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가煙家 - 최순우
글쓴이 : 학예실     첨부파일 :       날짜 : 07-03-05    조회 : 4085

   ‘연가’라 하면 연기나는 집이란 뜻이 되겠지만 실상은 전통적인 한국 주택의 굴뚝 위에 얹어 놓은 부재의 일종을 일컫는 고유한 명사이다. 이 연가는 진흙으로 빚어 구워낸 사방 30cm 내외의 조그마한 기와집 모양의 도예품으로 벽돌로 높직하게 쌓아올린 네모 굴뚝 위에 한 개 또는 복수로 얹어 놓아서 굴뚝 연기가 그 네 벽에 뚫린 창모양의 구멍으로 은은하게 퍼져 나오게 마련이다. 말하자면 굴뚝에 씌우는 지붕 구실과 연기의 솟음을 고르게 하는 바람받이도 될뿐더러 그 생김새가 잘생겨서 굴뚝치레로는 매우 성공적인 부재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굴뚝 쌓기에 남달리 정성을 들이고 또 그 굴뚝이 후원의 조경에 매우 큰 구실을 하고 있는 전통은 한국 독자적인 양식으로, 말할 것도 없이 전통적인 한국 주택의 온돌방 구조에서 발생된 한국인의 창의였다.
    궁원은 물론이고 적어도 중류 이상의 조선시대 주택에는 반드시 남향받이 밝은 후원이 있게 마련이고 이 후원에는 으레 집 본채에서 썩 물러나서 세워진 벽돌 굴뚝이 훤칠하게 세워지게 마련이다. 이 벽돌은 양풍의 붉은 벽돌이 아니라 회색 벽돌이었고 이 벽돌을 맵시있게 쌓기 위하여 벽돌의 면과 네 측면을 모두 매끈하게 갈아서 썼으며 그 네모 굴뚝의 굵기와 높이의 비례가 매우 쾌적해서 마치 하나의 탑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하나의 정원 조각 같이도 보이게 마련이다.
    이 굴뚝은 하나 세워질 때도 있지만 주택 구조와 규모에 따라서 복수로 세워지기도 한다. 때로는 후원이 넓으면 층단으로 된 장대석 돈대 위에 멀찌기 세워져서 저녁 연기에 때 맞추어 석양의 시정을 자아내기도 한다. 세상에 민족도 많고 나라도 많지만 우리 한국 사람처럼 굴뚝치레에 세심하게 마음을 쓰고 또 큰 돈을 들이는 족속을 없을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굴뚝 기단은 으레 아백의 화강석을 곱게 다듬어 받쳤으며 사람의 시선 높이의 알맞은 부위에는 백회와 회색 벽돌, 때로는 주황색 벽돌로 길상문자나 장생류의 도안을 모자이크해서 굴뚝 하나가 그대로 작품으로 보일 때가 많다.
    이러한 조선의 굴뚝도 이제 양풍에 밀려서 서울 장안에서 하나하나 그 명작이 자취를 잃어가고 있다. 어쩌다가 뜯기는 집이 있어서 이전 복원을 꾀하는 분들이 있지만 그것은 거의 성공된 예가 드물다. 말하자면 조선인들은 그만큼 굴뚝 쌓기에 정성을 들였고 구석구석 소혹한 데가 없어서 요즘의 범장凡匠으로서는 그것을 복원하기에도 안목과 손재주가 모자라는 까닭이다. 굴뚝뿐만이 아니라 조선인들은 화초담 하나에도, 툇돌 한 토막의 죔새에도 자신의 지체를 가릴 것 없이 그 좋은 안목으로 손수 감역을 했던 것이다. 얼마 전 소전 손재형 씨 댁 후원에 쌓인 굴뚝들과 홍예문ㆍ화초담 등을 돌아보면서 오늘의 안목으로는 이분을 따를 분이 또 없다는 생각을 했었기에 언뜻 굴뚝 이야기를 써 둔다.

 

* 이 글은 최순우,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에서 발췌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