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자연의 음악 : 정악 正樂 2 - 황병기
글쓴이 : 학예실     첨부파일 :       날짜 : 07-12-05    조회 : 4425
* 1에서 계속
 
  영조 때의 풍류객 송계연월松桂烟月의 시조를 보자.

  

 거문고를 타려고 하니 손이 아파 어렵거늘, 북쪽 창문에 드리운 소나무 그늘에 거문고 줄을 얹어 걸어두니, 바람이 줄을 건드려 타지 않는데도 스스로 우는 소리야말로 참으로 듣기 좋다는 것이다. 그가 거문고를 사랑하면서도 그 연주 기교를 연마하고 음악에 정진하기보다는 거문고가 주는 생활의 아취雅趣를 취하려는 뜻을 잘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김창업 金昌業의 시조를 보자.

  

  거문고를 타지 않을 때에는 그 술대를 줄과 줄 사이에 꽂아놓는 법이다. 그리고 호젓하게 낮잠이 들었는데 사립문에 개 짖는 소리가 난다. 반가운 벗이 온 모양이니 점심도 준비해야겠으나 외상 탁주라도 받아 오라는 것이다. 이 시조 역시 거문고 연주보다는 그 생활의 아취를 그리고 있다.

  이처럼 음악은 무위자연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전해 오는 선비들의 음악, 즉 정악正樂은 그 선율이나 리듬이나 형식이 서양음악에서처럼 어느 작곡가의 독창성을 나타내는 일이 없다. 도대체 전통 국악곡 중 작곡가의 이름이 알려진 것은 한 곡도 없다. 또한 서양음악에 17세기 음악, 18세기 음악, 19세기 음악이 있고 바로크, 고전주의, 낭만주의 등의 양식에 속하는 음악이 있는데 대하여 우리 국악곡들은 어느 시대의 산물이 아니라 수백년의 세월을 통하여 끊임없이 변화되어 오늘에 이른 것이다. 따라서 하나의 악곡에 모든 세월의 연륜이 축적되어 있다.

  국악곡의 미美는 일시에 피어나는 꽃의 미라 아니라 풍상風霜을 겪어온 고목의 미와 같다. 국악곡은, 특히 선비의 음악이었던 정악은 젊은 날의 꿈ㆍ환상ㆍ동경ㆍ기쁨ㆍ슬픔과 같은 것에 구애되지도 않고 이런 것을 표현하지도 않는다. 이 모든 인간적 감정을 넘어서서 그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한 영원한 진리의 세계, 즉 자연의 경지에 달해 있는 것이다. “도道는 자연에 따른다” 고 하지만, 음악이야말로 자연에 따랐던 것이다.

  정악에 ‘미환입尾還入’ 이라는 곡이 있다. 일명 ‘수연장지곡壽延長之曲’ 이라고도 한다. 이것을 거문고 독주로 타면 정철의 시조에서와 같이 주로 대현을 사용하게 된다. 템포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고 중용을 지키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일정하다. 정확하게 6박자로 되어 있지만, 듣는 사람은 그 박자감을 전혀 느낄 수가 없다. 선율이 단순하고 반복되는 음이 많으면서도 부단히 변화되기 때문에, 선율을 파악하기도 어렵다. 기쁘거나 슬픈 모든 정감을 떠나 덤덤하게 흐르는 이 가락이야말로 무념무상의 대도大道에 통해 있고 무위자연의 경지에 달해 있다. 이 곡에서 상식적인 음악의 재미를 찾는 것은 헛된 일이다. 이 곡을 이해할 수 있는 가장 긴요한 마음가짐은 음악적인 즐거움을 떠나려는 데 있을 것 같다. 도사道士가 경經 읽는 소리를 듣듯이 현묘하게 들려 나오는 거문고 소리를 허심탄회하게 듣고 있노라면 모든 인정人情에서 떠난 무정유無情遊의 경지에 빠져들게 된다. ‘미환입’ 의 음악미는 무표정하게 연속되는 거문고 소리 그 ㅈㅏ체에 있을 뿐이다. 소리 그 자체에 몰입하기 위하여는 어떠한 리듬이나 선율의 기교도 필요가 없음을 이 곡에서 깨닫는 것이다. 연잎에 떨어지는 빗소리나 도사의 경 읽는 소리에 어떠한 음악적인 기교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이치와 상통한다.

  송계연월처럼 거문고 현을 울리는 바람 소리를 듣는다든가, 김창업처럼 거문고의 술대를 꽂아놓고 낮잠을 자는 것은 음악을 떠난 행위이지만, 미환입은 음악이면서도 예술의 미보다는 자연의 미에 접근하고 있다. 우리가 오늘날 알고 있는 자연 또는 현실과 판연히 구분되는 예술의 개념은 서구적이고, 그러한 예술에 음악이 속한다는 생각도 서구적이다. 서양에서는 음악을 위한 음악을 순수음악 또는 절대음악이라 하고 음악 중에서도 가장 격조 높은 것으로 받드는 전통이 강하다. 시는 물론 어떠한 표제에도 의존치 않고 순수하게 청각에 호소하는 고도의 형식과 기교를 구사하는 음악이다. 그러나 우리 선비들은 음악을 생활의 일부로서 철저하게 인격 도야를 위한 수단으로 생각했다.

  ‘세종실록’의 “음악이란 성인聖人이 성정性情을 기르고 신인神人을 화和하며 천지를 순順하며 음양을 고르는 도道”라고 한 것을 보아도 음악은 도였다.

  공자가 교묘하게 꾸며진 말과 보기 좋게 꾸민 표정에는 인仁이 드물다고 했듯이, 교묘한 음악 또는 도道와는 거리가 멀게 생각되었던 것이다.

  심지어 연주자의 표정도 담담하여 변화가 없어야 한다. 무슨 큰일이나 하는 듯이 갖가지 얼굴 표정을 짓고 고개를 끄덕대고 발로 박자를 짚고, 몸을 흔드는 것이 일체 금물이다. 눈을 지그시 감는 것도 안된다. 이것 역시 유다른 표정으로 유치한 것이다.

  오늘날 ‘미환입’ 거문고 독주는 무대에서건 방송에서건 연주되는 일이 없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거니와, 이러한 음악 자체가 무대나 방송에서 연주되면 제 맛이 날 리도 없다. 현대 산업사회에서 이러한 곡을 들으려는 것은 수도 파이프에서 약수를 마셔보려는 격일 것이다.

  요즈음과는 다른 이유에서였겠으나 3백여 년 전 윤선도尹善道는 이러한 시조를 읊었다.


  

버렸던 가야금을 줄을 얹어 놀아보니, 청아한 옛 소리는 반가이 나지만, 이 곡조를 알아줄 사람이 없으니 다시 그 집(주머니)에 껴서 놓아두라는 것이다.


 

* 이 글은 나라음악큰잔치『우리소리 우리마음』에서 발췌했습니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