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로 - 예용해
글쓴이 : 학예실     첨부파일 :       날짜 : 06-12-21    조회 : 7948
향로는 향을 피우는 그릇이다. 향로에 향을 피우는 일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밝혀지지 못하고 있으나, 향로의 유물로는 1916년에 평안남도 대동군의 낙랑시대 고분에서 출토된 청동으로 만들어진 박산로가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고, 기록으로 남겨진 것으로는 『삼국유사』에 “묵호자가 향을 살라 왕녀의 병을 고쳤다”는 대목이나 『삼국사기』에서 “미녀 김정란의 몸에서 향내가 풍기고 있었다”는 것 따위가 있다.

  이와 같이 출토 유물이나 역사책의 기록으로 미루어보아도 우리가 퍽 오랜 옛날부터 향을 피웠다는 사실을 넉넉히 짐작할 수가 있고, 또 통일신라시대나 고려시대 석탑 속의 사리 장치나 불상의 복장 속에서 흔히 향이 나오는 것으로 미루어보아도 향이 이땅에 널리 퍼졌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옛날부터 향이 널리 피워졌던 까닭은 무엇보다도 그 내음이 아름다운 데에 있었는데, 그러다보니 어느덧 거기에 뜻이 깃들게 되어서 하늘이나 땅을 받드는 제사에나 부처님이나 공자님을 우러르는 의식에 없어서는 안될 물건이 되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사邪된 귀신이나 온갖 나쁜 재앙을 가져오는 잡귀를 몰아내고 복을 주는 착한 잡신을 맞아오는 힘이 있는 것으로까지 믿게 되었다. 또 향이 스스로의 몸을 태우면서 풍기는 아름다운 향내 때문에 세상살이에서도 긴한 구실을 하였다. 곧, 조정에서 정사를 의논할 때나 선비가 호젓이 마음을 가다듬고 글을 읽거나 골똘히 생각에 잠길 때나 반가운 벗이 멀리서 찾아왔을 때 무엇보다도 먼저 향을 피웠다.
 향을 오래 피우려면 향로에 뭉긋한 불기가 오래 간직되어야 한다. 활활 타오르는 꽃불에서는 향이 둘레에 제대로 내음을 풍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향로는 향을 완전연소시키기보다는 불완전연소시키기 위해서 마련되었다고 할 수가 있겠다. 받침이나 굽을 갖춘 것은 그 위에 향로의 몸에 불이 간직되었으니 놓인 자리가 눋지 않게 하려 함이겠고, 몸에 손잡이가 있는 것은 뜨거운 것을 쉽게 들어 옮길 수 있게 하려 함이겠으며, 뚜껑을 닫고 거기에 구멍을 뚫은 것은 향내음을 넓게 고루 번지게 하려 함이겠다. 곧 향로의 꾸밈새는 쓰임새가 결정지은 것인데, 그러다보니 받침이나 굽이 없을 수도 있고 또 손잡이나 뚜껑이 따르지 않을 수도 있으나 대체로 받침과 굽, 그리고 몸과 손잡이와 뚜껑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향로는 시대에 따라 생김새를 달리했고 놓일 자리를 좇아 크기를 달리했으며 형편에 따라 소재를 달리했다. 이를테면 낙랑이나 고구려 무덤에서 출토된 향로는 중국에 있는 박산이라는 산의 모양을 만들어졌고, 신라 것은 뚜껑이 없이 자루가 길게 달린 초두가 많고, 고려 것은 바라꼴로 생기고 뚜껑이 없는 향완이 많고, 조선시대 것은 굽과 몸과 손잡이와 뚜껑을 두루 갖춘 것이 대부분이다.
 향로의 소재만 해도 신라 이전까지는 청동과 토기가, 고려 때는 오동이, 조선시대에는 놋쇠가 주종을 이루었으나 이밖에도 은, 구리, 무쇠, 백통 따위의 금속류와 옥, 곱돌, 감섬석과 같은 옥석류며 사기, 오지 따위의 도자기류에 나무, 노엮개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가 쓰였다. 향로는 소재 뿐만이 아니라 크기도 다양하다. 궁궐의 본전 앞뜰에 놓인 향로는 아름이 엄고, 절의 대웅전부터 앞에 놓인 향로는 여느 여염집에서 제사를 지낼 때에 향상에 올리는 향로의 몇 갑절이 되며, 선비들이 향을 즐길 때에 쓰는 완향용 향로는 손에 잡힐 정도이고, 또 스님이 호신불에게 향공양을 올릴 때에 쓰는 행로는 아이들의 노리개 크기를 넘지 못한다.
 향로의 생김새나 소재 또는 크기가 다양한 것은 향의 종류가 많은 것과도 상관이 있다고 보는 것이 옳겠다. 향에는 여러 종류가 있으나 향로에 피우는 훈향만을 놓고 볼 적에 빻아서 가루로 만든 말향이 있고, 빻은 가루를 환으로 빚은 환향이 있는가 하면 국수가락처럼 가락으로 늘인 선향 따위가 있는데, 선향 하나만 보아도 굵기와 길이가 저마다 다르다.  향을 만든 향료만 해도 식물성, 동물성, 광물성 따위의 많은 종류가 있는데, 조선시대 말기의 선비 서유구가 쓴 『임원십육지』에 보이는 것을 옮기면 용뇌향, 사향, 안식향, 정향, 유향, 갑향, 엄팔향, 기남향, 작두향, 용연향, 강진향, 백교향, 초목향 따위가 있다.
 위의 여러 향료 가운데서도 사향은 강원도 고산 지대의 사향노루 배꼽의 진에 고산식물의 꽃가루가 묻어서 엉긴 것을 따서 말린 것으로서 그 값은 금보다도 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가난한 선비들이 향내를 즐기고자 할 때는 늙은 잣나무의 뿌리와 가지와 잎새 및 열매를 곱게 빻아서 단풍나무 진으로 반죽을 하여 환을 지어서 썼으며, 그것이 번거로우면 향나무 가지를 꺾어서 그늘에 오래도록 말렸다가 그것을 패도로 곱게 저며서 향로에 사르기도 하였다.
 사당이나 부처님 앞에 향상을 놓고 향상 위에 왼쪽으로
  
