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秋史)글씨 - 김용준
글쓴이 : 학예실     첨부파일 :       날짜 : 07-02-22    조회 : 4733
 추사秋史 글씨


어느 날 밤에 대산袋山1)이 “깨끗한 그림이나 한 폭 걸었으면” 하기에 내 말이 “여보게, 그림보다 좋은 추사 글씨를 한 폭 구해 걸게” 했더니 대산은 눈에 불을 버쩍 켜더니 “추사 글씨는 싫여. 어느 사랑에 안 걸린 데 있나” 한다.
 과연 위대한 건 추사의 글씨다. 쌀이며 나무, 옷감 같은 생활필수품 값이 올라가면 소위 서화니 골동이니 하는 사치품 값은 여지없이 떨어지는 법인데, 요새같이 책사冊肆에까지 고객이 딱 끊어졌다는 세월에도 추사 글씨의 값만은 한없이 올라간다.
 추사 글씨는 확실히 그만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하필 추사의 글씨가 제가諸家의 법을 모아 따로이 한 경지를 갖추어서, 우는 듯 웃는 듯, 춤추는 듯 성낸 듯, 세찬 듯 부드러운 듯, 천변만화千變萬化의 조화가 숨어 있다는 걸 알아서 맛이 아니라, 시인의 방에 걸면 그의 시경詩境이 높아보이고, 화가의 방에 걸면 그가 고고한 화가 같고, 문학자, 철학가, 과학자 누구누구 할 것 없이 갖다 거는 대로 제법 그 방 주인이 그럴듯해 보인다. 그래서 그런지 상점에 걸면 그 상인이 청고한 선비 같은 뿐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상품들까지도 돈 안 받고 그저 줄 것들만 같아 보인다. 근년래에 일약 벼락부자가 된 사람들과 높은 자리를 차지한 분들 중에도 얼굴이 탁 틔고 점잖은 것을 보면 필시 그들의 사랑에는 추사의 진적眞跡이 구석구석에 호화로운 장배裝背2)로 붙어 있을 것이리라. 
 

 추사 글씨 이야기를 하다보니 재미난 사건 하나가 생각난다. 진陳 군은 추사글씨에 대한 감식안이 높을 뿐 아니라 일반 서화, 고동古董3)에는 대가로 자처하는 친구다. 그의 사랑에는 갖은 서화를 수없이 진열하고 “차라리 밥을 한 끼 굶었지 명서화名書畵를 안 보고 어찌 사느냐” 하는 친구다.
 양梁 군도 진 군에 못지않게 서화 애호의 벽癖이 대단한데다가 금상첨화로 손수 그림까지 그리는 화가인지라 내심으로는 항상 진 군의 감식안을 은근히 비웃고 있는 터이었다.
 벌써 오륙 년 전엔가 진 군의 거금을 던져 추사의 대련對聯4)을 한 벌 구해 놓고 장안 안에는 나만한 완당서阮堂書를 가진 사람이 없다고 늘 뽐내고 있었다. 그런데 양 군 말에 의하면 진 군이 가진 완서阮書는 위조라는 것이다. 이 위조란 말도 진 군을 면대할 때에는 결코 하는 것이 아니니, “진 형의 완서는 일품이지” 하고 격찬을 할지언정 위조란 말은 입 밖에도 꺼내지 않았다. 그러나 진陳이 그 소식을 못 들을 리 없다. 기실 진은 속으로는 무척 걱정을 했다. 자기가 가진 것이 위조라고  하긴 그럴지도 몰라. 어쩐지 먹 빛이 좋지 않고 옳을 가(可) 자의 건너 그은 획이 이상하더라니….
 감식안이 높은 진 군은 의심이 짙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후 이 글씨가 누구의 사랑에서 호사를 하고 있는지 몰랐는데, 최근에 들으니까 어떤 경로를 밟아 어떻게 간 것인지 모르나 진 군이 가졌던 추사 글씨는 위조라고 비웃던 양 군의 사랑에 버젓하게 걸려 있고, 진 군은 그 글씨를 도로 팔라고 매일같이 조르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추사 글씨는 아무튼 대단한 것인가 보다.
  

            [그림 1 김정희, 예서대련  書對聯, 조선 19세기, 호암미술관] 

* 이 글은 김용준, 『근원近園 김용준金瑢俊 전집 1, 새 근원수필』에서 발췌하였습니다.



1) 대산은 소설 『임꺽정』의 저자 홍명희洪命憙의 아들인 홍기문(洪起文, 1903~1992)의 호이다. 국어학자인 그는 1947년 월북하여 1969년 사회과학원장을 지낸 바 있다.
2) 그림이나 서예 작품을 배접하여 꾸미는 것.
3) 골동骨董
4) 문이나 기둥 같은 곳에 써 붙이는 대구對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