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 예용해
글쓴이 : 학예실     첨부파일 :       날짜 : 07-01-06    조회 : 4387
  

북은 나무로 된 둥근 울림통에 가죽을 메워서 두들겨 소리를 내는 악기이다. 이 나라에는, 부여 사람들이 섣달에 무리를 지어서 노래하고 춤추며 하늘에 제사 지내던 일을 두고 북을 맞이한다는 뜻의 한자인 ‘영고’라 일렀음에서 알 수 있듯이 이미 2천 몇백 년 전에 북이 있었다. 이렇듯이 옛날 글에 보이는 북의 비롯이 부여 때라고는 하나, 그렇다고 반드시 북이 부여 시대에 처음으로 만들어졌다거나 또 부여 사람들의 전유물이었다고는 생각할 수가 없는 것이 북이 세계 구석구석에 분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비록 기록에는 없다고 해도 나무 울림통이나 또는 짐승의 가죽을 팽팽히 해서 두드리면 크게 소리가 난다는 소박한 이치를 사람들이 눈치채게 된 것은 원시 수렵시대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그렇게 소리가 크게 울릴 수 있는 나무 울림통이나 짐승 가죽을 따로따로 쓰면서 세월이 지나다가 어느 시대에 살았던 천재 하나가 나무 울림통에 가죽을 메워서 더욱더 우람한 소리로 울리는 북을 만들기에 이르렀거나, 그렇지 않으면 오랫동안 경험을 쌓은 끝에 많은 지혜들을 모아 마침내 북을 만들게 되었겠다.

  그러나 한마디로 북이라 하여도 그것이 오랜 시대를 거치는 동안에 울림통에 가죽을 메워 치는 원칙은 같이할망정 크기와 꾸밈새와 쓰임새가 다르고 그에 따라서 이름도 다른 갖가지 북이 나왔다. 이를테면 우리 민속악에 쓰이는 북으로는 소리북, 법고, 매구북, 소고, 승무북이 있고 정악 곧 아악에 쓰이는 북으로는 좌고, 용고, 교방고,  절고, 진고, 건고, 삭고, 응고, 뇌고, 영고, 노고 들이 있으며 민속음악과 정악에 두루 쓰이는 것에 장구가 있다.

  이들 북 가운데서도 가장 덩치가 큰 북이 절에서 쓰는 법고이다. 북판이 한 길이 넘어 소 한 마리의 가죽이 통째 쓰이는 것이 일을 만큼 커서 들보에 매어달거나 아니면 받침 위에 얹어놓고 친다. 절에서 때에 따라 치는 기물에는 북 곧 법고 말고도 범종과 목어, 운판이 있어서 이를 사물이라고 한다. 법고가 가장 큰 북이라면 작은 것은 승악에 쓰이는 매구북이나 승무에 쓰이는 춤북일 것이며, 일상생활을 통해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 장구와 판소리, 고사소리, 독경소리를 할 때에 장단을 맞추는 데에 쓰는 소리북-고장북이라고도 한다-일 것이다.

  소리북은 지름이 한 자 두 치에 북통의 길이가 여덟 치쯤 되는 크기가 중간치인 북으로서 독경이나 고사소리의 장단을 맞추는 데에 쓰이기도 하지만, 판소리 할 적에는 첫째 북잽이, 둘째 소리광대라 일컬어질 만큼 무거운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이와 같은 소리북의 몸을 이루는 울림통 곧 통은 옹이가 없고 뒤틀리지 않게 자란 육송의 밑둥을 켜서 만든다. 통이 되는 육송의 밑둥은 옹이가 없는 무절이어야 하고 그것을 응달에서 몇 해씩 말려 제물에 진이 빠지고 결이 삭아야 쓰기가 좋고 북을 만든 다음에도 트집이 생기지 않는다. 더러는 오동나무나 피나무를 쓰기도 하나 북소리의 울림이 육송 같지 못하다. 북통에는 통나무의 가운데를 파서 통째 쓰는 통통과 나무쪽을 둥글게 이어서 만드는 쪽통의 두 종류가 있다.

  다음으로 북을 메울 가죽판을 마련해야 하는데 북 가죽으로는 서너살박이 황소의 목덜미 가죽을 으뜸으로 친다. 엉덩이 가죽은 질기기는 하나 소리가 딱딱하고 겨드랑이나 배의 가죽은 소리가 부드럽고 고음이 나나 약하다. 그러나 목덜미 가죽은 두꺼워서 저음이 나고 질기다. 가죽은 이른 봄, 풀이 뜯기 전에 잡은 소의 것이라야 한다. 풀을 먹기 시작하면 가죽이 얇아져서 쓸모가 적어진다. 그밖에 침구멍이 있거나 상처자국이 있어도 쓸 수가 없게 된다. 따라서 북에 쓰일 가죽은 소를 잡을 때부터 가려야 하며 날가죽을 얻으면 곧 무두질을 해야한다.

