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악의 멋 - 황병기
글쓴이 : 학예실     첨부파일 :       날짜 : 07-12-20    조회 : 4112
  유구한 역사를 통하여 우리 민족은 노래와 춤을 발전시켜 왔는데, 비옥한 호남 평야를 중심으로 형성된 민속음악이 바로 남도악南道樂이다.

  남도악은 민요 한 가락만 들어보아도 그 특유한 멋을 즉각 느낄 수 있다. 가령 농업을 국본國本으로 삼아온 우리 민족의 민요 중 남도의 ‘농부가’ 처럼 흥겹고 멋스러우면서도 농민의 긍지를 드높인 노래는 없을 것이다. 흥청거리는 중모리 장단으로 시작하는 ‘에이여 여허로, 상사디여, 얼럴럴 상사디여, 여보시오 농부님네, 이내 말을 들어보소, 아나 농부들말 들어보소’ 의 후렴 가락부터 벌써 비범한 신기가 서려 있는 것이다. 이 후렴 중 ‘얼럴럴 상사디여’가 다음 절에서 흥이 고조되면 ‘둥둥 두리둥둥 꽤갱맥 꽹맥’ 처럼 북과 꽹매기 소리의 구음口音으로 변하는 것은 남도악 특유의 극적인 변화성을 보여준다. 본 사설의 예를 들어보자.

  ‘남훈전 달 밝은 밤, 순임금의 놀음이요, 강화도 천일주는 산신님의 놀음이요, 이 농부들도 상사 소리를 메기는디, 각기 저정거리고 거드렁거리세’ 에서는 상사 소리를 메기는 농부들의 거드렁거림을 순임금이나 산신님의 격조 높은 놀음에 비교하고 있는 것이다. 중모리의 긴 ‘농부가’는 중중모리의 잦은 ‘농부가’로 더욱 고조된다. ‘서마지기 논뺌이가 반달만큼 남았네. 네가 무슨 반달이냐, 초생달이 반달이로다’ 의 한 구절에서도 남도 특유의 해학과 재치로 충만된 대화 형식의 묘미를 맛볼 수 있다.

  남도 민요라고 하면 누구나 육자배기부터 생각할 것이다. 호남지방의 어느 곳에서나 남녀노소가 즐겨 부르는 대표적인 민요이다. 남도의 시인 서정주徐廷柱의 ‘선운사禪雲寺 동구洞口’ 에도 육자배기가 나온다.



선운사 고랑으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리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시방도 남았습니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니다.



막걸리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 그것도 쉰 목소리로 넘어가는 그 가락에 작년에 피었던 동백꽃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육자배기 각 절의 사설은 그 끝이 ‘도는구나’, ‘눈물이로구나’, ‘염려로구나’ 에서처럼 ‘……구나’로 되었거나, 또는 ‘놀아불거나’ , ‘무삼할거나’ , ‘짜루워볼거나’ 에서처럼 ‘……거나’ 로 되었다. ‘구나’와 ‘거나’는 그 자체로서는 아무 뜻도 없는 애달픔을 머금은 감탄사이다. 그런데 육자배기 후렴은 이 감탄사를 독립시켜서 ‘구나(또는 거나), 헤-’ 로 되었다. 이러한 파격이야말로 남도의 멋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육자배기의 허두를 본래는 사설의 끝에 해당하는 ‘구나’로 시작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마치 예전에 불렀던 육자배기가 그 동안 시간 속에 묻혀 있었는데, 그 가락의 끄트머리를 다시 찾아내서 지금 부르는 육자배기의 허두로 삼는 듯하다. 작년에 피었던 동백꽃을 지금 찾아내는 서정주의 시정과 통하는 것이다. ‘사람이 살면은 몇 백년이나 사드란 말이냐, 죽음에 들어서 남녀노소가 있느냐, 살아 생전에 객기 맘대로 놀아볼거나, 헤-’ 대표적인 육자배기 사설이다. 그러나 육자배기 가락은 황진이의 고매한 시를 담아 울리기도 ㅎㅏㄴ다. ‘내 정은 청산이요, 임의 정은 녹수로구나. 녹수야 흘러내려갈망정, 청산이야 변할 리가 있겠느냐. 아마도 녹수가 청산을 못 잊어 빙빙 안고만 도는구나, 헤-’

