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이상과 그 미 -조요한
글쓴이 : 학예실     첨부파일 :       날짜 : 08-11-14    조회 : 5062
한국인의 이상과 그 미
 
  텐느는 그리스 예술의 배경이 되는 그리스의 인간관을 기술하면서 페리클레스나 플라톤 시대의 사람들은 “건전하고 화려한 육체, 남자다운 몸의 동작을 할 수 있는 육체, 훌륭한 소질의 고귀한 선남선녀, 만면에 빛을 받은 명랑한 얼굴, 알맞게 결합된 선의 조화를 제외하고는 달리 생기 있는 표본을 구하지 않았다.” 고 말했다. 그리하여 호메로스는 그리스 사람 중 가장 아름다운 사나이로 트로이 전쟁의 용사 아킬레스와 네류스를 들었고, 헤로도토스는 마르도니오스에 대항했던 스파르타의 칼리크라티도스를 들고 있다. 그리스는 공기가 투명하여 옷을 많이 입지 않았고, 옷이라면 어깨에서 천을 감는 것이었고, 신이라면 짚신이었다. 그리스인의 감정은 단순하다. 그리스의 극은 셰익스피어의 그것처럼 그 각본이 복잡하고 심각하지 않다. 그리스의 조각은 대개가 나체이다. 그리스의 조각에서는 정신이 육체 뒤로 후퇴하지 않는다. 텐느의 표현대로 “넓은 가슴, 곡선이 자유로운 머리, 척추에 달린 힘찬 근육, 원반을 던지는 팔, 경주나 멀리 뛰기에 재빠른 다리, 이 모든 부분에 평등한 가치를 주는 것이 그리스 조각이다.” 그리스인은 건강하고 아름다운 육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하여 ‘미와 덕과 사람들이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것’ 을 동일계열에 놓았다  현실을 중시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또 형식을 귀중히 여기는 점에 있어서 고대 그리스인과 고대 한국인의 이상이 같다. 신라인은 영혼과 육체의 일치를 생각하여 일종의 정신공동체인 ‘약자若者두레’의 원장으로 미모의 여성을 택해 원화源花라 했고, 후에 남성 단장을 택함에 있어서도 육체미를 갖춘 자를 화랑花郞이라고 했다. 이것은 아름다운 육체에 아름다운 정신이 깃든다는 전체미의 관념에 의한 것이다. 신라인의 육체미 존중의 예는 ‘도화랑’이나 ‘수로부인’, 그리고 ‘처용랑’의 설화에서 읽을 수 있고, 또 ‘모죽지랑가’ 나 ‘찬기파랑가’ 등의 향가에서 신라인의 영육일체의 관념을 엿볼 수 있다.  신라인의 이러한 영육일체의 생각은 그들의 불상조각에서 찾아볼 수 있다. 위에서 이미 지적한 바 있는 석굴암의 석가여래의 좌상은 떡 벌어진 위엄 있는 어깨, 곰도 멀찌감치 서서 원망하다가 웃고 간다는 자비로운 얼굴, 법의가 얇게 신체에 밀착하여 육체의 기복이 그대로 나타나 있는 자태 등이 당대唐代 굽타 양식의 인도 조각의 영향을 받은 것인데, 인도 조각은 다시 그리스 조각의 간접적인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리스 조각이 수억만 리 떨어진 한국 조각에 영향을 주기까지는 그만한 조건, 즉 두 민족의 인간상에 공통점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한국 불상의 최대 걸작은 미륵반가상들인데, 그것은 한국 조형미의 독자적인 감각을 드러내주고 있다.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은 백제, 또 다른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은 신라의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두 작품은 우리나라 불상에서 쌍벽을 이루는 최대의 걸작이다. 특히 백제의 반가사유상은 삼산관三山冠을 쓰고 상반신이 나체로 되어 있고, 세 줄의 목걸이가 사람의 시선을 끈다. 오른쪽 다리를 도사려 왼쪽 무릎에 얹고, 오른쪽 손끝을 살며시 뺨에 붙이고 가벼운 미소를 띠고 있는 이 반가상에 대해 고유섭은 “이 세완細腕과 동체胴體가 완곡히 연접되는 흉견부에서 조선적인 미각을 느낀다”고 표현했다. 또한 김용준은 “이 불상을 볼 때 누가 이것을 조각이라고 하겠는가, 따뜻한 정과 영원한 아름다움을 느끼지 않겠는가. 더구나 상반신의 간소한 표현에서 시작하여 하체의 옷주름은 소박한 복잡성을 나타내고, 다시 아담한 왼편 발끝으로는 발가락과 꽃잎들이 요란하게 춤을 춘다” 고 기술했다. 이 반가상은 한국의 핏줄이 흐르는 <목조미륵보살반가상(일본 광륭사 소장)의 친근한 모습과 더불어 북위양식을 받아서 숭고하게 승화시켜 영육일치의 신비스러운 조화를 표현한 것이다.  