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화엄법계관문인명입정리론 합본
글쓴이 : 관리자     첨부파일 :       날짜 : 02-11-03    조회 : 4275
직지성보박물관에 소장된 여러 경전 가운데 <<주화엄법계관문인명입정리론합본(注華嚴法界觀門因明入正理論合本)>>이란 경전 1책이 있다. 이 책은 숙종 39년(1713)에 경상도 산음땅 산왕사(王山寺)에서 판각한 목판본을 인경(印經)한 것으로 조선 후기 간행본이다. 오래된 서적이거나 희귀본은 아니지만 책 안에는 마치 징검다리 건너듯 조선 후기에 활동했던 몇몇 학승(學僧)들의 학문적 자취를 한걸음씩 따라 걷는 즐거움이 있다.

  

책 표지 왼편에는 '法界觀門'이란 제목이 있으며 그 오른편에는 조금 작게 '附因明論'이란 제목을 적어 다른 책이 덧붙여 있음을 표시하고 있다. 책 내용 역시 <<주화엄법계관문注華嚴法界觀門>>과 <<인명입정리론因明入正理論>> 등 서로 다른 성격의 경전을 하나로 묶어 장황하였다. 정확하게 책명을 밝힌다면 <<주화엄법계관문인명입정리론합본>>이 된다.<<주화엄법계관문>>은 두순(杜順 557∼640년)이 지은 <<화엄경>> 해설서인 <<화엄법계관문華嚴法界觀門>>에 종밀(宗密 780∼840년)이 다시 해석[註]을 더한 경전이다. 두순은 중국 화엄사상에 기틀을 다져 화엄초조(華嚴初祖)로 칭송되는 인물이고, 종밀은 화엄과 선을 결합하여 화엄사상에 새로운 물꼬를 튼 이로 화엄오조(華嚴五祖)로 칭송되고 있다. 중국화엄사상의 태두인 두 사람의 사상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경전인 만큼 화엄을 공부한다는 승려들은 한번쯤은 정독(精讀)하고픈 서적 중 하나였을 것이다. <<인명입정리론>>은 인도 샹카라스바민(Sankarasvamin 天主, 450∼530년경)이 저술한 경전이다. 현장(玄莊 602∼664년)이 한역한 이후 그의 제자들이 주석을 단 책들이 주로 읽혀져 왔으나 여기에는 만력 18년(1590)에 진계(眞界)가 <<인명입정리론>>의 내용을 도표화하고 해제한 내용이 실려 있다. 조선후기 스님들에게 진계의 해제 방식은 새로운 관점을 적용한 최신 학문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새로운 불서에 대한 조선 후기 승려들의 학문적 열망은 두 경전 말미에 쓴 무용수연(無用秀演 1651∼1719)의 발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중간화엄법계관문발>에는 사형인 설암(雪巖秋鵬[1651∼1706]으로 추정)이 가지고 있던 중국본[唐本] 1책을 판각하기 원해 간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중간인명론발>에서는 법형 석실명안(石室明眼 1646∼1710)이 신유년(1681년)에 표류해온 중국배에서 구한 책이라고 한다. 석실명안, 설암, 무용수연 등이 활동했던 17세기 후반은 화엄사상이 새롭게 각광받던 시기였다. 숙종 7년(1681) 임자도(荏子島)에 명나라 평림섭(平林葉)이 교간(校刊)한 책 190권을 실은 배 한 척이 도착하였고 이 속에서 <<화엄경소초>>, <<화엄현담회현기>> 등 국내에 아직 유통되지 않은 화엄관련 서적이 대량으로 쏟아져 나왔다. 당시 화엄종주로 칭송받던 백암성총(柏庵性聰 1631∼1700)은 그의 제자인 석실명안과 무용수연과 함께 숙종 16년(1690)에 이 책들을 모아 대규모의 판각사업을 일으켰다. 따라서 설암과 석실명안의 이 수택본(手澤本)들은 임자도를 통해 유입된 책일 가능성이 높으며, 무용수연은 스승의 유업(遺業)을 이어 설암과 석실명안의 제자인 법담(法湛)이 제의한 경전 간행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였던 것이다.
책으로 간행된 이후 이 책은 여러 소장자의 손을 거쳐 오늘에 전하고 있다. 책 속에는 소장자 가운데 이 책을 사용했던 두 스님의 자취가 남아 있다. 책을 펼치면 한문 구절마다 조사, 어미, 접사의 기능을 하는 토(吐)가 달려있다. 이 토는 <중간인명론발>에 적힌 묵서기에 의하면, 헌종 14년(1848)에 설두유형(雪竇有炯 1824∼1889)이 단 것이다(道光二十八年戊申元月一順昌龜巖寺靈波後人雪竇奉聞懸吐). 설두유형은 조선후기에 대흥사 13강백(講伯) 중 한 명으로 이름을 떨쳤던 분이다.
  
한성(韓醒)과 백파긍선(白坡亘璇 1767∼1852)에게 <<화엄경>>을 배웠고 28세에 백파긍선의 강석을 이어받아 강주로 활동하였다. 묵서기에 적힌 순창 구암사는 백파긍선이 주석한 사찰이다. 24세였던 설두유형은 백파긍선에게 <<화엄경>>의 법문을 구했을 때 스승에게서 이 책을 권유받았거나 스스로 참고하면서 공부하였을 것이다. 설두유형에 이어 이 책을 소장했던 스님은 경운원기(擎雲元奇 1852 ∼1936)이다. 책표지 하단 오른쪽에는 윤필(潤筆)로 쓴 '擎雲'이란 그의 법호가 있고, 첫 장에는 '金擎雲印'이란 인장이 찍혀있다. 경운원기는 조선 말부터 20세기 초에 활동했던 불교사상가이자 서예가로 이름이 높았다. 명성황후(明成皇后)의 발원으로 <<법화경>>(1880)을 필사하였고, 1896년부터 6년 동안은 <<화엄경>>을 사경하였다. <<화엄경>>을 서사할 때는 1행이 끝날 때마다 부처님께 일배(一拜)를 올리며 사경을 완성했다고 한다. 책의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하고 책의 표지와 안에 그의 이름과 인장을 남긴 걸 보면, 경운원기가 무척이나 애지중지한 느낌이다. 추측이지만 경운원기는 이 책을 설두유형에게 직접 물려받았을지도 모르겠다.      

이용윤(직지성보박물관학예연구원)

도1. 주화엄법계관문인명입정리론 합본
도2. 설두유형의 묵서기
도3. 경운원기 진영과 필적, 그리고 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