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한배가 느린가? 호흡의 문화 - 한명희
글쓴이 : 학예실     첨부파일 :       날짜 : 07-08-20    조회 : 4291

  시간 예술이라고 지칭되는 음악에서 템포(tempo)의 완급은 대단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동일곡이지만 템포의 기준을 어떻게 잡아서 재현해 내느냐에 따라서 그 음악의 악상은 달라진다.

  그런데 이처럼 중요한 비중을 지니는 템포의 인지 감각도 문화권에 따라서, 혹은 민족에 따라서 상이할 수 있으니 동일한 속도의 음악을 듣고도 빠르게 느끼는데 비해서 누구는 느린 것으로 인지하기도 하는 예가 바로 비슷한 경우라고 하겠다.

  결국 문화권에 따라서 템포의 인지 감각이 다를 수도 있다는 사실은 바꿔 말해서 서로 문화배경이 다르면 사람에 따라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모데라토(moderato)의 템포도 커다란 차등이 있을 수 있다는 말과 마찬가지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서구인들이 모데라토라고 느끼는 빠르기가 메트로놈 수치로 90회를 지칭한다면 우리의 그것은 20도 될 수 있고 30도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듯이 한국의 전통음악은 서양 고전 음악에 비해서 비교적 한배 즉 속도가 느린 것이 분명하다. 많은 내국인들이 찬탄해 마지않는 대표적 정악곡正樂曲인 ‘수제천’이나 ‘상령산 등속’의 음악을 들어 보면 쉽게 수긍이 될 것이다. 또한 이 같은 구체적인 음악의 예가 아니더라도 국악의 첫인상을 일단은 ‘느리다’ 고 간주해 버리는 일반의 통념을 상기해 보더라도 전래의 한국 음악이 보편적인 서구 음악에 비해서 한 배가 느린 것은 틀림없다고 하겠다. 여기 구체적으로 ‘이삭대엽貳數大葉’이라는 전통 가곡의 경우를 보자. 일반적으로 가요나 예술 가곡의 경우에 그 가사의 1,2절을 모두 불러도 4분여의 시간이면 족하다. 그러나 이삭대엽이라는 노래는 45자의 정형 시조시를 가락에 얹어서 불러 가는데 무려 10분이 넘게 걸린다. 한마디로 메트로놈 박자기로도 측정할 수 없는 느린 속도이다. 굳이 메트로놈 수치로 따진다면 25쯤에 해당되기 때문에 가장 느린 하한선의 눈금이 40인 메트로놈으로는 측정도 ㅎㅏㄹ 수가 없는 것이다.

  한국의 전통 음악이 서구 음악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속도가 느린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한 해답도 여러 가지 문화적 혹은 민족적인 특질과 연결해서 생각할 때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겠지만, 여기서는 일단 템포의 계량적 단위인 박(beat)의 준거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서 템포 관념의 차등이 생겼다는 가설하에 설명을 하기로 한다.

  한국의 전통 문화를 일별해 보면 그 저변의 잠재의식 속에는 호흡을 중시하는 징후가 역연함을 알 수 있는데 이 점은 심장의 고동을 중시하는 서양의 의식 성향과는 상당히 다른 한국적인 특징이다.

  우리의 문화 속에는 호흡에 얽힌 생활 용어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숨을 한 번 내쉬고 들이마시는 동안을 하나의 시간 단위로 설정하여 일식간一息間 혹은 이식간二息間이니 하는 양식척量息尺을 써 왔던 예를 비롯해서, 감정이 격양되었을 때는 긴 호흡을 해서 감정을 누그러뜨리라고 한다든지, 또는 건강을 위한 단전 호흡법 등은 하나같이 호흡을 중시하고 호흡에 뿌리를 둔 문화양상의 예증들이다. 더욱이 심장의 정지를 사망으로 단정하는 서양과는 달리 우리의 경우에는 ‘숨이 끊어졌다’는 말로 유명을 달리했음을 표현하듯이 확실히 호흡의 문제는 모든 생리 현상에서부터 문화현상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의식 저변에 두루 편재해 있는 공통된 민족적 문화소가 아닐 수 없다.

  이 같은 동서양간의 상호 이진적인 의식 성향을 염두에 두고 각자의 음악을 관찰해 보면 역시 우리는 템포의 기준이 서로 다름을 쉽게 알아차릴 수가 있다.

  즉 서양의 템포 개념은 맥박, 곧 심장의 고동에 기준을 두고 있으며 우리의 그것은 호흡의 주기 즉 페부의 운동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서양의 경우 박자의 단위인 박을 비트(beat) 혹은 펄스(pulse)라고 한다. 펄스라는 말은 곧 인체의 맥박을 의미하듯이 서양음악은 원초적으로 심장을 기준으로 해서 출발했다고 하겠으며, 이에 비해서 한국의 전통 음악은 모음 변화를 일으켜 가면서까지 길게 장인하며 호흡의 리듬을 타고 있음을 볼 때 역시 근원적으로 호흡에 뿌리를 둔 음악임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서양 음악의 경우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중용의 속도인 모데라토의 본래 박수를 1분간의 심장 박동수에 가깝고, 우리의 음악은 영상 회상의 기본곡인 ‘상령산’이나 가곡의 원형이랄 수 있는 ‘초삭대엽’과 ‘이삭대엽’ 같은 곡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1분간의 호흡의 주기에 가깝다. 결국 한국 음악에서 안온한 마음을 느낄 수 있는 모데라토의 기준 속도는 1분간의 심장의 박동수와 호흡의 주기와의 차이처럼, 서양 음악의 그것에 비하면 무려 3배쯤 느린 것임을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한국의 전통 음악은 호흡 문화를 바탕으로 한 폐부의 음악이며 서양의 고전 음악은 맥박의 고동을 기준으로 한 심장의 음악이라고 하겠다. 따라서 한국의 전통 음악이 유장한 맛에 정적인 명상성을 짙게 드러내는 것은 폐부의 속성 때문이고 서양의 전통 음악이 발랄한 분위기에 동적인 진취성을 강하게 띠는 것은 바로 심장의 속성에서 배어난 것임이 분명하다고 하겠다. 결국 양자의 음악의 특성을 일러 ‘심장의 음악’이요 ‘폐부의 음악’이라고 명명해 본다 해도 과히 빗나간 진단은 아닐 것이다.



* 이 글은 나라음악큰잔치『우리소리 우리마음 』에서 발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