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자연의 음악 : 정악 正樂 1 - 황병기
글쓴이 : 학예실     첨부파일 :       날짜 : 07-11-20    조회 : 4031
  정철鄭澈의 시조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거문고에는 여섯 개의 명주실로 꼰 줄이 있다. 이 중에서 선율을 타는 것은 줄은 둘째 줄과 셋째 줄이며, 나머지 줄들은 선율을 장식하기 위한 저음으로만 사용된다. 둘째 줄과 셋째 줄을 각기 유현(遊絃, ‘遊’를 약자로 ‘子’로 표기하기도 한다)과 대현大絃이라 하는데, 유현은 가늘어서 소리가 맑고 부드러운 반면 대현은 어느 나라의 악기에서도 없으리만큼 줄이 굵다. 이 굵은 줄은 보통 현악기처럼 손가락으로 뜯어서는 제 소리를 얻을 수가 없다. 줄이 너무 투박하여 손가락으로 뜯어서는 줄을 건드리는데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해죽海竹으로 만든 술대를 오른손에 단단히 거머쥐고 줄을 위에서부터 내려쳐야 대현 특유의 검고 깊이 있는 소리가 울려 나온다. 이때 술대는 줄을 칠 뿐만 아니라 그 여세로 오동나무 공명판에 부딪게 되어 가죽으로 그 부분을 덮어서 보호하기까지 한다. 거문고 공명판 위에는 음 높이를 정하기 위한 눈금으로 16개의 괘 가 있다. 따라서 대현과 유현을 칠 때에는 반드시 왼손으로 어느 괘를 짚어서 음률ㅇㅡㄹ 조절한다.

  앞서 시조에서 ‘거믄고 대현大絃 올나’ 라는 말은, 대현을 타려면 왼손이 그 줄 위에 올라야 되기 때문에 ‘거문고 대현을 타는데 있어서’ 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한 괘 밧글 디퍼시니’는 지금까지 짚던 괘보다 하나 밖으로 나아가 괘를 짚었으니, 즉 ‘하나 아래의 괘를 짚었으니’ 로 해석된다. 이때에 거문고 소리가 정철에게는 ‘얼음에 막힌 물이 여울에서 우니는 듯’이 느껴진 것이다. 천지가 얼어붙으면 물소리가 끊기고 정적이 계속된다. 때로 삭막한 바람 소리만 들릴 뿐이다. 그러나 얼음 밑의 여울에서 물소리가 들려올 때 그 희한함은 귀를 의심케 할 것이다. 그 소리는 경이롭고 반가우며, 온갖 세속적 고난을 넘어서 이룩된 고고한 것으로 느껴질 것이다. 거문고 대현 소리를 정철은 이처럼 느낀 것이다. 그러나 이 시조의 참맛은 끝장에서 나온다.

  
 

즉 어디에선가 연잎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거문고 소리를 따라 맞추어주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거문고 소리의 음악적 가치는 그 자체로서보다도 ‘연잎에 지는 빗소리와 조화될 때’, 즉 무위자연無爲自然과 합일될 때 비로서 완성된다.

  서양 음악사에는 기라성 같은 작곡가들의 이름이 나온다. 이들 작곡가 대부분은 예술가로서의 생애가 희망과 좌절로 얼룩진 고뇌에 찬 것이었다. 그들의 작품은 그 개인이 성장하고 변화되어가는 과정에서 그때마다 자신을 표현하기 위한 몸부림이었고, 예술가로서의 성패는 그들의 음악이 주위 사람들로부터 얼마나 공감을 얻고 갈채를 받느냐에 있었다. 살롱에서는 귀족들을, 극장에서는 청중들을 열광시켜야 했고 평론가들의 찬사를 얻어야 했다. 현대의 연주 풍습도 그렇다. 연주회장은 무대와 객석으로 나뉜다. 객석에 불이 꺼지고 무대에 조명이 비치면 연주자가 치장을 하고 걸어 나와 인사를 하고 연주를 시작한다. 연주장은 일체의 외부 소리로부터 차단되어 있고 청중은 깜깜한 속에서 숨소리를 죽이고 앉아 음악에 몰두해야 한다. 연주가 끝나면 우레 같은 박수가 터지고 연주자는 미소를 머금고 연방 고개를 굽히면서 인사를 한다. 이어 플래시가 번쩍이고 꽃다발이 주어지고 때로는 리셉션과 파티가 열리기도 한ㄷㅏ. 다음날 신문에 사진과 함께 ‘원숙한 음악성, 완벽한 기교’ 등의 평문이 실리면 경사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정철과 같은 우리 선비들에게 음악은 어떤 것이었을까. 거문고를 탈 때, 연잎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들림으로써 음악의 삼매경에 달했던 것이다. 배우가 무대 위에서 대화를 할 때 되도록 많은 사람이 관람하고 찬사 보낼 것을 기대하는 데 반하여, 그가 일상생활로 돌아와 대화할 때는 오히려 누가 보는 것조차도 꺼리고 누구의 찬사도 원치 않듯이, 우리 선비들에게 음악은 생활의 일부로서 오히려 누가 엿듣는 것조차도 꺼렸다. 더욱이 음악을 발표하여 찬사를 받고 출세를 하고 돈을 버는 것은 마치 애인을 팔아 치부하는 것만큼이나 치욕적인 것이었다.

  서양에서 음악 작품은 자연과 분리된 인위성, 무한히 연속되는 시간으로부터 분리된 시간성, 전체 인간으로부터 분리된 개성 등이 강조된다. 또한 하나의 개성을 지닌 음악가라 할지라도 그 성장 과정 속에서 개성이 단계적으로 분화되고 더 나아가서는 하나하나의 작품으로 분화된다. 가령 베토벤의 개성이 초기ㆍ중기ㆍ말기로 나누어지고 같은 중기에 속하는 작품들이라도 작품마다 개성이 뚜렷한 데에 베토벤의 위대성이 있다. 하나의 작품마다 작곡 동기가 다르고 곡을 쓰게 된 에피소드가 있다. 그리하며 개성의 표출이 절실할 때에 사람들의 공감을 받고 더 나아가서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는 고진성이 부여된다.

  그러나 우리 선비들에게 음악은 자연과 합일하기 위하여 자기 개성을 해방시키는 것이었다. 따라서 음악 자체에만 몰두하는 것은 오히려 금물이다. 거문고는 오동나무 판에 명주실을 걸어놓은 한갓 물건이니, 이로써 귀에 듣기 좋게 하기만 바라는 것은 저속한 일이었다. 도연명陶淵明이 “오직 거문고琴의 정취를 얻기만 한다면 어찌 애써 줄 위의 음을 다루리요.” 했듯이, 선비들은 소리 그 자체보다도 거문고가 주는 그 정취를 중요시했다. 사실 옛 풍속도를 보면 악기를 들고 있다든가 줄을 고르고 있는 장면이 많고 연주하는 장면은 별로 없다. 시조에서도 음악 그 자체보다는 거문고를 둘러싼 유유자적한 생활정서를 주로 다루고 있다.

  

* 이 글은 나라음악큰잔치『우리소리 우리마음』에서 발췌했습니다.

** (계속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