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왕궁리 석탑 사리장치 - 최순우
글쓴이 : 학예실     첨부파일 :       날짜 : 08-06-05    조회 : 3904
  불타에 바치는 찬양이 사무치고 맺혀서 이루어진 사리장치, 말하자면 석가모니의 분신을 모시기 위한 불도들의 온갖 정성이 응결된 거룩한 조형이 바로 사리장치가 지닌 아름다움이며 또 눈으로 느끼는 찬가와도 같은 아름다움이라고 할 수 있다.

  1965년 섣달 전라북도 익산군 왕궁리에 있는 백제식 오층석탑을 중수할 때에 탑 기단부 사리공에서 발견된 이 사리함과 사리병은 그때 함께 나온 순금제 금강경 책과 함께 세상을 놀래 준 우리 민족이 지닌 제1급 문화재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사리병은 은으로 만든 사방좌 위에 연결된 앙련 사리병좌 위에 놓이게 마련되어 있고, 고운 초록색 유리로 만든 사리병의 날씬한 긴 목에는 순금으로 만든 연꽃 봉오리 모양의 마개가 꽂혀 있어서 각 부 비례의 적정한 눈맛이 이만저만 세련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 사리병좌는 순금제의 방합 안에 모시어졌고, 이 사리방합은 찬연한 금색을 내고 있어서 초록색ㆍ은색ㆍ황금색 등의 색상의 조화가 주는 효과가 매우 인상적이다. 방합의 사면과 네모 지붕 모양의 뚜껑 표면에는 빈틈이 없다. 크고 작은 원권문을 찍어서 장식하고 합의 사면 중심부에는 초문과 불교적인 화염문이 혼성된 좌우 대칭적인 화문花文이 찍혀 있어서 이 무늬가 지니는 고격이 보통이 아님을 말해 준다.

 삼국시대 이래로 우리나라 불교의 사리장치에 나타난 공예가 매우 세련되어 왔음은 다른 여러 예를 보아 알 수 있으나 이 익산 왕궁리 석탑 사리장치처럼 조형의 기본 의장이 별격적으로 세련된 작품은 없었다고 할 수 있다. 기교적으로 보나 장식의장으로 보나 이렇게 간고하면서도 고도의 세련을 보인 예는 참 드물다. 초록색 유리 사리병은 불과 아기들의 새끼손가락 정도의 크기이면서도 바라보고 있으면 고려청자의 큰 장경병이 지닌 맵시와 아름다움을 모두 갖추고 있어서 이것이 이렇게 작은 물건이라는 생각을 잊게 해 준다. 말하자면 꼭 필요한 기교와 장식만이 집약되어서 간결하게 처리되어 있는 점으로 이 사리장치가 지니는 공예미의 본성을 높이 평가할 수 있다고 하겠다.

  따라서 그 본성은 단순미에 장점을 둔 우리 공예 전통의 본 궤도 위에 서 있음을 알 수 있다. 호사스럽고 다양해야만 정성이 들었다거나 또 아름답다는 속된 솜씨가 아니라 목욕재계하고 기도하면서 만든 청순한 아름다움이 이것을 지배하고 있다는 말이 될 수도 있다.

  



* 이 글은 최순우,『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학고재, 1994) 에서 발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