다. 명부신앙에 관련된 경전에서 동자는 사람이 살아있을 때 행한 선업(善業)과 악업(惡業)을 적어두었다가 그 사람이 죽으면 명부(名簿)를 판관과 대왕에게 갖다 바치는 선악동자(善惡童子)로 언급되고 있다. 그래서 돈황에서 출토된 <예수시왕생칠경 변상도>(10세기)에서 동자는 손을 모으고 있거나 선악을 기록한 두루마리를 들고 있으며, 고려시대 간행된 해인사 <예수시왕생칠경 변상도>에 실린 동자 역시 두루마리를 가슴에 품고 있다. 조선후기 명부전에 봉안된 존상을 보면, 두루마리는 오히려 판관상이나 사자상(使者像)이 들고 동자상은 어린 아이의 성품이 그대로 드러나도록 사자·봉황과 같은 동물을 안고 있거나 과일이 올려진 공양물 또는 연꽃을 들고 있다. 외모는 머리를 신체보다 크게 표현하고, 머리는 쌍상투를 틀거나 땋아 늘어뜨리고 있으며 중국 옷이나 우리나라 어린이가 입는 까치두루마기를 입고 있다.
  
직지성보박물관이 소장한 동자상 가운데 꾸밈없는 아이를 연상시키는 동자상으로는 김룡사 동자상을 꼽을 수 있다. 모두 4구로 원래 김룡사 명부전에 있던 것이다. 김룡사 명부전은 사찰을 에돌아 흐르는 시내 건너편에 외떨어져 있다. 사적기에 따르면, 숙종 40년(1714)에 명부전이 이 자리에 세워졌고 정조 4년(1781)에 중수를 하였으며, 순조 21년(1821)과 대한제국 1년(1897)에는 불상 개금과 단청 불사가 있었다. 동자상은 50cm 내외의 통나무로 상과 받침대를 제작하였다. 넓적한 얼굴에 가늘고 긴 눈과 반달형 눈썹, 짧고 오똑한 코, 좌우로 살짝 올라간 입 등 야무진 인상이다. 몸체는 작지만 튼튼해 보이고, 머리는 앞으로 숙여 어깨가 굽어있다. 동자상의 상호와 몸의 표현 형식은 본존인 지장보살상과 도명존자상, 무독귀왕상, 그리고 시왕상이나 그 밖의 권속들과 같다. 따라서 이 동자상은 본존상과 시왕상이 봉안되었던 숙종 40년에 제작되었고 적어도 불상이 개금되었던 순조 21년에 개채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룡사 동자상은 쌍상투를 틀어 올리고 중국 옷을 입고 있는 동자상 1구를 제외하면 모두 머리를 길게 땋고 바지저고리를 입은 우리나라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다. 정면을 향해 똑바로 서 있지 못하는 아이를 그대로 표현한 듯 모두들 한쪽 다리에 힘을 주어 몸이 약간 기울어져 있고, 밝은 아이의 이미지를 살리고 싶었는지 얼굴은 희고 분홍색·하늘색·붉은색·녹색 등 환한 색의 옷을 입고 있다. 그리고 사자를 잡고 노는 아이, 벼루를 받쳐 든 아이, 귀중한 것을 올려놓은 듯 하늘색 천으로 두 손을 덮은 아이, 그리고 무엇인가를 손에 쥐고 서 있었을 아이 등 4구의 동자상들은 투박하지만 자신만의 개성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김룡사 동자상 중 가장 생기 있는 동자상은 사자를 잡고 노는 아이이다. 새침한 다른 동자상과 달리 눈가와 입가에 배인 웃음에서 장난기가 발동했음을 읽을 수 있다. 양반 집 자제인 듯 까치두루마기를 입고 신발은 붉은 바탕에 녹색을 덧댄 태사혜를 신고 있다. 이 동자상에서 가장 해학적인 표현은 사자의 엉거주춤한 자세이다. 아이를 향한 사자의 얼굴은 양 송곳니가 드러날 정도로 씩 웃고 있다. 하지만 아이가 맘대로 끌어당기는 춤사위에 사자는 마냥 휘둘릴 수 없었던지 왼쪽 뒷발은 힘껏 바닥을 디디고 오른쪽 뒷발은 동자의 다리에 헛발질을 해대고 있다. 하지만 표정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자의 발버둥에도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사자 앞다리를 잡고 오른쪽으로 잡아끌기 위해 아이의 오른팔은 왼팔보다 올라가 있고 소맷자락과 허리띠는 양쪽으로 날리고 있다. 사자 역시 아이에게 밀리지 않게 한쪽 발을 바닥에 딛고 몸은 포물선을 그리며 길게 뒤로 빼고 있다. 아이와 사자의 실랑이, 아이와 사자의 몸짓에서 그들간의 힘 겨루기를 느낄 수 있다.  
김룡사 동자상처럼 조선후기의 동자상들은 죽은 이의 선·악업을 기록하는 영특한 아이가 아닌 우리 집과 이웃에 사는 장난기 많고 천진한 아이의 모습으로 조각되었다. 이는 잘못을 저지른 어린 손자가 할아버지에게 응석을 부리듯 시왕의 권속 가운데 동자만이 유일하게 엄중한 대왕에게 다가가 죽은 이의 천도를 부탁할 수 있는 존재로 믿고 싶었던 우리 어르신네들의 조상 위하는 마음에서 나온 발상일지도 모른다.    

이용윤 (직지성보박물관 학예연구원)


찬하여 이르노니                                            

오관대왕 업의 저울 허공에 걸려 있고
양옆의 두 동자가 가진 업의 명부 틀림없네.                  
죄의 가벼움과 무거움이 어찌 원하는 마음대로 되겠는가        
업의 저울이 내려가고 올라감은 자신의 행한 옛 인연에 달려있을 뿐.  

讚曰

五官業秤向空懸
左右雙童業薄全
輕重豈由情所願
低昻自任昔因緣

- 예수시왕생칠경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