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송사 석조보살좌상 -최순우-
글쓴이 : 학예실     첨부파일 :       날짜 : 08-07-05    조회 : 4610

  한국 석조 불상의 좋은 전통은 신라시대의 화강석 조각에서 비롯되었다. 한국 안 도처에는 석질이 매우 좋은 화강석이 많으므로 건축이나 조각 재료로 화강석을 다루는 솜씨가 일찍부터 발달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서양의 그리스나 로마의 뛰어난 석조각들이 대개 그 지방에서 나는 대리석을 재료로 삼아 온 점과 같은 이야기가 된다. 이렇게 거의 화강석이 만능이던 신라시대 석조 조각도 고려시대에 이르면 대리석 재료를 개척해서 대리석 불상 중에 간혹 뛰어난 작품을 남기게 되는데, 강릉 한송사 대리석 보살좌상 같은 예가 바로 그런 것이다. 그 야무진 화강석을 마치 떡 주무르듯 맘대로 다룰 수 있었던 한국의 조각가들이었던 만큼 연한 대리석 조각을 다루기는 매우 손쉬웠을 것으로 짐작이 되지만, 역시 화강석 조각에서 오랫동안 쌓인 전통적인 대범한 솜씨가 그래도 드러나 있어서 서양의 대리석 조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교미의 폐단에 말려들어가지 않았던 것이 고맙다.

  높은 감투 모양의 보관을 쓰고 양 어깨로 모발을 드리운 이 보살은 풍만한 얼굴에 반쯤 뜬 두 눈이 아래를 굽어보는 다소곳한 표정을 지녔고, 조그마한 입 언저리에서 풍기는 미소짓는 인자한 모습은 아마도 이 시대 강릉 지역의 석조 보살상들이 지닌 공통적인 감각으로 느껴진다. 강릉 신복사 자리와 오대산 월정사탑 앞에 앉아 있는 석조공양보살들의 표현이 또한 그렇기 때문이다.

  원래 이 한송사 석조보살좌상은 한 쌍이 그 절터에 있었던 것을 일본인 화전웅치라는 자가 그 중의 하나를 어떻게 입수해서 1912년 12월 동경 제실박물관에 기증했다. 나머지 하나는 머리를 잃은 채 지금 명주군청 안에 그대로 보관되어 있으며 동경 제실박물관에 있던 온전한 하나는 1966년 봄 반환문화재 속에 포함되어 일본 정부에게서 50년만에 되찾아서 지금 국립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이 보살상은 불명은 확인하기 힘드나 대강 삼십삼관음 중의 하나인 다라보살로 인정된다. 이 다라보살은 관자재보살의 눈에서 발산하는 대광명 속에서 태어난 보살이라고 하며, 중국에서는 당시대 말기 또는 북송시대 촉에 일어난 신앙이라고 하니 우리 나라 고려시대 초기 불상에 있었을 법한 보살 부처이다.

  

* 이 글은 최순우,『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학고재, 1994) 에서 발췌했습니다.

** 파손된 석조보살상은 현재 강릉시립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