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속去俗 - 김용준
글쓴이 : 학예실     첨부파일 :       날짜 : 07-03-20    조회 : 4407

동양화의 교과서라고 할 만한 『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 가운데 「논화십팔칙論畵十八則」중에도 가장 중요한 대문에 이런 말이 적혀 있다.

筆墨間 寧有穉氣 毋有滯氣 寧有覇氣 滯則不生 市則多俗 俗尤不可浸染 去俗無他法
多讀書 則書卷之氣上升 市俗之氣下降矣 學者其愼旃哉
필묵 사이에는 치기가 있을지언정 꺽꺽한 기운이 있어선 안 되고, 패기가 있을지언정 시속기市俗氣가 있어선 안 된다. 꺽꺽하면 생동감이 없고, 시속기가 있으면 속되기 때문이다. 특히 속된 데 물들어선 안 된다. 속된 기운을 없애는 데 다른 방법이 없다. 독서를 많이 하면 되는데, 서권기書卷氣가 올라가면 시속기가 내려간다. 공부하는 사람은 이에 신중할진저!

  서화라는 것은 치졸한 맛이 있거나 혹은 패기가 가득차거나 할 것이요, 체삽滯澁하거나 시속기가 있어서는 못쓴다는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체삽한즉 생동하는 기운을 잃어버리기 쉬운 때문이요, 시기市氣가 있은 즉 속되기 쉬운 때문이니, 속되다는 것보다 더 천착舛錯스런 것은 없기 때문이다. 서화에서 제일 꺼리는 것이 이 속되다는 것인데, 그러면 속기를 없이 하는 방법은 무엇이냐, 독서를 많이 하여 현인군자의 기를 기르는밖에 도리가 없다 함이다. 
  추사의 「사란결寫蘭訣」에는 이러한 대문이 있다.

   인품이 고고특절高古特絶하여야 화품畵品도 높아지는 것인데, 세인이 공연히 형태만 같이하기에 애를 쓰거나 혹은 화법으로만 꾸려 가려고 애쓰는 이들이 있다. 또 비록 구천구백구십구 분까지 갔다고 난蘭이 되는 것이 아니요, 그 구천구백구십구 분까지 간 나머지 일분이 가장 중요한 난관이니, 이 난관을 돌파하고서야 비로소 난을 그린다 할 것이다. 그러나 일 분의 경지는 누구나 다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말하자면 인력人力으로 되는 경지가 아니요, 그렇다고 또 인력 이외의 것도 아니라 하였다.(인품의 고하高下가 결정한다는 말이다.)

  



  난 한 폭을 배우는 데 이렇게 괴팍스런 경지를 찾고, 그림 한 쪽을 배우는 데 이렇게 야단스런 교훈을 말하는 것이 동양예술의 특이한 점이다.
『개자원』에서 거속去俗을 말한 것이나 추사가 일 분의 경지를 말한 것이나 결국 마찬가지 종결로 돌아가겠는데, 이것을 쉽게 말하자면 품격의 문제라 하겠으니, 사람에게 품品이 있고 없는 사람이 있는 것과 같이 그림에도 화격이 높고 낮은 그림이 있다는 것이다. 복잡한 곳을 곧잘 묘사하였다고 격 높은 그림이 될 수 없는 것이요, 실물과 똑같이 그려졌다거나 혹은 수법이 훌륭하다거나 색채가 비상히 조화된다거나 구상이 웅대하다거나 필력이 장하다거나해서 화격이 높이 평가되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것들은 서화에 있어서 가장 표면적인 조건에 불과한 것이요, 이 밖에 아무리 단순하고 아무리 치졸하고 아무리 조잡하게 그린 그림일지라도 표면적인 모든 조건을 물리치고 어디인지 모르게 태양과 같이 강렬한 빛을 발산하는 작품들이 가끔 있으니, 이것이 소위 화격이란 것이다. 이 화격이란 것은 가장 정신적은 요소이기 때문에 문외인에게는 쉽사리 보여지는 것도 아니다.


  지상에는 흔히 난을 그리는 데 난잎을 방불하게 만드느라고 애를 쓰는 이들이 많으나, 그림이란 것이 결코 응물상형應物象形에서만 다 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서양의 논법이 동양의 논법과 다른 것은, 하나는 화법을 화법으로서 종시終始하는 데 그 특질이 있고, 하나는 화법을 화도畵道에까지 이끌어 가는 곳에 특질이 있는 것이다. 서법, 화법이 아니요, 화도요 서도인 것이다.
  추사가 그 괴팍스럽기 짝이 없고, 일견에 잡초인지 난인지 구별할 수 없는 운현雲峴의 난蘭을 천하의 일품이라 극구 칭찬한 것도, 운란雲蘭에서 그 무서운 빛을 감지한 까닭이라 하겠다.
  지상에는 그림이 많다. 글씨도 많다. 친구의 집엘 가 보든지, 요정엘 가보든지 혹은 거리거리 혹은 골목골목 어느 곳에서나 그림과 글씨가 눈에 띄지 않는 곳이 별로 없다.  
  그러나 그 허다한 서화를 천 장 만 장 주워 모은대야 그 중에 번쩍 빛나는 격높고 거속된 그림이 한두 점이나 있을 것인가.
  골동가가 도자기를 어루만지며 요새 사기들을 보고 탄식할 것과 마찬가지로, 나는 『개자원』을 뒤치다가 불과 오십 년 백 년을 격한 고인古人들의 훌륭한 작품들을 생각하면서, 요새는 서화가 무던히도 귀하구나 하는 생각이 난다.

* 이 글은 김용준, 『근원近園 김용준金瑢俊 전집 1, 새 근원수필』에서 발췌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