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무기 (활) -민승기-
글쓴이 : 학예실     첨부파일 :       날짜 : 08-08-05    조회 : 9185

 

우리 민족이 잦은 외침에도 불구하고 이 땅의 주인으로 계속 남을 수 있었던 데는 산성山城의 존재와 함께 활의 역할이 가장 컸다. 활이 한반도에 처음 등장한 것은 기원전 약 5000년경의 신석기시대였다. 당시의 활은 단순 목궁이었을 것으로 보이지만, 현재 돌과 뼈, 짐승 어금니로 만든 화살촉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활 유물은 평양에서 출토된 뼈로 만든 활채인데, 이 활이 제작된 시기는 고구려시대로 추정된다. 당시의 고분 벽화를 보면, 고려인은 전형적인 이중 만곡궁을 사용했으며, 오吳나라의 손권孫權에게 각궁角弓을 바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에 이미 짐승 뿔로 만든 합성궁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이민족과의 싸움이 잦았던 고려시대에도 활은 핵심적인 병기 중의 하나였다. 『고려도경高麗圖經』에는 고려의 활이 탄궁彈弓과 비슷하고, 활채의 길이가 5척이라고 했으며, 화살이 매우 멀리 날아간다고 했다.

  조선시대에도 짐승뿔로 만든 각궁이 조선군의 주력무기로 사용되었다. 조선은 문관 중심의 사회로서 대부분의 무예를 천시했지만, 활쏘기만은 공자 말씀에 군자가 익혀야 하는 육예六藝 중의 하나로 꼽혔기 때문에, 문반과 무반을 불문하고 모두 활쏘기를 익혔다. 특히 무관의 경우에는 여섯 가지 무과 초시과목 중에서 활쏘기가 무려 네 종목이나 되었기 때문에 관직에 나아가려면 반드시 궁술을 익혀야 했다.
  

  활은 일반적으로 단순궁單純弓, 강화궁强化弓, 합성궁合成弓으로 나뉘는데, 나무 등의 단일 소재로 만든 활을 단순궁이라고 하고, 활채를 나무껍질이나 힘줄 등으로 감아 보강한 것을 강화궁, 여러 가지 재료를 사용하여 활채의 탄력을 극대화시킨 것을 합성궁이라고 한다. 조선의 활은 합성궁에 해당되며, 특히 활채가 활시위를 묶는 고자 부분에서 한 번 더 휘는 이중 만곡궁의 일종이다. 조선 각궁의 재료는 물소뿔이나 산뽕나무, 대나무, 소 힘줄, 벚나무 껍질 등이며, 이들 재료를 민어 부레풀을 이용하여 접합하여 활을 만든다. 이렇게 만든 활은 궁력이 강할 뿐만 아니라 길이가 매우 짧아서 말 위에서 사격하는 데도 매우 편리했다. 세조 4년의 기록에는 활 120근(77㎏)을 당기는 사람을 만강대彎强隊라는 시위대로 편성했는데, 120근이라면 현대 양궁(약 11.3~20.4㎏)의 약 3~4배의 궁력이 된다. 그만큼 조선시대에는 활의 성능도 뛰어났고 활을 다루는 무인들의 솜씨도 대단했다.

  조선이 활의 나라였던 만큼 사용된 활의 종류도 매우 다양했다. 조선의 활을 재질과 용도, 제조원에 따라서 나누어 보면 다음과 같다.

1) 재질에 따른 분류

  조선시대에는 물소뿔로 만든 흑각궁黑角弓이 가장 대표적인 활이었지만, 흑각은 우리나라에서 생산되지 않기 때문에 조달에 어려움이 많았다. 또한 날씨가 습한 여름에는 부레풀이 풀려서 흑각궁을 사용하기 어렵기 때문에 다른 재료로 만든 보조적인 활이 필요했다.

  조선시대에는 짧은 물소뿔 조각을 사용해서 만든 활을 후궁帿弓이라고 했으며, 사슴뿔로 만든 활은 녹각궁鹿角弓, 황소뿔로 만든 활은 향각궁鄕刻弓이라고 했다. 또한 몇 종류의 나무를 합성하여 만든 활은 교자궁交子弓이라고 했고, 나무로만 만든 활을 목궁木弓이라고 했다. 그밖에도 대나무로 만든 활인 죽궁竹弓과 철이나 놋쇠로 만든 철궁鐵弓, 철태궁鐵胎弓 등이 있다.

  한편, 활을 만드는 재료와 관계없이 활채에 검은 옻을 칠한 것을 노궁盧弓, 주사를 이용하여 붉게 칠한 것을 동궁彤弓이라고 불렀는데, 이것들은 궁중의 사냥과 의례에만 사용되었다.

  
2) 용도에 따른 분류

  조선시대의 활은 그 용도에 따라서 전투용으로 사용되는 군궁과 활쏘기 연습에 사용하는 평궁, 의례에 사용하는 예궁과 무과시험에 사용하는 육량궁으로 나뉜다.

  군궁軍弓은 그냥 각궁이라고도 하고, 혹은 동개(가죽으로 만든 활집)에 넣어 휴대한다고 해서 동개활이라고도 한다. 이 활은 전쟁용으로 사용하므로 궁력을 높이기 위해 산뽕나무로 활채를 만들었고, 활채의 두께도 두터웠다. 군궁의 제작에는 뽕(桑), 뿔(角), 심(筋), 푸레풀(膠), 실(絲), 칠(漆) 등 여섯 가지 재료가 들어간다.

  평궁平弓은 주로 활쏘기 연습에 사용하는 활로서, 현재 국궁에 해당한다. 활채는 대나무로 만들고, 산뽕나무는 활시위를 거는 고자 부분에만 사용한다. 평궁에 사용되는 재료는 뽕, 뿔, 심, 푸레풀, 참나무, 대나무, 벚나무껍질 등 일곱 가지이다.

  예궁禮弓은 군궁과 동일한 재료로 만들며, 활의 길이는 6척이다. 이 활은 궁중의 대사례나 지방의 향사례에 사용되었다고 전해진다.

  육량궁六兩弓, 혹은 정량궁正兩弓은 무거운 화살인 六兩矢를 쏘는 활로, 무과시험에 주로 사용했다. 육량궁을 만드는 재료는 군궁과 같으며, 다만 길이가 5척 5촌(170.5㎝)으로 매우 긴 편이다.

3) 제조원에 따른 분류

  조선시대의 활은 대부분 월과군기月課軍器라고 하여, 각 지방이나 관청에서 매월 의무적으로 납부하는 활에 의하여 충당되었다. 또한 국왕의 축일에 각 관청이 특별히 제조하여 바치는 고급스러운 활은 방물궁方物弓이라고 했고, 궁중의 상의원尙衣院에서 제작되는 고급 활은 상방궁尙房弓이라고 했다. 그밖에 국왕이 친히 사용하거나 혹은 신하들에게 하사할 목적으로 특별히 공을 들여서 제작하는 활을 별조궁別造弓이라고 했다.

 

이 글은 민승기,『조선의 무기와 갑옷』(가람기획, 2007) 에서 발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