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 <세한도> 2
글쓴이 : 학예실     첨부파일 :       날짜 : 06-09-20    조회 : 5009
  
 


  <세한도>에는 염량세태의 모질고 차가움이 있다. 쓸쓸한 화면엔 여백이 많아 겨울바람이 휩쓸고 지나간 듯한데 보이는 것이라고는 허름한 집 한 채와 나무 네 그루뿐이다. 옛적 추사 문전에 버글거렸을 뭇사람들의 모습은커녕 인적마저 찾을 수 없다. 화제畵題를 보면 ‘세한도歲寒圖 우선시상藕船是賞 완당阮堂’이라고 적혀있다. ‘추운 시절의 그림일세, 우선이! 이것을 보게, 완당’이란 뜻이다. 화제 글씨는 기품이 있으면서도 어딘가 정성이 스며 있는 듯한 예서 書로 화면 위쪽에 바짝 붙어 있다. 그래서 화면의 여백은 더욱 휑해보인다. 이러한 텅 빈 느낌은 바로 절해고도絶海孤島원악지遠惡地에서 늙은 몸으로 홀로 버려진 김정희가 나날이 맞닥뜨려야만 했던 씁쓸한 감정 그것이었을 것이다. 까슬까슬한 마른 붓으로 쓸 듯이 그려낸 마당의 흙 모양새는 채 녹지 않은 흰 눈인 양 서글프기까지 하다. 
 그러나 <세한도>에는 꿋꿋이 역경을 견뎌내는 선비의 올곧고 견정堅定한 의지가 있다. 저 허름한 집을 찬찬히 뜯어보라! 메마른 붓으로 반듯하게 이끌어간 묵선墨線은 조금도 허둥댐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너무나 차분하고 단정하다고 할 정도다. 초라함이 어디에 있는가  자기 연민이 어디에 있는가  보이지 않는 집주인 완당 김정희, 그 사람을 상징하는 허름한 집은 외양은 조촐할지언정 속내는 이처럼 도도하다. 남들이 보건 안 보건, 미워하건 배척하건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이 집에서 스스로가 지켜 나아갈 길을 묵묵히 걷고 있던 것이다. 고금천지에 일찍이 유례가 없는 저 강철 같은 추사체秋史體의 산실産室이 바로 이곳이 아니었던가. 유배지의 추사는 왼편의 화발 글씨가 그러한 것처럼 엄정하고도 칼칼하게 자기 자신을 지켜 나가고 있었다. 
  <세한도>에는 또한 영락한 옛 스승을 생각해주는 제자의 따뜻하고 고마운 마음이 있다. 집 앞에 우뚝 선 아름드리 늙은 소나무를 보라!  
  
 
그 뿌리는 대지에 굳게 박혀 있고, 한 줄기는 하늘로 솟았는데 또 한 줄기가 가로로 길게 뻗어 차양처럼 집을 감싸안았다. 그 옆의 곧고 젊은 나무를 보라! 이것이 없었다면 저 허름한 집은 그대로 무너져버리지 않았겠는가  윤곽만 겨우 지닌 초라한 집을 지탱해주는 것은 바로 저 변함없이 푸른 소나무인 것이다. 멀리서나마 해마다 잊지 않고 정성을 보내주는 제자 이상적李尙迪인 것이다. 그 고마움이 추사의 마음에 얼마나 깊이 사무쳤던지 유독 이 나무들의 필선筆線은 더욱 힘차고 곳곳에 뭉친 초묵焦墨이 짙고 강렬한 빛깔로 멍울져 있다. 그 마른 붓질渴筆이 지극히 건조하면서도 동시에 생명의 윤택함을 시사하고 있음은 참으로 감격적이다.
  집 왼편 약간 떨어진 곳에 선 두 그루 잣나무는 줄기가 곧고 가지들도 하나같이 위쪽으로 팔을 쳐들고 있다. 이 나무들의 수직적인 상승감은  
  