향로를, 바른쪽으로 향합을 얹고 경건하게 두 번 절을 하거나 세 번 합장배례를 하고 향로에서 향연이 그윽히 피어오르는 것을 보며 깊은 사념에 잠겨 삼매의 경지에 드는 모습이나, 솔바람소리와 물소리를 함께 듣는 산정에서 뜰 앞 푸른 이끼를 밟고 찾아든 벗을 맞아 향을 피우고 따끈한 한 모금의 차를 권하는 정경은 생각만 해도 흐뭇한 것이다.

 조선시대 말기까지만 해도 조정의 기구 가운데 향을 갈무리하는 행실이 있었고, 또 공조 아래에는 경공장으로 향장이 있어서 나라에 쓰이는 향을 짓는 전문적인 기구와 장인을 갖추고 있었을 정도로 향은 중요한 구실을 했고 또 긴하게 쓰였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기껏 불전에서나 제사를 지낼 때에 향을 쓸 뿐이지 생활 속에서는 거의 아랑곳하는 사람이 드물다. 다만 부녀자들은 향수를 즐겨 쓰고 있어서 이른바 파티장 같은 데에서는 향수 내음이 물씬할 때가 많다. 그 내음은 때때로 이웃에 두통이나 구토를 일으키게 할 지경인데도 그것만 좋아라 하고 향로에서 피어나는 훈향에는 무관심한 까닭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정작 이웃 나라들에서는 혼자만의 즐거움을 위해서 또는 찾아드는 손님을 환대하기 위해서 코언저리에 닿을까말까 하게 은은한 향을 피워두는 멋을 간직하고 있는데 우리는 그와 같은 습속을 저버린 지 오래다.
  이와 같은 생각을 하며 아득히 삼국시대 이래로 이땅에 전해진 향로들을 바라보노라면, 비록 향을 피운다는 지극히 단순한 구실을 감당하기 위해서 마련되기는 했지만 그 조형에서 그 시대의 정치와 경제와 문화 그리고 인심까지도 한꺼번에 읽을 수 있을 듯 하다.
 쟁반 같은 청동접시 가운데에 한 마리 거북이 마치 천지의 한복판을 차지하듯이 도사리고 앉았고, 그 등 의에 봉이 두 나래를 힘차게 펴고 죽지를 하늘 끝으로 뻗었는데, 머리에는 산봉우리가 중첩한 박산을 이고 힘차게 버티어서 조금의 요동이 없는 고구려의 박산로에서는 세찬 북방민의 늠름한 기상을 한 눈에 볼 수가 있다. 고려의 오동은입사향완
  
도 그 몸에 고려의 시대상과 인심을 간직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굽 둘레에 검은 오동 바탕에 화사한 은사로 연꽃을 깔고, 몸에는 구름 사이에 용이 꿈틀대고, 그 사이사이 영락이 드리워지고 범자나 완자무늬가 새겨져서 너나없이 부처님 자비의 품속으로 들려 했던 그때의 풍조를 역력히 읽을 수가 있다. 다만 오동입사향완에서 뿐만 아니라 청자의 여러 물형 향로의 가냘프고 우아하고 세련된 아름다움 속에서도 고려의 모습은 완연하다. 그러다가 조선시대의 향로에 이르면 이는 어김없이 단아하고 간정하고 질박한 선비의 모습이다. 쓸데없는 군더더기 장식이 말끔히 사라지고 날렵하면서도 힘차고 다부져서, 이렇다 할 꾸밈새가 없는 것이 되려 꾸밈새로 여겨질 만큼 아름답다. 세 발은 힘차게 땅에 뿌리를 내리고, 몸은 배가 불러 만삭된 임부의 배가 무색할 정도인데 두 손잡이는 하늘을 떠받들 듯하고, 거기 뚜껑으로 닾인 투각에는 주역의 팔괘나 별자리가 알맞게 자리를 차지하여서 힘찬 조형의 숨구멍도 되고 향연을 골고루 번지ㄱㅔ 하는 구실도 감당하고 있다.

 그러나 막상 오늘날에는 의식을 치를 때가 아니고서는 향을 피우는 일이 없고 따라서 향로의 수요도 보잘 것이 없어져서, 후세에 이것이 오늘날을 특정짓는 향로요 하고 내세움직한 것이 없다.
 깊어가는 겨울밤에 향상 위에 향로와 향합을 가지런히 놓고 거기 재 속에 간직된 불에 좋은 향을 사르는 한 순간을 연상해본다. 며칠에 한 번씩만이라도 이런 시간을 누릴 수 있게 된다면, 또 이와 같은 생각이 공감을 얻어서 향과 향로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질 수 있다면 나날의 숨가쁨이 청아하게 누그러질 수도 있을 듯하다.

* 이 글은, 예용해 전집 2 『민중의 유산』에서 발췌하였습니다.


** [그림 1] 직지사 철제은입사 향로
    [그림 2] 청동은입사향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