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왕 호우壺 : 1 - 김용준
글쓴이 : 학예실     첨부파일 :       날짜 : 07-05-21    조회 : 5398

학서學書에는 반드시 먼저 예 의 정신을 배워야 한다. 예법은 모름지기 방경고졸方勁古拙1)함이 으뜸이요 이 고졸하다는 것 그것이 무엇보다 어려운 것이다.  한예漢 가 좋다는 것은 고졸한 맛이 담뿍 실려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예 중에도 파책波 2)이 심한 동경예東京  보다는 파책이 없는 서경예西京 3)를 더 상승上乘으로 치는 소이는 소위 “ 之無波之爲貴者 卽留有餘不盡之意 예서에는 파책이 없는 것을 귀하게 여기니 넉넉하여 끝이 없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기 때문이다.
우리 동인東人이 덮어놓고 만호제력萬毫齊力4) 이란 껍데기 논리만 들어 가지고 현완懸腕5) 이라든지 엽압구게 壓鉤揭6)라든지 구궁간가九宮間架7) 라든지 하는 서법의 진수는 모르고서 덤비는 것은 방필일소放筆一笑8) 할 일이다.
언언구구言言句句이 이렇게 역설한 완당 선생은 24세 때 그의 아버지의 연행燕行9)에 좇아 중국에 가서 완원阮元10), 옹방강翁方綱 같은 당대 홍유鴻儒11)들을 만나 금석학 서법에 관한 오의奧義12)를 공부하고 우리 조선에 글씨가 없음을 개탄하여 마지않았는데, 그가 서거한 지 불과 삼십여 년에 고구려의 고도古都 통구通溝에 우뚝 솟은 광개토왕비가 천오륙백 년을 두고 황폐한 고도를 내려다보며 그 웅위기굴雄偉奇 13)한 수천 자의 고례古 14)를 가슴에 품은 채 잡초 우거진 가운데 숨어 있었던 줄 누가 알았으랴. 그리고 또 그후 육칠십 년이 다 못된 오늘에 남쪽 끝 신라의 고도 경주의 고분에서 같은 고례로 씌어진 동조造銅 광개토왕 호우壺 15)가 발견될 줄 누가 짐작하였으랴.16)
오봉이년각석五鳳二年刻石17)을 비롯하여 잔금영석殘金零石18)이 많지 않은 고례의 정신을 끔찍이 사랑하던 완당 선생이 오늘날 생존하였던들 얼마나 광희작약狂喜雀躍19) 하였을 것인가.
‘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20)는 세인이 이미 주지하는 바다.
비수碑首나 비부碑趺의 수식도 없이 고구려 사람의 진취적 기상과 독창적 정신을 웅변으로 말하는 이 비는 수십 척 높이의 한 덩어리의 자연석 그대로다.
후한後漢 때에 비롯하여 수隋ㆍ당唐 이후 오늘날까지 동양 일판에 이런 형제刑制의 비가 어디 있느냐.
  

비라면 먼저 생각나는 것이 원수圓首나 규수圭首21) 혹은 반리蟠 22)의 비수碑首와 천공穿孔 비신碑身 귀부석龜趺石23) 등이요, 비신은 으레 사각으로 다듬는 것이 항례다.
  