그 이파리까지 모두 짧은 수직선 형태를 하고 있어서 더욱 강조된다. 김정희는 이 나무들에서 희망을 보았는지도 모른다. 앞서 보았듯이 <세한도>에는 절해고도 황량한 유배지의 고독과, 이를 이겨내면서 자신이 할 수 있고 해야하는 것에 매진하는 추사의 의지와, 변치 않는 옛 제자의 고마운 정이 있었다. 그리하여 여기서 추사는 이제 기대할 수 없는 앞날의 희망까지도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세한도>란 결국 석 자 종이 위에 몇 번의 마른 붓질이 지나간 흔적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거기에는 세상의 매운 인정과 그로 인한 씁쓸함, 고독, 선비의 굳센 의지, 옛사람의 고마운 정, 그리고 끝으로 허망한 바람에 이르기까지 필설筆舌로 다하기 어려운 많은 것들이 담겨져 있다. <세한도>를 문인화文人畵의 정수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한도> 오른편 아래 구석에는 주문방인朱文方印 유인遊印이 한 과顆찍혀 있다.
  
그 인문印文은 ‘장무상망長毋相忘’이다.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기를!’ 이 얼마나 아름답고도 가슴에 맺히는 말인가  ‘장무상망’이란 글귀는 2천 년 전 중국 한대漢代의 막새기와에 보이는 명문(銘文)이다. 추사 김정희가 금석학金石學의 대가인 것은 너무나 유명한 사실이지만, 제자 이상적 또한 스승을 닮아 서화書畵와 금석金石에 그 나름의 조예가 깊었다. 이 도서圖書는 아마도 이상적이 찍은 것이라고 생각되거니와, 금석학에 밝았던 두 사람이 천 히 멀리 떨어져 사제의 정을 나누는 데에 2천 년 전의 이 기와 글씨 내용만큼 적절한 것은 다시 없었을 것이다.


  <세한도>의 짜임을 보면 과연 불세출의 서예가 추사 김정희다운 놀라운 구성력에 탄성을 발하지 않을 수 없다. 여백을 중심으로 바라보면 소나무와 잣나무가 두 그루씩 선 곳에서 화면은 세 개의 여백 공간으로 나뉜다. 세 여백은 처음이 제일 넓고 두 번째서 조금 줄었다가 마지막에서 가장 좁아진다. 가장 여백이 좁아진 곳 뒤에서 그의 내심을 토로하는 발문이 바로 이어진다. 그런데 첫째 여백은 애초 너무 휑한 느낌을 줄 위험이 있었다. 이것은 상변에 바짝 붙여 쓴 ‘세한도’라는 짙은 제목 글씨와 수직으로 두 줄 내려 쓴 ‘우선시상 완당’이라는 작은 관지款識 글씨에 힘입어 절묘한 공간 분할을 이루면서 구제되었다.
  여백이 아닌 형태의 연결을 보자, 얼핏 보기에는 놓치기 쉽지만, 작품 오른편 아래 구석에서 늙은 소나무의 오른쪽 가지를 잇고, 잣나무의 왼쪽 가지로부터 다시 그림 왼편 아래 구석으로 연결해가면, 작품의 전체 윤곽은 안정감 있는 삼각형 모양을 이루고 있다. 보고 또 보아도 <세한도>가 좋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장문의 화발을 보자 정성들여 방안方眼을 긋고 쓴 글은 위쪽에 넓은 여백을 두고 아래쪽을 밭게 자리잡았다. 이렇게 아래쪽에 치우쳐 자리한 발문은, 그림을 중간에 두고 화면 상변의 ‘세한도’ 글씨와 서로 대척점에서 서서 마주보고 있다. 제목 ‘세한도’와 그 뜻을 풀어낸 장문의 글씨들은 마치 크고 작은 추로써 저울에 평형을 준 것처럼 서로 절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 이 글은 오주석의  [옛그림 읽기의 즐거움] 1권에서 발췌하였습니다. 
**(계속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