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보기의 어려움2 -오주석-
글쓴이 : 학예실     첨부파일 :       날짜 : 08-06-20    조회 : 4877

바로 보기의 어려움2 -오주석-


  옛 그림 공부를 하노라면 비슷한 경험을 이따금씩 하게 된다. 대전 국제특허연수부에서 닭의 모성에 대한 나의 무지를 깨우쳐준 전직 양계장 주인은 그날 나 자신이 무첟 당황한 터라 경향이 없어 고마운 이름조차 확인하질 못했다. 그런데 한 신문에 <옛 그림 읽기>라는 연재물을 싣고 있었을 때, 이번에는 윤석호 씨라고 이름을 밝힌 네티즌으로부터 정중한 펴지가 날아왔다. 혜원 신윤복의 <월하정인도月下情人圖>를 소개한 바로 이튿날이었다. “초승달 지는 깊은 밤 한껏 차려 입은 남녀가 담 모퉁이에서 밀회를 한다. 무슨 일일까? 다소곳하게 쓰개치마를 둘러쓴 여인은 수줍은 반, 교태 반 야릇한 정이 볼에 물들었다.” 이글에 문제가 좀 있다는 것이었다. 코오롱그룹에 근무한다는 그 분은 ‘망원경으로 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것이 취미’라면서, 다음과 같이 상당히 전문적인 식견을 펼쳤다.

  “우선 작품에 그려진 달의 모양새만 보면 이것은 동쪽 하늘에 떠오르고 있는 초승달입니다. 초승달은 아침에 떠오를 때 그림처럼 바가지를 엎어놓은 것과 비슷한 모양새로(그러나 그림처럼 완전히 엎어진 건 아니고 좀 비스듬히 엎어진 형태로) 떠오르고, 한낮이 되면 점차 수직으로 똑바로 섭니다. 그리고 저녁에 질 무렵이 되면 바가지로 바로(정확하게 말하면 좀 각도가 있게 비스듬히) 놓은 듯한 형태가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초승달은 아침에 약간 엎어진 자세로 떠올라서 낮이 되면 점점 일어섰다가 저녁에 누운 자세로 바뀌어 서편으로 집니다. 그런데 초승달은 아침 해가 솟은 다음에야 뜨는 것이므로 우리 눈에는 잘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월침침야삼경月沈沈夜三更’ 이라는 그림의 화제畵題, 즉 ‘달도 기운 깊은 밤’ 이란 뜻과 맞지 않습니다.”

  이게 웬 청천벽력 같은 소리란 말인가? 내 글 첫머리는 ‘초승달 지는 깊은 밤’으로 시작하는데, 초승달은 아무리 늦게 지더라도 깊은 밤에는 이미 서쪽 지평선 밑으로 내려가 보이지 않는다니? 그러니까 ‘초승달 지는 깊은 밤’이란 말 자체가 모순인 셈이었다. 가슴이 뜨끔하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 많은 사람들이 보는 신문에 이렇게 엉터리 얘기를 실었다니……. 기실은 나 자신도 조심성이 아주 없는 사람은 아니어서. 그림 속의 긴가 민가 정체가 수상했던 조각달이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굳이 대전에 있는 국립천문대까지 전화를 걸어 물어보고 재삼 초승달임을 다짐 받아두었던 것이다. 그렇게 믿었던 초승달이 엄청난 문제를 야기할 줄이야! 게다가 문제는 여기서 그치는 것만이 아니었다. 윤석호 씨의 엄밀한 분석에 따르면 그림 속 조각달은 형태가 좀 묘한 까닭에 꼭 맞아떨어지는 해석을 찾기가 어렵다.

  하지만 굳이 설명을 하자면 ‘야삼경’은 ‘자정을 한참 지나 새벽에 가까운 깊은 밤’으로, 또 ‘월침침’은 달이 ‘지는’ 모습이 아니라 그저 달이 ‘낮게 하늘가에 걸려 있는 정경’을 묘사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저 두 젊은 연인의 애틋한 표정에는 ‘만남’이 아닌 ‘헤어짐’의 정서가 깔려 있는 것이 된다. 새벽이 다가오고 있다. 즉 날이 밝기 전, 남의 눈에 띄기 전에 헤어져야만 하는 안타까움이 주제인 것이다. 그러고 보니 화폭의 몽롱한 분위기는 희붐한 새벽빛이 밤의 어두움과 뒤섞여진 듯하기도 하다. 아! 문제는 일파만파로 번져간다. 글에서 나는 “남자 마음은 진작부터 초롱불 속처럼 뜨듯해서 발끝이 벌써 어딘가를 향하고 있다” 라고 썼다. 이 얼마나 낯뜨거운 지레짐작이었던가? 또 여인은 “함께 갈 낌새지만 안 그럴지도 행여 알 수 없다” 라고 오만가지 상상을 덤으로 펼쳤다. 나는 억지인 줄 알면서도 “천문대에서는 초승달이라던데요……?” 하는 답장을 띄웠다.

