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협화음으로 엮은 조화…산조의 바탕 - 김훈
글쓴이 : 학예실     첨부파일 :       날짜 : 07-11-05    조회 : 4129
<시나위>

  시나위는 한국인의 음악적 심성의 심층부에서 우러나온 가락이다. 시나위는 육자배기, 판소리, 그리고 많은 국악기들(거문고, 가야금, 피리, 아쟁, 해금 등) 산조(기악 독주곡)의 음악적 바탕을 형성하고 있다. 계면조의 창법이나 진양조의 장단으로 불려지는 판소리의 어느 대목이 정서의 해방 또는 종교적 초월을 달성할 수 있는 것은 그 소리의 바탕에 시나위가 개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나위 씻김굿(떠도는 넋을 맞아들여 그 한과 죄업을 씻어줌으로써 안주토록 해주는 굿, 이 굿의 분위기는 비통하고 엄숙하다)이나 성주굿(집을 새로 지었을 때나 이사를 했을 때, 역대 조상신들을 새집으로 모셔 들여 그 신들의 축복을 비는 굿, 이 굿은 화기롭고 흥겹다)같은 전라도 굿판에서 종교의례를 성립시키기 위하여 사용되는 무악이다. 시나위는 기악합주이다. 무대위에서 공연되는 시나위는 피리, 대금, 해금, 장구 등으로 합주가 편성되지만 민생의 굿판에서는 이 많은 악기의 악사들이 모두 참가할 수 없고 흔히 피리, 장구, 징으로 편성되기도 하고 한 사람의 악사가 피리와 징을 함께 맡는 수도 있다. 시나위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서양음악의 용어로 말하자만 시나위는 불협화음이다. 시나위에 참가하는 악기들은 저마다 제각기의 전혀 다른 선율을 연주하고 있다. 그 소리들의 총화는 서양인의 귀에는 불협화음으로 들리고, 한국인의 음악적 심성에는 수준 높은 음악적 의미를 이룩한 화음으로 들린다. 불협화음으로써 음의 조화를 이루어내는 것이 시나위의 비밀이다. 시나위는 이 무질서를 음악적 질서에로 끌어올리면서 강력한 표현력과 설득력을 갖춘다. 그리고 시나위는 저 자신의 음악적 양식을 판소리나 기악산조에로 녹아들게 하는 수용능력을 갖는다. 시나위에서 음악적 시간과 장단을 관리하는 것은 징이다. 징에서 이탈하지 않는 한 모든 시나위의 악기는 자유로운 선율을 연주한다.

  그리고 그 연주의 자유 속에는 동일한 문화적 토양과 동일한 음악언어 속에서 오랜 세월을 함께 살아온 사람들 사이에서만 가능한 엄격한 자기구속과 정밀한 상호교신이 작용하고 있다. 시나위가 근본적으로 불협화음이면서도 음과 음 간의 이화현상이 느껴지지 않는 이유를 민속음악 연구가 이보형씨(문화재 전문위원)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우선 한국인의 음의식 속에는 서양 음악이론에 나오는 불협화음이나 협화음의 개념이란 들어있지 않다. 시나위에 나타난 한국인의 음악적 미의식은 그 소리의 총화가 조성에서 벗어나느냐 벗어나지 않느냐를 가늠하는데 있다. 시나위는 불협화음이지만 그 소리의 총화는 육자배기적인(그의 전문용어로는 ‘육자배기토리’이다)허튼 가락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또 오랜 수련을 거친 시나위 악사들은 자신의 소리와 남의 소리에 대한 완벽한 이해에 도달해 있고, 무질서의 순간순간들을 음악적으로 대처해 나갈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완성된 시나위 악사들은 시나위를 합주할 때, 다른 악기가 이끌고 나가는 선율을 따라가지 않는다. 남의 선율을 따라가는 가락을 수성가락이라고 하는데, 시나위 악사들은 이 수성가락을 말째로 여긴다.

  시나위 악사들은 다른 악기가 연주하는 선율을 의도적으로 피하면서 별도의 선율을 연주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남의 선율을 듣고 있다. 그는 별도의 선율을 연주하면서 자신의 소리를 남의 소리와 대립적인 위치에 놓는다. 그는 남이 연주하는 선율을 따라가지 않고 그 소리에 자신의 소리를 맞추지도 않지만 남의 소리를 무시해 버리거나 이화시키지도 않는다.