  남도악도 다른 민속음악과 마찬가지로 서민 대중으로부터 우러나온 민요가 토대를 이루었지만, 전문적인 음악가 즉 소리꾼에 의하여 고도의 예술음악으로 발전되었다. 소리꾼들이 부르던 노래를 잡가라고 하는데, 이들은 자신의 전문적인 음악 기교와 식자층으로부터 배워온 풍부한 문학적 사설을 결합하여 고도로 세련된 잡가를 만들어냈다. 가장 많이 알려진 ‘새타령’ 만 해도 음악 형식, 사설 내용, 가락, 장단, 말 붙임, 기타 음악적 표현이 난삽하여 아무나 흥얼거리기 어려운 전문성을 띠고 있다. ‘삼월 삼짇날 연자燕子 날아들고……’ 로 시작하는 도입부는 빠른 중중모리로 거침없이 사설을 주워섬겨서, ‘열의 열두골 물이 한데로 합수쳐, 천방저지방저 얼턱저 구부치는’ 산수의 장관을 시원스런 장단의 세勢로 묘사한다. 본 곡은 템포를 축 늘어뜨려서 흥청거리는 굿거리로 온갖 새들의 양태를 그려나간다.

  세계적으로 소박한 민요에서부터 악성들의 대작에 이르기까지 새 소리를 다룬 곡들이 수도 없이 많지만, 남도의 ‘새타령’처럼 새들의 모습과 소리를 다양하고 섬세하게 감각적으로 묘파한 곡은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새타령’은 새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데 그치지 않고 서민들의 자연관과 인생관을 얘기하고, 환희에 찬 생의 찬가로 승화되어 있는 것이다. 가령 ‘쑥국쑥국 쑥쑥국 쑥국’, ‘수리루 수리 수리루’ 등으로 새소리를 정확히 묘사하고는, ‘어-어 히-히이이히이히’의 신바람 나는 구음으로 우리 자신의 희열의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새타령’의 마지막 끝나는 사설은 다음과 같다. ‘저 장비둘기 날아든다. 막둥이 불러 비둘기 콩주랴. 푸른 콩 한줌을 덤벅 쥐어 좌르르르르르 흩어 주니, 숫 비둘기 거동 봐. 춘비춘흥春悲春興을 못 이기어 주홍 같은 혀를 내어 푸른 콩 하나 입에다 덤벅 물고 암 비둘기를 덥석 안고, 광풍을 못 이겨서 너울너울 춤만 춘다네. 노류장화路柳墻花 꺽어 들고 청풍명월에 놀아보세.’ 이 중에서 ‘암 비둘기를 덥석 안고’ 까지는 굿거리 장단으로 계속해서 부르지만, ‘광풍을 못이겨서……’ 부터는 중모리 장단으로 템포가 느려져서 끝을 맺는다. 우리 음악의 일반적인 형식은 느린 템포로 시작해서 차츰 빨라지는, 만慢-중中-삭數의 구조로 되었다고 하지만, ‘새타령’은 잦은중중모리-굿거리-중모리의 형식으로 되었다. 이처럼 남도악은 고정된 틀 속에 한정되지 않고 자유자재한 것이다. ‘새타령’의 마지막 가락이 중모리로 늘어짐으로써 곡이 훨씬 안정되고 웅장한 맛을 지닌다.

 민요와 잡가는 경기악에나 서도악에도 있다. 그러나 보통 소리꾼보다 한층 높은 차원에서 남도의 명창 명인들이 이룩한 음악이 민속악의 극치라 할 수 있는 판소리와 산조이다.