미륵이라 함은 범어로 마이트레야(Maitreya)라 하여 ‘무능승無能勝’을 뜻하는 미래불이라 한다. ‘원근遠近이 무량하여 깊이를 측량할 수 없다’는 뜻으로, 상대적인 인간존재는 절대의 진리를 해득할 수 없으며, 우리의 마음은 눈앞의 것에만 집착하고 만다. 그러니 아집을 버리고 공 空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불교는 가르치고 있고, 이것을 ‘적적하고 쓸쓸한 것이 본래의 자연寂寂寥寥本自然’ 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사람들은 작은 것을 믿고 큰 것을 비방하는 어리석은 존재이니, 신라의 고승 원효는 ‘부여받은 것이 자성의 청정한 데로 나아가 본디 물듦이 없기 때문〔輿者就自性淨本無染故,『금강삼매경론』〕’이라고 했고,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으면서 두 극단을 멀리 떠나 둘이 중도에 닿아 있다〔非有非無 遠離二邊 二者中道,『유심안락도遊心安樂道』〕’ 고 했으니, 다툼이 없는 그의 철학은 소박의 정신이라 하겠다. 고유섭은 한국 불상에는 ‘어른 같은 아이’가 많다고 평하면서, 한국인의 “질박質朴, 둔후鈍厚, 순진純眞이 형태의 피조라는 것을 통하여 ‘적요한 유머’에 이르러 ‘어른 같은 아이’의 성격을 나타낸다” 고 말했다. 소박성은 그에게 있어서 ‘구수한 맛’ 인데, 구수하다는 말은 “얄상궂고 천박하고 경거망동하는 교혜巧慧로움이 아닌 것”을 뜻한다. 중국 미술은 웅장한 건실미가 있으되 구수한 맛이 없고, 한국의 미술은 양적으로는 작으나 구수하게 큰 맛이 있다는 것이다. 한국인의 생활에는 흙냄새가 난다고 한다. 일본의 일광묘日光廟나 천초관음당淺草觀音堂은 공중에 뜬 신기루와 같다. 그러나 한국의 건축은 어느 것을 보든지 그대로 땅 속에 깊이 자리잡고 반석처럼 서 있다. 중국불상은 불격佛格을 과시하려는 천상의 얼굴이지만, <서산 마애삼존불>과 서산 군위의 <삼존석불>은 백제인과 신라인의 향토적인 얼굴들이다. <군수리 석조여래좌상>과 <석불두石佛頭>는 각각 백제와 신라의 것인데, 둘 다 청정무구한 동안童顔으로 한국인의 소박성을 잘 나타내고 있고, 집착이 없는 불교정신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소박미는 노장의 ‘무위자연’과 불교의 ‘그대로(yatbabbutam)''가 기본철학으로 되어 있다. 노자는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으며,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도덕경』〕”고 했고, 출세도出世道의 불교는 “한 벌의 옷, 하나의 밥 그릇으로 나무 아래 바위 위에 머문다〔一衣一鉢 樹下石上〕”, “잴 수도 없고 끝도 없으며 장애도 없고 막힘도 없다〔無量無邊 無碍無障,『법화경』〕” 라고 설하였다. 도교와 불교의 인생관에 뿌리를 두었던 한국의 조형미는 자연을 모태로 하여 자연에서 미를 발견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았다.청산靑山도 절로 절로 녹수綠水도 절로 절로산山 절로 절로 수水 절로 절로 산수간山水間에 나도 절로그 중에 절로 절로 자란 몸이늙기도 절로 절로 하리라 (김인후 작)   인위를 거부하는 것이 한국미의 정신이다. 한국의 예술가는 비가 내리는 것같이, 달이 비치는 것같은 작품을 무리없이 제작했다. 있는 그대로의 나무를 사라하고, 그것으로 집을 세우는 것이 우리 소박미의 한 단면이다. 미학상의 표현으로는 의지결여성이 한국의 소박미일 것이다. 한국의 주택은 연이은 봉우리와 큰 물을 원경에 넣고 그 자리를 택했다. 주위의 자연풍광과 조화시켜 설계해왔다. 집 뜰과 둘러싼 자연이 담에 의해 격리되지 않고, 집 뜰이 담을 넘어 자연 속으로 번져나가는 것이 한국주택의 생리이다. 경주의 안압지에서 보는 것같이 한국의 정원은 풀 한 포기 돌 하나에 인공을 가하되 천연으로 된 것같이 만들어야 한다. 얼핏 보면 조잡하다고 할 정도로 세부 장식에 신경을 쓰지 않고, 자연과의 조화통일에 높은 가치를 둔다. 창덕궁 안의 낙선재와 후원에 있는 연경당과 여러 초당들이 바로 이 소박미의 표시이다  우리는 조선백자에서 한국인의 고담하고 청초한 맛을 들여다볼 수 있다. 조선 자기는 환원염으로 구웠다. 연기에 그을린 면을 안에 가라앉히는 수법을 쓰고 있다. 일본에서 다투어 사용하던 적회赤繪는 하나도 없다. 황, 녹, 홍, 금 등의 색은 거의 돌아보지 않았고, 겸허하고 은근한 여러 색감의 백색으로 구워냈다. 