  무두질이란 날가죽을 다스리는 공정을 말하는 낱말로써 오늘날에는 거의 죽은 우리 토박이 말 중의 하나이다. 무두질을 하려면 먼저 생석회와 고운 쌀겨를 우려낸 물을 오지나 옹기로 된 통에 담고 거기 날가죽을 담가서 흐믈흐믈해지도록 이레나 여드레 동안쯤 삭힌다. 삭히는 사이에도 그냥 두는 것이 아니라 하루에 서너 차례씩 뒤척여서 횟물이 날가죽에 골고루 배이게 한다. 횟물에 다 전 날가죽은 건져내어 둥근 나무토막을 반으로 갈라 한쪽 귀에 한 자 남짓한 굽을 단 까랫목에 털이 있는 거죽을 겉으로 하여 걸쳐놓고 깎기칼로 아래위를 고르게 훑어나간다. 깎기칼의 날은 무디어서 가죽이 상하지 않게 되어 있으며 또 까랫목과 이가 맞도록 구부정하여 슬슬 문질러도 털이 뽑혀 나간다. 털이 깨끗이 뽑혔나를 살피면서 맑은 물에 몇 번이고 행궈서 이번에는 바닥이 편편한 까래 목판에 젖은 가죽을 엎어서 펴놓고 안에 붙은 군살이며 기름기를 대패로 깎아낸다. 그때에 쓰는 대패는 나무를 까까는 대패와는 달리 날이 옆으로 길고 성근 톱날로 되어 있다.

  이 공정이 끝나면 이번에는 가죽을 닭똥 우린 물에 한 이틀 담가둔다. 그러면 지금까지  횟물과 기름찌꺼기로 터덩터덩했던 날가죽이 야들야들하게 부드러워진다. 부드러워진 가죽을 맑은 물이 담긴 통에 넣어서 꼭꼭 발로 밟으며 여러 번 행궈내게 되는데, 그때에 날가죽이 머금고 있던 기름기를 완전히 배면 북가죽으로는 쓸 수가 없으므로 절반은 남겨야 한다.

  다음으로는 평상과 꾸밈새가 비슷한 사방이 한 발이 넘는 쟁반에 가죽집게인 자고리로 가죽을 물어 팽팽히 당겨서 가죽 네 귀에 못을 박고 그 사이 팔방으로, 또 그 사이마다 십육방으로 못질을 해서 사나흘 동안 응달에서 말려 꾸들꾸들해지면 접어두었다가 쓴다. 이와 같이 북통과 북가죽이 마련되면 북통에 가죽을 씌운다. 이 공정을 ‘피 씌운다’고 일컬으며 여기에 쓰이는 가죽은 북판가죽보다 얇은 것이 상례이다. 피를 씌우기 전에 먼저 창호지를 부하고 피를 씌우지 않고 창호지만 서너 겹 부하기도 하고 그 위에 삼베를 입혀서 마무리짓는 경우도 있다. 아무튼 북통에 씌우는 가죽이나 부하는 종이나 바르는 삼베의 두께에 따라 북의 울림이 달라지므로 그것을 제대로 마무리짓는 일에는 오랜 경험과 숙련이 필요하다.

  피를 씌우고 이틀즘 뒤에 가죽이 꾸덕꾸덕 마르면 고리를 단다. 치가 겹친 부분에 송곳으로 구멍을 뚫고 과판을 받친 위에 고리가 달린 배목을 박아 북통 안에서 마무려서 고정시킨다. 북고리는 대장간에 치여서 쓰는데 대체로 띠살문고리와 같은 시우쇠로 만든다. 소리북 가운데서 조선시대 말엽에 만든 것에는 고리를 백통으로 호사스럽게 만들어 단 것도 있다. 요즘에 이른바 스텐으로 만들기도 하나 번들거려서 천덕스러운 느낌을 준다.

  위의 공정이 끝난 다음에야 북메우기를 한다. 무두질을 하여 접어둔 가죽을 하루쯤 물에 불렸다가 방바닥에 펴놓고 동그랗게 오려서 그것을 북통에 올려놓고 테를 끼워서 가죽이 움직이지 않게 하고는, 그 위에 올라서서 두 발로 굴리며 가죽이 늘어나게 한다. 얼마만큼 늘어난 다음에는 처음에는 못 네 개를 열 십 자(十)로 박고 다음으로 그 사이에 여덟 개, 다음으로는 열 여섯 개, 마지막으로는 한 지 사이로 못을 박되 뒤에 빼기 쉽게 반만 박고 거기에 노끈을 동여서 가죽이 울거나 들고 일어나는 트집을 부리지 않게 잡도리를 해둔다.

  노끈으로 동여맨 채로 가죽이 다글다글 말랐을 때에 노끈을 풀고 서두칼로 조심스레 둘쭉날쭉한 가죽의 허드레 부분을 오려내고 광두정을 박고 먼저 박은 못을 뺀다. 이렇게 하여 북이 되면 제대로 나게 하려고 소리잡기를 한다. 북채는 박달나무를 깎아 앞뒤가 없이 모를 죽여서 만들고 고장북이나 줄북이 아닌 다른 북은 칠이나 단청을 하여 마무린다.

  이와 같이 하여 북을 제대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이제 나라 안에서 한 사람밖에 남지 않았다.

* 이 글은 예용해 전집2『민중의 유산』에서 발췌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