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령사 아미타후불탱
글쓴이 : 관리자     첨부파일 :       날짜 : 02-07-03    조회 : 3820
  
상주 서북쪽에는 상주와 문경을 아우르는 일곱봉우리의 산, 칠봉산(七峰山)이 솟아있다. 이 산 기슭에는 선덕왕 7년(638)에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황령사(黃嶺寺)가 자리하고 있다. 절의 창건 시기를 곧이 믿기 어렵지만, 고려 고종 41년(1254)에 이 절 승려 홍지가 관병을 지휘하여 몽고군을 격퇴하였고 임진왜란때에는 함창지역의 의병이 황령사에서 궐기했다는 사실만은 역사속에 또렷히 남아 있다. 황령사의 전각들은 임진왜란때 대부분 불길 속에 사라졌고 이후 대웅전과 심검당을 중창했지만 이 역시 1962년에 소실되었다. 그나마 사중에 목조대세지보살상(1729년), 아미타후불탱(1786년), 신중탱(1786년) 등이 전하고 있어 조선후기 황령사의 면모와 신앙을 가늠해볼 수 있다.
황령사 대웅전에 봉안했던 아미타후불탱과 신중탱은 보존상태가 좋지 않아 현재 직지성보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이 불화들은 오랜 세월 향과 촛불의 그을음에 노출되어 화면이 어둡게 변색되었고, 신중탱의 경우 이목구비에 검은 선을 덧칠해 종교적 엄숙함은 사라지고 무속화처럼 보인다. 다행히 아미타후불탱은 단아한 상호에 세장한 신체로 표현된 존상과 이를 이루는 섬세한 필치와 아름다운 문양 등은 여전히 화면속에 살아있어 그림의 격을 유지하고 있다.

  


아미타후불탱은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팔대보살, 10대 제자, 사천왕과 해당권속 등으로 구성된다. 아미타불과 협시인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은 법당에 모셔진 아미타삼존불처럼 수미단 위에 앉아있다. 수미단 아래에는 여의(如意)를 든 문수보살과 연꽃을 든 보현보살이 좌우에 서있고, 이들 옆에는 양손으로 금강저를 들어보이는 금강장보살과 합장을 한 제장애보살이 자리하며,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 뒤로 미륵보살과 지장보살이 있다. 이처럼 아미타불을 팔대보살이 일차적으로 에워싸고 이어 구름을 경계로 상단 좌우에는 가섭과 아난을 포함한 10대제자와 용왕과 용녀가, 하단 좌우에는 사천왕이 자리한다. 상단 맨 중앙에는 불화의 충만한 생명력과 종교적인 힘을 상징하는 복장낭(腹藏囊)이 그려져 있다. 본존인 아미타불은 이목구비가 지워져 상호를 알아보기 힘들지만 각 보살들은 불화에서 요구되는 이상적인 상호를 하고 있다. 자칫 형식적으로 그리기 쉬운 10대 제자와 사천왕도 인간적이고 생동감있게 처리하였다. 색은 많이 둔탁해졌지만 밝은 홍색과 녹색인 주조색에 군청색, 노란색, 주황색 등의 보조색이 어우려져 만들어낸 차분한 색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또한 자세히 살펴보면, 보관·의복·기타 장식물의 세부문양이 다채롭고 화려해서 화면에 은근한 아름다움을 더한다.
아미타후불탱을 그린 화승(畵僧) 중 첫머리에 이름이 올라있는 이는 상겸(尙謙)이다. 상겸은 18세기 후반 전국에 명성을 떨쳤던 경기도 화승으로 정조가 사도세자의 원찰로 용주사를 중창할 때 김홍도는 삼세후불탱을 제작하였고 그는 감로탱을 맡아 완성하기도 하였다.
  

경기도에서 활동하던 상겸은 황령사 불사 이후 정조 12년(1788)에 상주 남장사 괘불과 정조 14년(1790)에 남장사 16나한탱을 조성하는 등 상주 지역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상겸과 그의 동료들은 상주에서 머물면서 경북에서 활동했던 여러 화승들과 인연을 맺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이들의  화풍은 신겸(信謙)과 같이 경북 북부에서 활동하는 화승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이처럼 황령사 아미타후불탱은 그림의 격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상겸파(尙謙派)가 경상북도에서 제작한 불화 가운데 가장 앞선 예이자 19세기 초반 상주, 문경, 예천 등지에서 나타나는 경북 북부의 새로운 화풍 형성과정을 이해하는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이 용윤(직지성보박물관 학예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