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미술문화의 몇낱 성격1 - 고유섭
글쓴이 : 학예실     첨부파일 :       날짜 : 08-02-05    조회 : 3965
 

<朝鮮  美術文化의  몇낱  性格>



  어떠한 한 민족, 어떠한 한 사회, 어떠한 한 국가의 문화 내지 문명의 성격이 문제로 되어 있을 때 상식은 언제나 관념적인 몇낱의 개념을 간단히 열거하고 간단히 열거함으로써 또 설명이란 것을 하고 그로써 이해가 성립되는 듯이 이해하고들 있다. 그들은 마치 한 문화요 한 문명이란 것을 자연적인 아무런 물리적 존재 개체의 형장形狀, 형모形貌를 모사模寫하듯이 설명적으로 언표言表함으로써 만족하고 있다. 이것은 극히 유치한 상식이요 좀 진보된 지식은 문명이요 문화란 것이 이러한 개체적인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사회적으로 생성되고 성장된 것임을 알면서도 그 특성이 무엇이요 특질이 무엇이라 말하려 할 때는 역사적으로 항구불변되며 사회적으로 절대 보편된 확평불발確平不拔의 고정적 성격존재란 것을 생각하고 그것을 설명하려 한다. 전자의 유치한 상식적 입장이란 것을 감각적 존재론자적인 입장이라 하면 후자의 진보된( ) 지식이란 관념적 존재론자적인 것이라 할 만하여서 전자에 비하여 후자는 사상적, 관념적으로 다소 깊은 점이 있다 하더라도 자연적ㆍ인과율적ㆍ기계론적임에선 다름이 없는 입장들이라 하겠다. 즉 그들의 문화관, 문명관에 있어선 자연적인 지록적地綠的 관계(즉 풍토문제風土問題) 또는 자연적인 혈록적血綠的관계(즉 민족성)가 가장 중심된 주체적인 요소를 이루고 있어 인간으로선 어찌할 수 없는 결정적인 요소를 가지고 그 우열을 논하여 혹은 기뻐하고 혹은 서러워한다. 이것은 가장 어리석은 것이니 자연적 요소, 인과적 요소란 본래 인간의 자율 능력의 테두리 밖에[규외規外] 있어 인간의 자의식으로선 도저히 어쩔 수 없는, 말하자면 신神으로부터 정과定課된 숙명적인 요소이다. 그것은 설명은 할 수 있을지언정 시비평등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즉 자연과학의 대상은 될 수 있을지언정 문화과학의 대상은 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주어진 요소요 재료일 뿐이요 요리할 척도요 규범이 아니다. 이러한 정률적定律的인 것엔 즉 숙명적인 것엔 문화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다. 문화가치ㄹㅏㄴ 비정률적이요, 비인과율적이요, 비기계적이요, 비논리적이요, 비고정적인데 있는 것이다. 문화활동의 가장 성능적 일면인 개과천선改過遷善, 향상진화向上進化 등은 이러한 데서 비로소 오는 것이다. 숙명적이요 비비약적非飛躍的이요 형식논리적이요 기계적이요 이러한 곳에 어찌 적극이요 소극이라 할 진보와 퇴화의 규정이 있겠는가.

  혹자는 문화 방면에 있어 항구불변적이요 보편무변성의 것으로「전통傳統」이란 것을 이와 같이 생각한다는 것도 상술한 존재론자적 견해이니「전통」이란 것을 마치 손에서 손으로 넘겨 보내는 구희球戱에서의 구자球子와 같이 생각하고 있다.「이심전심以心傳心」이란 말이 까딱 잘못 생각될 때 역시 이와 같은 기계론적 해석을 받게 된다. 이것은 사실 그것을 위하여 불행된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전통」이란 결코 이러한「손에서」「손으로의」 손쉽게 넘어다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피로써」「피를 씨는」악전고투를 치러「피로써」얻게 되는 것이다. 그것을 얻으려 하는 사람이 고심참담苦心參憺 쇄신분골碎身粉骨하여 죽음으로써 피로써 생명으로써 얻으려 하여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요, 주고 싶다 하여 간단히 줄 수도 있는 것이 아니다. 선가수업행사禪家修業行事에 잘 쓰는 단비斷臂 봉갈棒喝 기타 불립문자不立文字 직지인심直指人心의 그 표전법表詮法이 전혀 이 피에서 피로의 생명으로서의 획득을 상징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것은「영원의 지금에서 늘 새ㄹㅗㅂ게 파악된」것이다. 그곳에 벌써 문화가치 문화재로서의 기초적, 근본적 규범인 보편성 특수성 변이불변變而不變 내지 비불변이변적非不變而變的 특질特質이 있는 것이다. 문화 방면에 불변적 고정적인 일면이 있다는 것은 이러한 의미에서요 결코 물리적 고정적 의미의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풍토성ㆍ민족성 등 일반이 생각하고 있는 문화형성의 요소들이란 것은 요소들이긴 하나 시비평등是非評騰 즉 가치론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 중에도 민족성의 주체인 민족이란 역시 가치형성의 주체이긴 하나 가치평등의 대상은 아닌 것이다. 가치평등의 대상이 될 것은 그들로 말미암아 형성된 문화 그 자신에 있고 민족 그 자체에 있는 것은 아니다. 민족은 그 문화형성의 주체자로서 그 책임은 질지언정 가치평등의 대상은 되지 아니한다. 민족은 자기네들이 형성한 문화에 대하여 비난되는 점이 있으면 그 책임을 오직 받을 것이며 칭양稱揚되는 점이 있다면 그 명예를 받을 뿐이다. 그리하여 명예에 대하여는 다시 그 발천發闡에 노ㄹㅕㄱ할 것이며 비난에 대하여는 그 개선에 노력할 뿐이다. 숙명적으로써 명예 된 민족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며 비난될 민족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가치적으로 앙양昻揚에 노력할 때 그 민족은 명예의 자리 위에 올라앉게 되며 그렇지 아니할 때 비난의 구렁에 떨어지게 될 뿐이다. 이러한 뜻에서 우리가 낳은 문화는 어떠한 명예로운 일면을 가지고 있는가 또는 어떠한 비난될 일면을 가지고 있는가 이 두 점을 항상 반성하여 그곳에 적극적 자신과 신념을 얻는 동시에 개과천선할 겸양謙讓된 일면을 늘 가져야 한다. 자신이 과하면 과대망상의 무절제에 떨어지기 쉬운 것이며 겸양이 지나칠 때 비굴한 노예 근성에 사로잡히게 되는 법이니 이 두 면을「활착活捉」할 필요가 있다. 이 뜻에서 필자는 주어진 과제에 있어서 염두에 봉착된 몇낱의 성격을 그려볼까 한다.

  

*이 글은 고유섭,『우리의 미술과 공예』에서 발췌했습니다.

**(계속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