무두무미無頭無尾한 한 덩어리의 돌이 의기충전하는 기상으로 홀연히 용립聳立24)한 이렇게 무모한 비를 일찍이 본 사람이 있느냐!
무명소졸無名小卒25)의 묘표墓標라면 또 모르겠거니와 용감하기 비할 곳 없는 고구려 사람, 그 중에도 제왕, 제왕 중에도 전무후무한 영주英主인 광개토왕-이 분의 기적비紀積碑가 표효하는 사자처럼 아무렇게나 생긴 돌로 우뚝 세워졌다는 것은 고구려의 감각이 아니고서는 상상키도 어려운 일이다.
그들의 미美는 곧 힘이다. 힘이 없는 곳에 그들의 미는 성립될 수 없다.
그들의 이러한 힘, 즉 미의 이상은 글씨로도 나타난다.
시대는 비록 분례分 26)가 생긴 훨씬 뒤인 진대晉代라 할지라도, 이 석문의 패기있고 치졸웅혼稚拙雄渾27)한 맛은 도저히 후한비後漢碑의 유類가 아니다. 공주비孔宙碑나 조전비曹全碑나 예기비禮器碑28)에서와 같은 염려艶麗하다거나 간경簡勁한 맛이라고는 약에 쓸래야 찾아볼 수 없다.
혹자 말하기를 호태왕비好太王碑는 분서分書라 한다.
혹자 말하기를 호태왕비는 분례이면서도 고례古 에 가깝다고 한다.
이 비의 서체가 가다오다 파별波  같은 것이 있는 것으로 하여 혹은 분서라 하는지도 모른다. 또 어느 한계까지 분서의 내용은 다소 가졌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을 그대로 분례에 규정하고 말해야 옳을 것인가.
심한 만환漫 으로 인하여 혹은 분례같이 느껴지는 면이 있지나 않은가.
우리는 다시 경주 고분에서 나온 비의 서체와 꼭같은 호우의 서체를 음미하지 않을 수 없다.


* 이 글은 김용준, 『근원近園 김용준金瑢俊 전집 1, 새 근원수필』에서 발췌하였습니다.
** (계속됨)



1) 모가나고 굳세며 예스럽고 질박함.
2) 중국 서법인 영자팔법永字八法 가운데 여덟 번째인 ‘책 ’으로,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삐친 형상인 파임을 말한다. 파별波 .
3) 동경예는 후한시대의 예서를, 서경예는 전한시대의 예서를 말한다.
4) 서예에서 한 획을 긋는 데 붓의 모든 털이 획에 사용되는 것.
5) 붓글씨를 쓸 때 팔을 바닥에 대지 않고 붓을 곧게 쥐고 쓰는 것.
6) 붓글씨를 쓸 때 적절히 붓을 누르고 드는 것.
7) 붓글씨를 쓸 때 선과 선 사이의 공간을 적절히 형성하는 것.
8) 붓을 던지고 웃음.
9) 사신이 중국의 연경(북경)에 가던 일, 또는 그 일행.
10) 1764-1849. 중국 청나라의 학자ㆍ정치가ㆍ서예가ㆍ문학자로, 자는 백원伯元이고 호는 운대芸臺이다.
11) 이름난 유학자. 거유巨儒.
12) 매우 깊은 뜻. 오지奧旨.
13) 씩씩하고 뛰어나며 기이하고 웅장함.
14) 예서 書의 한 종류로, 전서篆書에서 예서로 옮겨가는 시기인 전한前漢 중기의 파책없이 아직 소박한 모양을 지닌 서체.
15) 음식을 담는 두껑달린 합盒.
16) 1946년 광복 이후 한국인에 의해 최초로 실시된 발굴인 경주시 노서동路西洞 소재의 고분 조사에서 광개토왕 호우가 출토되었는데, 지금 불리는 호우총壺 塚이라는 고분 이름은 이 청동 호우에서 딴 것이다.
17) 오봉은 중국 전한 선제宣帝의 연호(BC 57-54)로서, ‘오봉이년각석’은 ‘五鳳二年’으로 시작되는 노魯 효왕孝王의 각석이다. 전한 예서 書의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18) 전해져 내려오는 얼마 되지 않는 금석문金石文.
19) 미칠 듯이 기뻐하며 뛰며 좋아함.
20) 이것은 광개토왕릉비의 묘호廟號로서, 마지막 세 글자를 본떠서 일명 ‘호태왕비’라고도 부른다.
21) 네모난 비의 머리.
22) 비신碑身을 휘감듯이 얹어진 비의 용트림 머리.
23) 돌 거북 모양의 비 받침.
24) 우뚝 솟은.
25)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하찮은 사람.
26) 전한 말기 파책을 수반하는 기법이 발달하고 형식이 정비되던 시기의 예서. 팔분八分.
27) 어린아이 같고 예스러우며 웅장하고 막힘이 없음.
28) 후한비는 중국 후한시대의 예서(동경서) 법첩法帖을 통칭하는 것이다. 공주비, 조전비, 예기비가 그 법첩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