그릇이 탄생된 것이지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이것은 ‘자연에 대한 무심한 신뢰’ 에서 나온 소산이다. 고졸한 면에다 호인적인 맛도 있고, 아무렇게나 되어버린 데카당한 측면도 있다. 최순우는 조선 백자에 대하 이렇게 저술했다.  의젓하기도 하고 어리숭하기도 하면서 있는 대로의 양심을 털어놓은 것, 선의와 치기와 소박한 천정天定의 아름다움, 그리고 못생기게 둥글고 솔직하고 정다운, 또 따뜻하고도 희기만한 빛, 여기에는 흰 옷 입은 한국 백성들의 핏줄이 면면이 이어져 있다. 말하자면 방순芳醇한 진국 약주 맛일 수도 있고, 털털한 막걸리 맛일 수도 있는 것, 이것이 조선 자기의 세계이며, 조선 항아리의 예술이다    한국 미술 바닥에 흐르는 특색이 인공을 꺼리는 자연주의라고 보는 김원룡은 “조선의 목공품처럼 소박한 자연미를 살려서 인공의 선과 면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데 성공한 미술품은 없다.” 고 했다. 실로 조선의 목공품은 오동이나 괴목 같은 목리木理가 뚜렷하고 아름다운 재목을 쓰면서도 칼질, 대패질이 보이지 않아 구수한 맛과 속임 없는 진실성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것들은 어딘지 자연과 인간 사이를 연결시켜주고 있는 것 같다.  중국예술이 번잡하고 권위를 나타내고, 일본예술이 아기자기한 짜임새에 의한 기교를 자랑하는 데 비해, 한국미의 특징은 해학적인 데 있다. 유가의 안빈락도安貧樂道, 불가의 제행무상諸行無常, 도가의 진세塵世에서의 초탈로 말미암아 한국의 예술가는 현실을 ‘적요한 유머’로 굴절시킨 것 같다.한 손에 막대 잡고, 또 한손에 가시 쥐고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려더니백발이 제 몬저 알고 지럼 길로 오더라
  
  이 우탁禹倬의 시조에서 우리는 인생무상을 익살로 담아 굴절시키려는 조선인의 심정을 엿볼 수 있다. 김립金笠의 풍자시와 정수동鄭壽銅의 소담일화笑談逸話가 다 이러한 것의 소산일 것이다. ‘어른 같은 아이’ 라는 삼국시대의 불상에서 또 ‘어리숭하면서 있는 그대로의’ 조선백자에서도 해학미를 볼 수 있지만, 우리는 조선후기의 회화에서 속기俗氣없는 한국적인 해학의식을 느낄 수 있다. 변상벽卞相璧의 <묘작도猫雀圖>는 참새들이 가지에서 지저귀는데, 고양이가 나무와 땅에서 서로 희롱하고 있는 그림이다. 그것이 양지바른 곳의 겨울 풍경이어서 보는 사람에게 더욱 공감의 미소를 짓게 한다. 일본인 킴바라세이코[金原省吾]는 이 그림을 평하여 “일종의 풍격風格이 있어 재미있다. 강하지 않지만 친절하다. 다만 어딘가 다듬어 매끄러운 것이 있다. 이것은 일본에는 없는 해학적인 면이다. 이 같은 해학적인 면이 도대체 어디에서 일어났는가' 일본에서는 볼 수 없는 촉감이다.” 라고 감탄했다.  김홍도의 풍속도 중, <씨름>은 구경하는 사람들이 승부를 가리는 긴장 속에서 입을 열어 큰 웃음을 짓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신윤복의 <기생원(간송미술관 소장)은 긴 염소수염의 젊은 선생이 사랑방 밖에 기대어 좀 떨어진 세 처녀들과 마주 보고 있는데 바로 사랑마루 밑에 한 젊은 손님이 홀로 엿듣는 그림이다. 맥쿤 여사는 “이 그림에서 다섯 사람의 긴장관계가 뚜렷하며, 이 그림은 여자 교육에 대한 하나의 풍자이다.” 라고 평하고 있다.  강희안의 <고사관수도高士觀水圖>는 문인화 계열로서 ‘천하는 태평춘이요, 해는 길기도 하다’ 는 도가적인 무위사상의 여유를 보여주고 있다. 맑고 고고한 백의의 모습으로 절벽 밑 바위에 기대어 세속의 욕심을 냇물에 씻으며 정관하는 자세는 기계문명에 의해 소외된 현대인의 생활에는 반대자극의 해학미를 주는 작품이다. 해학미는 대상과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지성에 의해 조용한 여운을 남기는 것이다. 한국인은 뽐내지 않으면서 언제나 같은 율동으로 지성을 활동시킨 백성이었기에 그 같은 높은 수준의 웃음을 던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스와 비슷한 풍토 때문에 영육일치의 사상과 더불어 현세적인 인간미를 표현한 한국인의 기질이 유불선의 영향으로 조형예술에 있어 소박미를 나타내었는데, 그것이 다시 의식적인 창의면에서 해학미를 갖고 나타난 것으로 생각된다.
 
  * 이 글은 조요한,『예술 철학』(미술문화, 2005) 에서 발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