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유도 船遊圖 - 최순우
글쓴이 : 학예실     첨부파일 :       날짜 : 07-05-05    조회 : 4087

  

5월은 예나 지금이나, 서울이 가장 아름다운 절기이다. 멀리 바라보이는 북한산과 도봉산의 연봉이 신록 푸르른 앞산 뒷산 저 너머에 그림처럼 둘러 서고 푸른 한강물은 한층 맑고 溶溶해서 산철쭉ㆍ싸리꽃ㆍ병꽃ㆍ붓꽃 따위의 들꽃이 이끼 푸른 암벽에서 그림자를 강물에 드리운다. 이 무렵이 되면 연초록의 향기를 실은 소슬바람에 강물이 일렁이고 해묵은 수양버들 실가지들이 강둑 위에 물결치는 속에 첫 꾀꼬리가 날아든다.
서울의 풍류남아들은 이래서 한강을 꿈꾸고 4월 8일이니, 5월 단오니 하는 명절 무렵에 뱃놀이를 꾸몄을 것이다. 웃통 벗어 제치고 막걸리에 취해서 징쟁기 울리면 야취있게 흥겨워하는 소박한 뱃놀이도 있지만 혜원의 意는 그것이 아니라 그가 능으로 삼는 도회적인 세련이 몸에 밴 젊은 한량들, 그리고 그를 따르는 조촐한 기생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風雅의 참멋을 그리려고 한 데에 있었던 것 같다.
그 속에는 詩가 있고, 음악이 있고, 인생의 旅愁마저 은은히 어리어 있어서 옛 서울 시민들이 누렸던 생생한 생활미의 한 토막이 이 한 폭 그림 속에 멋지게 기록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뱃머리에 사뿐히 걸터 앉아 笙簧을 불고 있는 여인의 얼굴에는 장난기 같은 표정은 전혀 없고 오히려 향수에 가까운 소슬한 분위기가 고요히 흐르고 있으며 遮日 아래 서서 퉁소를 불고 있는 총각의 얼굴에도 침착한 표정이 스며 있어서 지금 그들이 연주하고 있는 음률이 대강 어떠한 것인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주인공 사나이의 行色을 보면 풍신한 흰 중치막을 입고 큰 갓을 오른편으로 비껴 써서 멋을 부렸으며 검은 갑사 갓끈을 앞가슴에 가지런히 드리우고 있다. 음률에 도취한 것인지 초점을 잃은 듯싶은 시선으로 먼 곳을 바라보는 차분한 여인의 어깨에 한팔을 은근히 얹은 사나이가 여인에게 담배를 권하는 은근한 자세는 이 그림에서 보여 주려는 작가의 득의 만만한 솜씨가 아닌가 한다.
청치마에 자줏빛 반회장을 댄 연두색 저고리를 입고 오른손으로는 권하는 장죽을 가볍게 받아들면서 왼손으로는 치마폭을 걷어잡은 여인의 매무새는 아마 그 시절 기생들이 즐겨 보인 美態의 하나였던 듯, 사나이에게 포근히 감싸인 행복스러움이 이 여인의 자세 속에서 사뭇 실감나게 느껴진다고 할 수 있다. 생황을 불고 있는 여인은 흰 저고리 옥색치마, 퉁소를 부는 총각의 차림은 길쭉한 단저고리 바람에 원구바지를 입고 주머니와 매어 내린 허리띠를 길쭉이 드러워서 거기에 건들 멋을 강조하고 있다. 여인들의 머리 맵시도 언뜻 보면 모두 같은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모두 각기 개성이 드러나 있는 것 같다. 트레머리의 굴곡에도 제각기 다른 가락이 있어 보이고 또 흰 가리마의 맵시와 귀밑머리의 처리도 모두 제각기 다르게 솜씨를 즐겼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한폭의 그림에서 한층 한국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은 그 담박하면서도 통일된 색감의 세계라고 하고 싶다. 흰색 아니면 옥색, 옥색 아니면 짙은 하늘색과 그 속에 검은 자줏빛의 점점이 악센트를 이루고 있어서 이러한 색깔들의 담담하면서도 농담이 조화된 갓맑은 느낌에서 나는 한국의 마음을 바라보는 느낌이 될 때가 가끔 있다. 청청한 5월의 漢水 위에서 魏魏한 북한산 연봉을 멀리 바라보면서 그들은 그때 漢陽 좋을씨고를 정을 다해 읊었을 듯도 싶고, 또 분명히 한국 사람, 서울 시민의 즐거움과 자랑을 뱃전에서 마주 바라보며 되새겼을 것이 아닌가 한다.

* 이 글은 최순우, 『최순우전집 3』에서 발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