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황의 선線의 예술, 상원사 종鐘의 비천상飛天像과 일치 - 한명희
글쓴이 : 학예실     첨부파일 :       날짜 : 07-10-05    조회 : 4296
  ‘조선의 예술’이라는 책을 남긴 일본의 야나기 무네요시는 중국 예술의 토대를 형태로, 일본 미술의 뼈대를 색채로, 그리고 한국 문화의 특성을 유연한 곡선의 아름다움으로 규정한 적이 있다. 그러면서 그 구체적인 사례들로 남산에서 내려다 본 한양 시가의 지붕들을 손꼽았고, 경주 석굴암 관음상들의 온후한 곡선과 봉덕사나 상원사 범종에 새겨진 비천상飛天像등을 상기시키기도 했다.

  선의 문화의 배경을 우리 민족의 불행했던 역사와 슬픈 성정에 귀착시키려는 견강부회만 아니라면 야나기 무네요시의 이 같은 진단은 과히 어긋난 통찰이 아니라고 하겠다.

  그만큼 우리 주변에는 곡선의 아름다움이 충만해 있고 우리 문화의 씨줄과 날줄에는 곡선의 요소가 두루 산재해 있는 게 사실이다.

  흔히 거론되듯 박꽃을 이고 있는 평화로운 초가 지붕의 곡선이 그러했고, 봄바람에 휘날리는 ‘연분홍 치마폭의 만곡선彎曲線’이 그러했다. 이상화의 싯구에 등장하듯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처럼 나있는 논두렁길이나 5월의 미풍이 스쳐가는 보리밭의 물결도 그렇다.

  우리네 전통 음악도 마찬가지이다. 열두 발상모가 마당 가득히 원무를 그리는 농악놀이는 차지하고라도 대부분의 우리 음악은 유장한 선의 흐름으로 직조되어 있다.

  쇠심줄처럼 끈질기게도 뽑아내는 판소리의 진양곡은 아름답다 못해 슬픔이 괴는 곡선의 부침浮沈이고, 가사 한 음절로 수초씩을 길게 늘여가는 시조나 가곡의 선율을 차라리 장강長江 같은 무한선율無限旋律이라고 하겠다. 기실 우리네 대표적인 합주음악인 수제천 같은 곡을 듣고 있노라면 누구나 곡선미의 극치임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피리나 대금 같은 악기나 조화롭게 어우러지며 마치 물레로 실을 뽑아가듯 유순한 가락이 끝없이 이어질 때면 이내 우리는 밤하늘의 유성 같은 찬연한 선들의 율동에 매료되게 마련이다.

  그래서 서양음악처럼 수직적인 화성보다는 수평적인 선율이 발달된 우리 음악을 두고 저들은 ‘영혼의 소리’니 ‘천상의 소리’니 하며 찬탄해마지 않는 지도 모른다.

  여하튼 ‘버들은 실이 되고 꾀꼬리는 북이 되어’로 운을 떼는 어느 시조의 글귀나 ‘서산에 지는 해는 양류계楊柳系로 잡아매고 동령東嶺에 돋는 달은 계수桂樹야 머물러라’며 목청을 돋우는 단가의 사설에서도 보이듯이 우리의 감각, 우리의 의식 속에는 축축 늘어진 수양버들의 자태 같은 곡선미의 정취가 넘쳐 있다.

  그런데 바로 이 같은 곡선미의 극치를 우리 조사단 일행은 한국 밖의 또 다른 이역異域에서 만날 수 있었다. 바로 실크로드의 오아시스 도시 돈황敦煌에서였다. 돈황은 소위 천불동千佛洞이라고도 하는 막고굴莫高窟의 불교 유적으로 유명하다. 돈황학이라는 용어가 정립될 만큼 이 지방의 유적은 막중한 문화사적 의의를 지니고 있다. 이처럼 인류 공동의 보배랄 수 있는 돈황 예술은 여러 가지 측면의 여러 가지 성격의 연구되고 해석되며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분명한 사실 하나는 돈황의 예술을 거론하면서 ‘선의 아름다움’을 배제할 수는 결코 없다는 점이다.

