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미술의 특징2 -고유섭
글쓴이 : 학예실     첨부파일 :       날짜 : 08-01-21    조회 : 5055
* 1에서 계속


2) 와당문양(瓦當紋樣)으로 본 삼국(三國)의 특색(特色)


이상의 비유는 물론 대체를 두고 말함이요 부분에 있어선 또한 공통된 점도 있는 것이다. 이곳에 필자의 목표가 호이점互異點을 살피려는 데 있는 즉 그 공통된 요소는 의식적으로 버리고 말하는 것이니 독자가 만일 이것을 양해한다면 필자는 다시 몇 가지 비유로서 이 호이점互異點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결론부터 말하면 필자는 고구려에서 고딕적인 요소를 보고 백제에서 낭만적인 트집을 보고 신라에서 클래식적인 것을 보고 싶다. 이러한 점은 각기 와당문양의 조각에서 볼 수 있는 점인데 외형적으로는 3분원증와당三分圓甑瓦當甑이나 원호형圓弧形 판와당 瓦當이 고구려만의 특색이요 원형圓形 연식와당椽飾瓦當은 백제만의 특색이다.(원호형(圓弧形 와당의 원시형이라 할 것은 백제에도 있으나 그 문양 있는 것을 백제에서 발견됨이 없고 더욱이 고신라기古新羅期의 것은 없다. 신라에 있어선 통일 전후부터 성용盛用되게 되었다.) 이 중에 고신라만의 특색이라 할 와당형식은 발견됨이 없고 고신라기의 와당이란 문양 표현수업에서 보ㅇㅏ 고구려의 영향이랄 것이 조금 있고 대다수는 백제양식의 것이 많다. 그것은 특히 원와당圓瓦當뿐인데 이로서 보면 신라의 외국 미술문화의 영향이란 백제로부터의 것이 가장 많다고 하겠다. 전설에 따라 황룡사皇龍寺의 탑을 건조할 때도 신라로서는 불가능하여 백제의 공장工匠을 초치하였다는 말이 있는데 지금 잔존한 와당문양의 수법을 본다면 이 전설은 전설에 그칠 것이 아니요 당시 신라문화의 정도를 가장 잘 전한 사실인가 한다. 이는 하여간에 백제에 있어선 와당문양의 주제가 순전히 연화蓮花에만 한한 듯한데 신라에 있어선 연화문蓮花紋 이외에 국화문菊花紋 비슷한 것도 있다. 이것은 물론 연화문의 변형일 것이나 이러한 형식의 주제는 고구려 와당에도 흔히 보는 바이다. 고구려 와당에 있어선 그 문양의 주제가 다종다양多種多樣이어서 蓮花연화, 忍冬草인동초 등은 물론이요 한와당漢瓦當 이래의 궐초형蕨草形, 방사선형放射線形 등을 위시하여 차복형車輻形, 기하학도형幾何學圖形, 수형獸形, 와마형蛙 形, 등 종종種種의 것이 있고 그 표현방법에 있어ㅅㅓ도 여러 가지 기태奇態의 것이 있다. 와당문양의 변태에서 본다면 실로 고구려를 따를 자가 없다. 이 점만에서 보더라도 고구려는 확실히 백제, 신라보다도 선진이었다 아니할 수 없다. 백제는 말기 부여시대에 있어서 우수한 전벽공예塼 工藝를 낳게 되었지만 이는 요컨대 말기의 현상이었고 대체에 있어서 복잡다단한 것은 고구려였다.

 그러나 주제에 있어선 이와 간은 고구결의 다양성을 볼 수가 있지만 그 예술적 가치에 있어선 한풀 꺾이는 점이 있지 아니한가 한다. 그들의 문양의 표현방법은 건핍乾逼되고 조강燥剛하고 奇 스러움이 많다. 백제의 와당은 윤택하고 온아하고 명석하다. 고구려는 참나무의 감성이요 백제는 버드나무의 감성이다. 윤택과 명석 지혜가 백제와당百濟瓦當의 감성이요 율한慄悍과 핍박逼迫과 기굴奇 이 고구려 와당의 감성이다. 의력意力의 굳셈이 고구려 와당에서 볼 수 있는 고구려의 성격이요 理智의 명석됨이 백제 와당에서 볼 수 있는 백제의 성격이다. 양식적으로 말한다면 신라 와당에는 기술한 고구려적인 것이 한둘 있지만 신라 와당의 대체는 백제적인 것에 있다. 따라서 이 양식에서 오는 예술적 감성은 고구려적인 의지의 기굴성奇 性이라기보다는 이 명석성明 性이 우수한 편에 속하나 습성이라 할까 생활이라 할까 성격이라 할까 신라에 있어서는 이 명석성이 외면의 엄연한 규격일 뿐이요 내면적으로 둔후한 맛이 굳세게 바탕을 이루고 ㅇㅣㅆ는 듯하다. 외래문화를 충분히 소화한 것이 됨으로부터 신라의 이 장자적長者的 둔후풍鈍厚風은 이지적理智的 명랑성明朗性과 함께 현저히 그 특색을 나타나게 된다. 백제의 예술적 성격은 귀공자연貴公子然한 것이었고 신라의 그것은 長者然한 것이었고 고구려의 그것은 패자연覇者然한 것이었던 듯하다. 조각적 용어를 빌면 고구려의 그것은「모델이여룽」이 없다. 모든 것은「리니아리쉬」다. 그것은「스쿨푸투릿쉬」의 것이다.

그러나 신라의 것은「모델이여룽」이 풍부하다. 그것은「풀라스티쉬」의 것이다. 백제는 이 중간에서 신라편에 속하면서 그것은 오히려 「말라릿쉬」에 속할 것 같다.

신라는 많은 공예품에 있어서 현수장식懸垂裝飾이 성용盛用되고 있다. 고구려는 그 주제에 있어 수렵과 투쟁의 주제가 많다. 백제에는 우수한 전공예塼工藝가 남아 있다. 신라 건국설화에(金閼智 전설) 황금궤黃金櫃가 나뭇가지에 걸려 있어 광망光芒이 사출四出하고 백계白鷄가 울어 예였다는 것은 현수장식의 예술의사藝術意思에 통한다. 고구려 건국에 있어 수렵에서 발단하여 투쟁에서 이룩됨은 고구려의 예술의사와 통한다. 백제는 구태仇台(古 )의 건국에 있어 漢 요동태수遼東太守 공손도公孫度의 女를 얻어 그 힘으로 창성되었다는 사록史錄이 있으니 漢 문화를 근거한 그들의 立國은 바라흐로 저 전문화塼文化의 예술문화의 한 특색이 살펴지지만 결국 그들의 예술문화의 특색을 전반적으로 유루遺漏없이 분명하게 한다는 것은 이러한 간단으로선 무모한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만일에 내가 현명한 사람이라면 이만 정도에서 시험적인 논필論筆을 던져 버림이 가할 듯하다. 
 

      
  

 

*이 글은 고유섭,『우리의 미술과 공예』에서 발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