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銀杏樹)
글쓴이 : 관리자     첨부파일 :       날짜 : 02-03-01    조회 : 3104
  
영조 55년(1776)에 급고자(汲古子)가 정리한 《김산직지사중기(金山直指寺重記)》에는 당시 직지사의 규모를 가늠할 수 있는 여러 물목(物目)이 수록되어 있다. 이 중 가장 이색적인 물목은 은행나무(銀杏樹)이다. '銀杏樹'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첨부되어 있다.
  
은행나무 한그루가 천왕문 왼편에 있다. 무릇 초목은 본디 중기(重記)에 실리지 않지만  이 나무만은 절의 중엽부터 있으며 절과 더불어 시종(始終)을 함께 한 나무로 오랜 세월이 흘러 그 늙은 형세가 기이해지니 가히 사찰의 고적(古蹟)이라 이를 만 하다. 또한 사명당대사가 어린 시절, 백부와 함께 이 나무 아래에서 의지하며 하룻밤을 머물고 꿈으로 쌍룡이 나타나 이로 인해 스승과 제자의 인연을 맺게 되었다. 천년 자취가 전해짐이 여기에 있음을 가히 볼 수 있으니, 오늘에 이르러 봄빛은 늘 마른 잔가지 위로 비추고 분분히 떨어지는 성긴 잎은 바람에 부딪쳐 어지러이 날리니 기이하고 특이하구나! 짐짓 이를 적어 뒷날 기이한 경관으로 삼고자 한다.〔銀杏樹一株 在天王門左. 大抵草木 固非重記所載 而盖此樹 寺在中葉與寺同始終者 閱久千秋老形崎嶇 可爲刹之古蹟. 且泗溟堂大師垂초時 與其伯父 寄宿此樹下 雙龍夢現 因獲師子之緣. 千秋遺종 在此可瞻 而今至 春光每歸於殘條之上 落落소葉 臨風婆娑 奇哉異哉. 姑書此 爲後日之奇觀焉.〕

앞의 내용대로 이 은행나무는 직지사로 출가했던 사명대사(1544∼1610)에 관한 일화를 간직하고 있다. 우리에게 사명대사로 널리 알려진 그의 법휘(法諱)는 유정(惟政), 자는 이환(離幻), 호는 종봉(鐘峯)·송운(松雲)·사명(四溟)이고 시호(諡號)는 자통홍제존자(慈通弘濟尊者)이다. 출가에 대한 이야기는 광해군 4년(1612)에 허균이 지은 사명송운대사석장비문(四溟松雲大師石藏碑)와 인조 18년(1640)에 문제자 해안(海眼)이 지은 사명당송운대사행적(四溟堂松雲大師行蹟)에서도 보인다. 여기서는 '황악산 직지사의 신묵화상에게 출가했다'〔…卽投黃嶽山直指寺禮信默和尙被剃(石藏碑), … 投黃嶽山直指寺 禮信默和尙講下(行蹟)〕라며 간략히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직지사는 사명대사의 출가 사찰로서 당시의 일을 은행나무에 투영하여 소상히 기록하였다. 사명대사와 은행나무에 관한 사연은 사적기가 쓰여진 25년 뒤, 정조 24년(1800)에 장백영(張伯永)이 쓴 〈행수명 병서(杏樹銘幷序)〉현판에서도 볼 수 있다.
  

          
내가 지난 날 금릉(金陵)의 직지사(直指寺)에 들러 늙은 은행나무 아래서 바람을 쏘인 적이 있다. 이 때 곁에 스님 한 분이 있었는데 법명은 설홍(雪鴻), 법호는 호봉(虎峯)이고, 뇌묵(雷默)스님의 6세 법손(法孫)이 되는 이였다. 그 스님이 은행나무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나무는 우리 스님께서 특별히 대하던 것입니다. 스님께서 일찍이 꿈을 꾸었는데 황룡 한 마리가 이 나무 아래 서리어 있더랍니다. 놀라 일어나 나가 보니 어린아이 하나가 그 자리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 아이를 거두어 기르니 그가 바로 사명대사였다 합니다." 내가 어려서 사명스님의 됨됨이를 듣고 입으로 전해지는 그 분의 자취와 업적을 증거할 길이 없음을 오래도록 안타까워했는데, 오늘에야 마침내 그 근거 하나를 알게 되었다.〔余遊金陵之直指 風于老杏. 有僧名雪鴻號虎峯 爲雷默上人六世僧孫者. 指樹曰 此吾先師之奇遇也 師嘗夢黃龍蟠于此樹下 驚오出視乃童子 收而養之 是爲泗溟大師也. 余稚聞泗溟爲人 恐口蹟不能徵久遠 遂識之.〕

〈행수명 병서〉현판은 신묵화상과 사명대사가 사제의 연을 맺게 된 정황을 보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이렇듯 은행나무는 단순히 수령(樹齡)이 많아 사중의 명물로 자리한 것이 아니라 구국(救國)의 명장(名將)이요, 불교계의 거봉(巨峰)인 사명대사가 스님으로서 첫발을 내딛었던 사찰임을 상징하는 기념비이다. 기록 중 뇌묵(雷默)화상은 신묵(信默)화상의 오자(誤字)이다. 또한 사적기와 현판에서 四溟이란 호를 泗溟이라 적고 있는데, 이 또한 오자로 사명대사와 관련된 기록이나 문서에서 간혹 볼 수 있다.
  
오늘날, 직지사 천왕문에는 급고자와 장백영이 보았던 그 늙은 은행나무가 사라진지 오래다. 오히려 사적기와 현판의 기록만이 은행나무 아래서 신묵대사를 만나 제자의 연을 맺었던 앳된 사명의 모습을 떠오르게 할 뿐이다.  

이용윤 (직지성보박물관 학예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