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나들이 - 최순우
글쓴이 : 학예실     첨부파일 :       날짜 : 07-04-05    조회 : 4368

수양버들이 연두색 새순을 뿜었다는 사실은 봄을 기다리는 사람이나 봄을 허전해하는 사람들에게는 예삿일일 수 없다. 양지 쪽에서 겨우 진달래ㆍ산수유 꽃망울이 수수러지는 무렵인데 예나 지금이나 젊은이들의 부푼 마음은 잔잔한 봄바람을 타고 담장을 넘어간다. 혜원은 이러한 첫 봄의 서정을 간절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아마 한 그루 수양버들에 봄 풍경의 초점을 둔 모양이고 또 한 쌍의 봄나들이 여인 앞에 나선 정한 옷차림의 젊은 승려를 등장시킨 듯 싶다. 연두색에 흰 끝동을 단 장옷을 쓰고 화사한 얼굴을 반쯤 드러내 보이는 앳된 여인이 시중드는 젊은 여인을 거느리고 오솔길로 접어드는 길목에서 젊은 중이 합장하고 절하면서 이들을 맞이하는 것은 아마도 이 여인들이 절나들이 길임을 암시하려고 한 것이 분명하다.
수행하는 여인의 차림을 보면 우선 왼팔에 큼직한 보따리를 끼고 미투리를 신었으며 장옷을 쓰지 않은 것으로써 그 신분을 밝히고 있는 셈인데 말하자면 장옷을 입은 여인이 지체가 높은 여인이라는 뜻이 아니라 두 사람 사이는 주종간이라는 뜻이 될 것이다. 외간 남자와 가정 부녀자 사이의 춘정을 다룬 혜원의 속화 속에서 가장 빈도가 많은 것은 부녀자들의 절나들이에서 암시되는 승려들과의 관계, 그렇지 않으면 산곡 사이에서 젊은 표모에게 무작정 덤벼들거나 또는 들놀이하는 여인들의 교태를 숨어서 엿보는 젊은 승도들을 다룬 장면이다. 이러한 사실은 과거 우리 사회의 남녀군상이 보여주는 생태의 이면상을 보인 것으로 자못 주의를 끌 만한 사실이다.

  


즉 높은 성(性)의 담장 속에 갇혀 살아야만 했던 과거의 청춘들이 어떻게 몸부림쳤던가, 그리고 그 답답하고 높은 담장을 어떻게 넘어야만 했던가 하는 생생한 여성생활사의 한토막으로서 불교사원의 테두리가 크게 클로즈업 된다고 할 만하다.
이 그림 속에서 승려의 차림을 보면 흰 장삼에 겹겹이 깨끗한 옷을 받쳐 입고 미투리를 신었으며 잘생긴 얼굴에 오뚝한 코, 그리고 그 눈길은 이 여인들의 아랫도리 흰 속곳을 훑어보고 있는 것이다. 만약에 방갓을 쓰지 않았더라면 그 까까머리가 흉물스러워 보였을지도 모르나 그 머리를 혜원은 잘생긴 방갓으로 감춰 주었고 또 그 능글맞은 시선도 방갓 속에 가려 주어서 모두가 너무 야비한 느낌을 받지 않도록 은근한 표현을 시도했음이 분명하다. 방금 돋아난 듯싶은 수양버들의 연초록 새순 아래 벌어진 이 일장의 그림은 어찌 보면 너울너울 춤추는 한낮의 호접몽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싱싱한 현실 같기도 해서 봄이 허전한 세대들에게는, 봄이 반가운 세대들보다 느끼는 감회가 한층 절실할는지도 모른다.
봄을 그리기란 쉽지만 생각해 보면 봄을 이렇게 마음속에 스미도록 표현하기란 예삿일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해묵은 수양버들, 노묵은 가지에서 드리워진 성긴 가지의 모양이 꽃처럼 활짝 핀 젊은이들의 얼굴과 좋은 대조가 될 뿐더러 봄이면 피어 날 이 새 생명의 약동을 품고 노묵은 수양버들 등걸이 견뎌 온 과거를 보여 주고자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또 그것을 볼 수 있는 듯싶기도 해서 문득 심심견춘초(心心見春草)라는 옛 문자를 기억해 낸다. 보는 이의 마음에 따라 봄 풀 한 가지도 이렇게 다르다는 것을 예전엔 미처 몰랐다는 뜻이 아닌지 모르겠다.

* 이 글은 최순우,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에서 발췌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