 판소리처럼 혼자서 여러 시간을 계속해서 부르는 성악은 전 세계에 그 유례가 없다. 더욱이 담담한 서정적인 노래이거나 명상적인 종교적인 노래도 아닌, 경각頃刻의 천만변화千萬變化를 표현하면서 구경하는 남녀노소를 울게 하고 웃게 하는 극가를 단 한사람이 장장 일곱 시간이나 부르는 일이 판소리 외에는 다시 없을 것이다.

  수십 명 또는 수백 명의 인원이 동원되어 공연되는 서양의 오페라도 두어 시간만 넘으면 벌써 거작巨作으로 꼽힌다. 판소리 창자는 모든 음악적인 기예를 피나는 수련으로 체득하여 오장에서 나는 소리를 농락하여 자아냄으로써 청중을 압도한다. 사실 남도악처럼 청중을 무아경으로 몰고 가는 음악은 없다. 청중들은 그저 듣고 좋다는 정도에 머무르지 않고 추임새를 연발하면서 열기를 뿜는다. 명창의 소리를 들으면 세피가 끼친다는 말이 있다. 즉 소름이 끼친다는 것이다. 밤을 새워가며 판소리를 들을 때 측간에 가는 시간이 아까워 청중들이 요강까지 사용했던 것은 다른 음악 감상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일 것이다.

  민속음악은 본래 지방적 음악이지만, 판소리는 지방적인 테두리를 넘어서 범민족적인 음악으로 성장했다. 남도 육자배기조의 토속적인 어법에 굳건히 뿌리를 박고 있으면서도 경조京調ㆍ메나리조ㆍ권마성조 등 다른 지방의 민속어법은 물론 상층 사회의 정가正歌인 가곡성歌曲聲까지도 모두 포괄하였고, 사설 면으로는 흙냄새가 물씬 풍기는 비루한 욕설에서부터 고고한 문사들의 문장에 이르기까지 정금미옥精金美玉과 같은 좋은 말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판소리 명창들은 남도는 물론, 경기도와 서도 등 다른 모든 지방을 순회하면서 남녀노소를 열광시켰고, 심지어 궁정에서까지 애청됨으로써 국창의 칭호도 받게 되었다. 사실 판소리 명창들의 자기 예술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했다. 그들의 한 바탕의 판으로 짜여진 소리, 즉 판소리에 일생을 걸었다는 자부심으로 본래 민요나 잡가는 입에 붙이지도 않았다. 판소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판으로 배우지 못하고 유명한 대목만 배워서 부르는 사람을, 판소리가 아닌 ‘토막 소리’밖에 못 부른다고 천시하였다. 장구한 기간 목에서 피가 나게 정진해야 하는 판소리 창자로서의 수련 과정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했다. 즉 예술가로서 연조와 공력을 쌓는 데 있어서 그 누구도 판소리 창자를 따르기는 어렵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또한 판소리를 가르치고 전해준 선인들에 대한 존경심과 자신이 그 후예라는 데 대한 자부심도 대단하다. 판소리 창자들처럼 역대 명창들의 얘기를 들추고 그 업적을 기리는 음악가들은 없다.

  판소리 및 판소리 명창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노래는 신재효의 ‘광대가廣大歌’이다. 고금의 호걸문장의 절창絶唱을 오히려 비판하면서 ‘거려천지 우리 행락 광대 행세 좋을시고’ 라고 한 것이나, “우리나라 명창 광대 누구누구 명성이 자자하여 사람마다 칭찬하니”라고 하면서 이들 명창을 중국의 시성詩聖들과 동급으로 놓고 비교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

  남도 음악가들은 그 풍부한 음악성으로 기악 분야에서도 찬연한 예술의 꽃을 피웠다. 우리나라 기악 독주곡 형식의 극치인 산조, 즉흥 합주 형식인 ‘시나위’, 성악과 기악의 결합인 ‘가야금병창’ 등이 그것이다. 남도악은 우리 민속음악의 보고로서, 우리 문화의 자기 회복과 새 문화 창조를 위한 기름진 토양으로서 소중하게 간직되고 가꾸어져야 할 것이다.



* 이 글은 나라음악큰잔치『우리소리 우리마음』에서 발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