  아니나 다를까, 단호해진 두 번째 편지가 왔다. “초저녁 이후부터 이른 밤까지, 또는 한밤중 시간대에 초승달이 이런 모양으로 떠 있으려면……? 천지개벽이 있어야 합니다!” 하고 윤석호 씨는 못을 박았다. 그리고 “밤 11시 이후에 지는 달이란 상현달(반달)이 거의 다 된 경우에만 가능하다” 라고 거듭 밝혔다. “그림 속 달은 분명히 해가 뜨고 날이 밝아진 이후 동편에 떠오른 초승달에 가까우며,” 만약 굳이 이런 조각달이 깊은 밤에 떠 있어야 한다면, 그것은 “그믐달이 한밤중이 지나 새벽이 올 무렵 동쪽하늘에서 떠오르는 상황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믐달이라면 왼쪽 방향으로 비스듬히 누워야 한다” 는 것이었다. 아아!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진퇴양난의 어둡고 깊은 계곡! 하릴없이 이번에도 나는 묵은 원고를 꺼내어 고쳐 썼다. 하지만 문제는 조각달의 정체가 무엇인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었다는 점이었다.

  먼저 글머리 ‘초승달 지는 깊은 밤’을 ‘조각달이 낮게 뜬 밤’으로 바꿔 썼다. 그 다음 마음을 완전히 비우고 다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림 속 장면은 ‘만남’이 아니라 ‘헤어짐’이 분명했다. 그럼 왜, 그믐달이 초승달 모양으로 바뀌었을까? 그렇다! 조각달은 아래로 다소곳이 수그러진 채, 두 연인과 등을 지고 부끄러운 듯 담장 위에 낮게 깔려 있어야만 했던 것이다! 화가에게 중요한 것은 과학이 아니라 연정戀情이다. 저 달이 되바라지게 위쪽을 바라보고 자빠져 있으면 그림 속 애틋한 분위기와는 영 어울리지 않는다. 이렇게 해서 글은 결국 대폭 고쳐졌다. “마음은 진작부터 초롱불 속처럼 뜨듯해서 발끝이 벌써 어딘가를 향하고 있다”는 구절은 “마음은 여인 곁에서 떨어지지 못하건만 발끝은 하릴없이 갈 길을 향하고 있다.”로, 그리고 “아마도 함께 갈 낌새지만 안 그럴지 행여 알 수 없다”는 “함께 갈 수 없는 길, 그러나 마음만은 님의 품 안에 있다” 라고 말이다.
  

  조각달이 낮게 뜬 밤(초승달 지는 깊은 밤) 한껏 차려 입은 남녀가 담 모퉁이에서 밀회를 한다. 무슨 일일까? 다소곳하게 쓰개치마를 둘러쓴 여인은 수줍은 반 교태 반 야릇한 정이 볼에 물들었다. 저고리 깃과 끝동의 보랏빛이 옥색 치마 아래 진자줏빛 신발과 어울리고, 치마와 동색이나 한층 연한 쓰개치마 맵시가 곱기도 하다. 그윽한 눈길을 건네는 사내는 오른손에 초롱을 들고 왼손으로 허리춤을 뒤적인다. 애틋한 정표라도 전하자는 것일까? 도포 자락이 가볍게 흔들리고 긴 갓끈은 멋들어지게 어깨에 걸쳤는데 마음은 여인 곁에서 떨어지지 못하건만 발끝은 하릴없이 갈 길을 향하고 있다(진작부터 초롱불 속처럼 뜨듯해서 발끝이 벌써 어딘가를 향하는 듯싶다).

  내로라하는 장안의 한량인 사내의 가죽신은 코와 뒤축에 따로 옥색을 댄 호사스런 것이다. 한편 여인은 치마를 묶어 올려 하얀 속곳이 오이씨 같은 버선 위로 드러났다. 함께 갈 수 없는 길, 그러나 마음만은 님의 품 안에 있다(아마도 함께 갈 낌새지만 안 그럴지 행여 알 수 없다). 달빛이 몰롱해지면서 두 사람의 연정도 어스름하게 녹아든다. 배경이 뽀얗게 눅여져 있으니 섬세한 필선과 화사한 채색으로 그려진 두 연인이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신윤복은 이 정황을 풍류 넘치는 흐드러진 필치로 이렇게 적었다. ‘달도 기운 야삼경/ 두 사람 속은 두 사람만 알지〔月沈沈夜三更 兩人心事兩人知〕’ 화제畵題도 기막히지만 글씨 주위와 옆 건물 벽을 반쯤 여백으로 몽롱하게 눅여낸 솜씨가 쏠쏠하다. 연인들의 은은한 정이 주위까지 뽀얗게 물들였는가?

  윤석호 씨 의견을 처음 접했을 때는 어떻게든 모면을 해보려고 우선 발버둥쳤다. 하지만 온전히 승복하고 텅 비운 맘으로 받아들이고 보니, 입에 쓴 약이 정말 몸에는 좋다는 식으로 오히려 <월하정인도>를 올바르게 해석하는 소중한 열쇠를 얻은 셈이 되었다. 더구나 덤으로 화가 신윤복의 섬세한 예술가적 감성까지 확인할 수 있었으니, 독자의 관심 어린 한마디가 글쓰는 이에게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를 절감하게 되었다. 언젠가 윤석호 씨를 직접 만나 따뜻한 차 한 잔이라도 대접해드릴 생각인데, 그 분은 지금 해외 지사에 근무하고 있다고 한다.



* 이 글은 오주석,『그림 속에 노닐다』(솔, 2008) 에서 발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