  시나위 악사 박병천씨(인간문화재)는 “시나위의 그 비밀은 나 역시 잘 설명할 수 없다. 단지 연주할 때 남의 소리에 맞는 나의 소리가 저절로 터져 나올 뿐이다. 남의 선율 속에 함몰되지 않는 나의 선율로, 남의 선율과의 조화를 달성하는 것이다. 다른 악사들도 나의 소리에 대하여 똑같은 작용을 하고 있음을 연주현장에서 알 수 있다. 이처럼 미묘하고도 완벽한 교감이 악사들 사이에서 순간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그 교감의 순간들이 지속되어야만 시나위는 완성된다”고 말했다.

  그렇게 해서 이루어지는 시나위는 진도 씻김굿의 굿판에서 이승과 저승의 교신 또는 이승과 저승의 제자리잡기를 가능케 하는 음악이다.

  차가운 겨울바다에 빠져죽은 원통한 젊은이의 넋을 부를 때, 그 넋을 맞아들일 때, 그 넋의 한과 그 넋의 죄업을 씻어줄 때, 그리고 이승을 떠나지 못하는 한 많은 그 넋을 달래서 안주할 만한 저승의 제자리를 찾아줄 때, 그 모든 종교의식(굿의 절차)은 시나위의 선율위에 실린다.

  시나위 가락에는 삶과 죽음에 대한 한국인의 상상의 원형이 들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인은 죽어서 저승으로 간다. 이 저승은 불교의 극락이나 기독교의 천당이 보여주는 것처럼, 자지러질 듯한 행복과 열락으로 가득찬 낙원이 아니다. 한국인이 죽어서 가는 저승은 이승에 대하여 늘 우호적인 관계를 갖는 죽은 넋들이 모여서 점잖게 살아가는 곳이다. 그 넋들은 제사와 굿이라는 의식을 통해 이승에 간여하지만, 이승과 저승사이에는 엄격한 불가침의 질서가 있다.

  천당과 극락은 현세적 삶으로부터 완전히 절단된 세계이겠지만, 저승은 이승과 관련을 맺고 있다. 죽은 자의 넋은 모두 다 저승으로 가야 하지만, 원통하게 죽은 억울한 넋은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원귀가 되어 떠돈다. 시나위는 그 원귀의 한을 풀어줌으로써 그 원귀가 저승으로 돌아가 자리를 잡고, 살아 있는 인간을 도와주는 신 본래의 우호스러운 모습을 갖출 수 있도록 도와주고 달래주는 음악이며, 이승과 저승의 관계가 뒤틀려 있을 때 그 뒤를 관계를 바로 잡아주는 음악이다. 진도 시나위의 명문가 출신 시나위 악사인 박병천 씨는 시나위의 마음을 이렇게 설명했다.

  “가령 아버지가 저 건너편 섬에 있을 때 아버지를 부른다면 이편 섬에서 고함을 치면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아버지가 죽은 아버지라면 그 부른 소리는 저절로 달라질 것이다. 죽은 아버지를 소리쳐 부를 때, 그 부르는 소리의 음절들은 해체되어 버릴 것이고, 죽은 아버지를 부를 때 특별한 가락을 만들어서 그 소리가 죽음의 세계에 가서 닿도록 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 그리운 것, 간절한 것, 한스러운 것, 안타까운 것, 멀리 있는 것들을 부를 때에도 그 부르는 소리가 달라져야 한다. 그 소리들은 그 꼬리를 길게 길게 늘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나는 시나위가 이 같은 부름과 달램으로부터 발생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시나위가 음악정서의 기층을 이루는 지역은 전라남ㆍ북도를 중심으로 해서 남한강 이남의 충청도지방이다. 조선조의 판소리 명창은 거의 대부분이 이 시나위권에서 나왔다. 또 이 지역에서는 판소리 명창 뿐 아니라 살풀이춤(시나위 반주에 맞추는 작은 동작의 춤), 땅재주꾼, 줄타기 같은 민속예능의 허다한 명인들을 배출했다. 시나위는 음악뿐 아니라 여러 분야의 예술을 받쳐주는 기층문화인 셈이다.

  


* 이 글은 나라음악큰잔치『우리소리 우리마음』에서 발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