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암 이재의 초상 - 최순우
글쓴이 : 학예실     첨부파일 :       날짜 : 07-01-22    조회 : 4553
  


분수와 염치를 가려서 세상을 깨끗하게 살아온 뼈대 있는 선비의 지성과 그 인간상이 도암의 초상화 한 폭 속에 살아서 넘쳐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한국 사람의 얼굴 치고는 눈과 코의 윤곽이 매우 뚜렷하고도 입체적이어서 이 초상화의 필 자는 작품 효과를 올린 것인지는 모르지만 깊은 주름살에 새겨진 어질고도 굳건한 양식의 그림자와 형형하게 빛나는 맑고 큰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으면 과연 전신傳神의 묘를 다한 명작이라는 생각을 금할 수가 없다. 검은 유건과 아백의 포의가 보여 주는 소담 간결한 색감이라든가 반백을 넘어선 눈썹과 수염의 기품있는 정세한 표현에서 우리는 절도있는 한국 선비의 아름다움과 한국의 마음을 어루만지듯 더듬어 볼 수 있는 것이 기쁘다. 털오라기 하나도 놓칠세라 정성을 기울인 얼굴의 표현에 비하면, 몸체의 의복 주름은 너그럽고도 충신해 보이고, 또 목 언저리와 얼굴 사이는 흰 바탕으로 마치 산곡간에 피어나는 안개처럼 공간을 감싸서 정기 있는 안색을 한층 또렷이 한 조형효과는 주목할 만 하다.

  도암 이재 선생은 조선 숙종 6년(1680)에 나서 영조 20년(1746)에 돌아간 분으로 강화유수ㆍ함경도 관찰사ㆍ도승지ㆍ대사헌ㆍ홍문관 대제학ㆍ예문관 대제학ㆍ좌우 참찬 등 현직을 역임한 분이었지만, 언제나 거처를 분명히 했고 마지못해 관록을 받았으며 허세와 권도를 미워하며 맑고 밝게 세상을 걸어간 분이었다.

  이 초상화에서 우리가 다만 그림에서 느끼는 조형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형언할 수 없는 맑고 높은 인격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되는 것은 오로지 이것이 어느 화가의 필력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도암의 결곡한 인품에서 오는 형체 없는 힘이 크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말하자면 이 그림의 아름다움의 일면은 조선 초상화의 아름다움인 동시에 다른 일면은 한국인이 지닌 지조의 아름다움을 곁들여 보인 것이라고 해야겠다.


* 이 글은  최순우,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에서 발췌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