  그만큼 돈황의 예술은 선적인 요소가 농후하다. 다른 예를 들것도 없다. 벽화에 나타나는 기악천伎樂天의 춤 모습 하나만으로도 족하다고 하겠다.

  기악천은 한마디로 무용이나 음악으로 천왕天王을 공양하는 천녀天女들의 주악도이다. 바로 돈황 석굴에는 이 같은 기악천의 벽화가 많기로도 유명한데 특히 하늘로 날아오르는 모습의 비천주악도飛天奏樂圖는 여간 인상적이지 않다. 인도의 아잔타 석굴벽화에도 주악도는 보이지만 비천주악은 없는 것을 감안할 때 확실히 비천주악도는 이곳 돈황을 중심한 사막의 길 연변 지방만의 남다른 특징이라고 하겠다.

  돈황 천불동의 기악천중에서도 특히 서위西魏때에 완성된 제285굴의 남벽에는 공후를 연주하며 승천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우리의 상원사上元寺 범종에 새겨진 비천상과 흡사하게 연결되고 있음을 직감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서기 725년 성덕왕 24년에 주조된 상원사의 동종銅鐘에는 공후와 우생(대나무 피리의 일종)을 연주하는 두 천녀의 비천상이 새겨져 있다. 길게 나부끼는 옷자락이며 구름무늬의 곡선 등은 그대로 돈황의 벽화와 일치함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기악천의 비천상은 비단 상원사의 범종에서만 나타나는게 아니다. 고구려 문화권인 집안輯安의 4호분과 17호분을 비롯해 통거우의 무용총이나 강서대묘江西大墓의 벽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피리나 무릎에 놓은 북, 거문고 등을 연주하며 등천하는 이들 비천도들은 그 머리장식이나 옷의 선 처리며 ‘V자형’의 구도 등에 있어서 돈황 벽화의 그것들과 너무도 닮아 있음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실크로드를 타고 전파된 같은 뿌리의 선의 문화요, 선의 예술임을 알 수 있다.

  서막에 서식하는 낙타초駱駝草의 생명력만큼이나 강인하고도 끈질긴 것이 인류의 문화이동이었구나 하는 새삼스런 상념에 젖으며 돈황의 명산인 명사산鳴沙山을 지날 때 필자는 문득 이곳 명사산이야말로 바로 이 같은 선의 예술을 잉태시킨 본향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토록 고운 모래로만 덮여있는 명사산의 능선은 유연하고도 아름다웠다. 사막의 바람이 빗질을 하고 오랜 세월이 풍화를 일으키며 지극히 자연스럽게 직조된 명사산의 모래 선들은 한마디로 황홀한 선들의 곡예였다. 바로 이 같은 명사산의 부드러운 구릉을 보고 동방의 예인들은 위대한 곡선의 예술이 빚어냈음이 분명했다. 여기에 또한 이 지역 특산물이기도 했던 비단의 속성이 가미되어 선의 예술은 극치를 이루게 되었다고 하겠다. 사실 우리는 기악천의 의상이 모두 매끄럽게 물결치는 비단천을 묘사한 것임을 알 수 있고 특히 호선무胡旋舞등에 보이는 복잡한 곡선의 율동 등은 모두가 비단이 있기에 가능한 비단의 산물들ㅇㅣㅁ에 틀림없는 것이다. 돈황벽화의 인물화에 보이는 의상의 곡선들은 그대로 영태공주묘永泰公主墓의 미인도 등 당대의 벽화에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모두가 살아 움직이는 듯한 비단 옷감들의 동선이 아니고는 이뤄낼 수 없는 우아한 선들의 아름다움들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방예술의 선적인 요소는 명사산의 능선과 실크로드의 비단천이 잉태시킨 산물임이 틀림없다고 하겠다.



  


* 이 글은 나라음악큰잔치『우리소리 우리마음』에서 발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