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금니금강보문발원합부 사경
글쓴이 : 관리자     첨부파일 :       날짜 : 02-08-03    조회 : 3064
빛깔 고운 장지(壯紙)에 금은니로 한획 한획 정성껏 써 내려간 글씨. 섬세하고 화려한 변상도와 표지화. 아름다운 사경은 보는 이의 눈길을 사로잡고 자신도 모르게 숨결을 잦아들게 한다. 불법을 널리 보급하기 위해 시작되었던 사경(寫經)은 인쇄술이 발전하면서 전법(傳法)보다는 신앙적인 면에서 빈번히 이루어졌다. 경전을 베껴 쓰는 일이 몸으로 행하는 정진(精進)임을 언급한 《석가여래행적송》이나 서사(書寫)의 공덕을 통해 얻게 되는 좋은 인연을 설법한 《법화경》 등 모두 사경이 지극한 신앙 행위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까닭에 고려 왕실과 귀족들은 그들의 온 정성과 재력을 다해 감색, 갈색, 자색 등으로 물드인 종이에 금과 은으로 획을 그어 최상의 공덕물인 사경을 앞다퉈 제작하였다.  
  
직지성보박물관에서 소장한 <백지금니금강보문발원합부> 사경은 고려 공민왕 20년(1371)에 제작된 것이다. 책머리를 장식한 변상도는 기교를 부리지 않고 간략하게 그려졌고, 고려 말에 유행한 안진경체로 쓴 글자에는 강건함이 배어 있다. 표지화는 감지 바탕에 굵은 은니와 가는 금니로 그린 보상화무늬로 장식하였고, 중앙에는 금은니로 네 변을 돌려 안에 금니로 개법장진언(開法藏眞言)을 표시하고 이어 제목인 금강보문발원합부(金剛普門發願合部)를 적었다. 시주자인 묘지(妙智)와 묘수(妙殊)라는 두 비구니의 심성만을 담아 사경을 해서일까. 백지에 금니로 필사한 이 사경은 극적인 화려함보다는 수수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여느 사경처럼 미감을 자극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이 사경의 존재가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다른 사경에서 볼 수 없는 다양한 시도들이 이 사경에서 이루어졌고 그 가치는 자못 무게가 있다.  
'금강보문발원합부'라는 표제에서 보듯이 이 사경은 《금강반야바라밀경》, 《법화경》의 <관세음보살보문품>, 영가현각(永嘉玄覺:665∼713)이 지은 《선종영가집》의 <발원문> 등 세 경전으로 이루어졌다. 《금강반야바라밀경》, 《보현행원품》, 《대불정수능엄신주》, 《아미타경》, 《법화경》의 <관세보살보문품>, 《관세음보살예문》 등 여섯 경전을 묶은 《육경합부》(六經合部)가 간혹 간행되기도 했지만 이처럼 세 경전을 뽑아 사경한 예는 매우 희귀하다. 금강반야바라밀경은 기원정사(祇園精舍)에서 석가모니불이 수보리의 질문에 따라 설법한 반야사상을 적고 있으며, 《법화경》의 <관세음보살보문품>은 관음보살이 갖가지 재앙으로부터 중생을 구제하는 내용과 관음보살의 32가지 응신(應身)을 서술된 품으로 관음신앙을 대표한다. 《선종영가집》은 선종의 교리를 풀이한 책으로 총 십문(十門)으로 구성되며, 여기에는 이 중 <발원문>만을 수록하였다. 발원문뿐이지만 우왕 7년(1381)에 청룡사에서 간행한 선종영가집(보물 제641호)보다 제작 연대가 앞서는 귀중한 자료이다.  
  

절첩본인 사경의 표지를 넘기면 바로 변상도가 나온다. 그림은 서툴지만 표현 형식에 있어  주목되는 몇 가지가 있다. 가로로 길게 펼쳐지는 일반적인 변상도와 달리 이 변상도는 23.3cm×9.3cm로 세로가 길며 서로 다른 내용의 변상도 두 폭이 좌우에 자리한다. 이 또한 보기 드문 배치 방식이다. 오른쪽은 《금강반야바라밀경》에 관한 변상도로 석가모니불이 기원정사에서 설법하는 모습을 표현하였다. 수미단 위에 앉은 석가모니불은 설법인을 하고 있으며 수미단 좌우에는 두 명의 보살이 합장한 자세로 협시하고 있다. 석가모니불 뒤에는 보리수로 보이는 나무가 있고 빈 공간에는 꽃들이 흩날리고 있다. 여래와 보살을 상하로 이분시킨 구도는 고려 불화에서 쉽게 볼수 있는 형식이다. 왼쪽의 변상도는 《법화경》의 <관세음보살보문품>과 관련된 관음보살도이다. 관음보살과 선재동자가 대각선으로 조응하는 구도, 위가 넓은 암반(巖盤), 암반 끝에 위치한 버들가지가 꽂힌 정병 등 수월관음 도상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면밀히 살펴보면, 관음보살은 백의(白衣)를 입고 암반 위에 가부좌하고 있으며 보살 뒤에는 두 그루의 대나무가 솟아있다. 고려 수월관음도에서 화려한 투명사라(紗羅)을 걸치고 암반을 의자 삼아 반가좌를 취한 수월관음의 모습과 뒤에 솟은 세 그루의 대나무와는 다른 표현법이다. 오히려 이 도상들은 중국 송시대에 그려진 수월관음도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다. 우리는 이 관음보살에서
  
고려말 조선초, 관음보살의 자세가 측면에서 정면으로, 반가좌에서 가부좌로 변해가고 투명사라와 백의가 혼재하는 관음보살 표현법의 점진적인 변화를 읽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절첩본 끝에는 '洪武辛亥七月日誌 施主比丘尼妙智 同願比丘尼妙殊'라는 사성연대와 시주자가 적혀 있다. '洪武'라는 연호에서 '武'자는 고려 제2대 왕인 惠宗(914∼945)의 이름 '武'자와 동일한 글자로 피휘결획(避諱缺劃)의 전통에 따라 내려긋는 획을 생략하였다.
  
이용윤(직지성보박물관 학예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