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 <세한도> 3
글쓴이 : 학예실     첨부파일 :       날짜 : 06-10-04    조회 : 4372
(2에서 계속)


  이상적은 추사보다 18세 연하의 중인中人이었다. 김정희는 다가오는 새 시대를 예감하고 일찍부터 계급의 장벽을 넘어 재능 위주로 제자를 길러냈으니 그 문하에는 진보적 양반 자제는 물론 중인과 서얼 출신의 영민한 자제들이 끊이지 않았다. 이상적은 중국어 역관譯官으로 12번이나 중국을 드나들었는데, 스승이 닦아놓은 연분을 따라 중국의 저명한 문사들과 깊이 교유하였다. 그는 특히 시로 크게 명성을 얻어 1847년에는 시문집을 중국에서 간행하기도 하였다. 그의 문집 『은송당집恩誦堂集』이란 제목은 ‘헌종 임금께서 직접 그의 시를 읊어주신 은혜가 있었다’ 는 뜻을 담고 있다. 스승에게 보인 기특한 행실이 음덕이 되었던지 이상적은 벼슬길 역시 순탄하고 높았다. 그리하여 1862년에는 임금의 특명으로 종신토록 지중추부사知中樞府使를 제수받았다.
  이상적은 스승의 <세한도>를 받아보고 곧 다음과 같은 답장을 올렸다.


  <세한도> 한 폭을 엎드려 읽으매 눈물이 저절로 흘러내리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어찌 그다지도 제 분수에 넘치는 칭찬을 하셨으며, 그 감개 또한 그토록 진실하고 절실하셨습니까  아! 제가 어떤 사람이기에 권세와 이득을 따르지 않고 도도히 흐르는 세파 속에서 초연히 빠져 나올 수 있겠습니까  다만 구구한 작은 마음에 스스로 하지 않을래야 아니할 수 없었을 따름입니다. 하물며 이러한 서책은, 비유컨대 몸을 깨끗이 지니는 선비와 같습니다. 결국 어지러운 권세와는 걸맞지 않는 까닭에 저절로 맑고 시원한 곳을 찾아 돌아간 것뿐입니다. 어찌 다른 뜻이 있겠습니까 


  이번 사행使行길에 이 그림을 가지고 연경燕京에 들어가 표구를 해서 옛 지기知己분들께 두루 보이고 시문詩文을 청하고자 합니다. 다만 두려운 것은 이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제가 참으로 속세를 벗어나고 세상의 권세와 이득을 초월한 것처럼 여기는 것이니 어찌 부끄럽지 않겠습니까  참으로 과당하신 말씀입니다.


  이상적은 편지의 글대로 이듬해 10월 동지사冬至使의 역관이 되어 북경에 갔다. 그리고 그 다음해 정초에 청나라의 문인 16인과 같이한 자리에서 스승이 자신에게 보내준 작품을 내보였다. 그들은 <세한도>, 그 작품의 고고한 품격에 취하고, 김정희와 이상적 두 사제간의 아름다운 인연에 마음 깊이 감격하였다. 그리하여 두 사람을 기리는 송시頌詩와 찬문贊文을 다투어 썼다. 이상적은 이것으로 모아 10미터에 달하는 두루마리로 엮어, 귀국하는 길로 곧바로 유배지의 스승에게 보내 뵈었다. 1년이 지나 다시 <세한도>를 대한 추사의 휑한 가슴에 저 많은 중국 명사들의 글귀가 얼마만큼 큰 위안으로 다가섰을지는 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을 듯하다.

  이상적은 나중에 스승 김정희의 부음을 듣고 지은 시 가운데서 이렇게 읊었다.

  평생에 나를 알아준 건 수묵화였네
  흰 꽃심의 난꽃과 추운 시절의 소나무
  知己平生存水墨 素心蘭又歲寒松

  스승 김정희가 그려준 <세한도>와 <묵란도墨蘭圖> 두폭은 이상적의 평생이 가치 있는 것이었음을 대변해 줄 정도로 소중했던 것이다.
  <세한도>는 그려진 연유에도 곡절이 있었거니와 그려진 이후에 천하를 유랑한 행로 또한 만만치 않았다. 애초 제주도에서 그려져 이상적에게 보내졌다가 연경까지 다녀왔던 이 작품은 다시 스승에게 보인 후에 물론 이상적의 소장이 되었다. 그러다 이상적의 제자 김병선金秉善이란 이의 소장품이 된 것을, 그의 아들 김준학金準學이 물려받아 2대에 걸쳐 소중하게 보관하였다. 그런데 일제 강점기에 이르러 추사 김정희의 연구자였던 경성대학 교수 후지즈카 린(藤塚隣)의 손에 넘어가게 되었고 급기야 광복 직전인 1943년 10월 현해탄을 건너고 말았다.
  그러나 종전終戰직전에 서화가 소전素筌 손재형孫在馨 선생이 일본 도쿄로 후지즈카를 찾아가 비 오듯 퍼붓는 폭격기의 공습 위험을 무릅쓰고 석달 동안이나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가까스로 양도받아 다시 조국 땅을 밟게 되었다. 당시 후지즈카가 소장했던 김정희에 관한 그 밖의 수많은 자료들은 결국 미군의 폭격을 피하지 못하여 대다수가 타버리고 말았다고 하니, <세한도>는 그야말로 구사일생으로 간신히 화를 피한 셈이다. 그래서 작품 말미에 이러한 전말을 기록했던 오세창吳世昌선생은 <세한도>를 다시 보게 된 감회를 비유하여 말하기를 “마치 황천에 갔던 친구를 다시 일으켜 악수하는 심정이라譬如起黃泉之親朋 而握手焉” 하였다.

* 이 글은 오주석의 [옛그림 읽기의 즐거움] 1권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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