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평대군의 몽유도원기
글쓴이 : 학예실     첨부파일 :       날짜 : 06-08-29    조회 : 6762
 몽유도원기 夢遊桃園記




  
[그림 1] 안견의 몽유도원도

정묘년(1447년) 4월 20일 밤에 내가 막 베개를 베고 누우니, 정신이 갑자기 아득해지며 잠이 깊이 들어 꿈을 꾸게 되었다. 문득 보니 인수仁  박팽년朴彭年과 함께 어느 산 아래에 다다랐는데 겹친 봉우리는 험준하고 깊은 골짜기는 그윽하였으며 복사꽃 핀 나무 수십 그루가 서 있었다.

  오솔길이 숲 가장자리에서 두 갈래로 나뉘어 어디로 가야할지 갈 곳을 몰라 우두커니 서서 머뭇거리고 있자니 시골 옷차림을 한 사람이 하나 나왔다. 그는 내게 공손히 인사를 하며 말하기를 “이 길을 따라 북쪽 골짜기로 들어서면 바로 도원입니다” 하는 것이었다. 인수와 내가 말을 채찍질하여 찾아가보니 절벽은 깎아지른 듯하고 수풀을 빽빽하고 울창하였다. 또 시내가 굽이지고 길을 꼬불꼬불하여 마치 백 번이나 꺾여 나간 듯, 곧 길을 잃을 것만 같았다.

  그 골짝에 들어서자 골 안은 넓게 탁 트여 족히 2, 3리는 될 듯했다. 사방엔 산들이 벽처럼 늘어섰고 구름과 안개는 가렸다가는 피어오르는데 멀고 가까운 곳이 모두 복숭아나무로 햇살에 얼비치어 노을인 양 자욱했다. 또 대나무 숲 속에 띠풀집이 있는데 사립문은 반쯤 닫혀있고 흙섬돌은 이미 무너졌으며 닭이며 개, 소와 말 따위도 없었다. 앞 냇가에는 조각배가 있었지만 물결을 따라 흔들거릴 뿐이어서 그 정경의 쓸쓸함이 마치 신선이 사는 곳 같았다.

  그렇게 한참을 머뭇거리며 바라보다가 인수에게 말하였다. “바위에 나무 얽고 골짝에 구멍 뚫어 집을 지었다. ‘架巖鑿谷開家室’ 는 것이 바로 이런 걸 말한 게 아니겠나  참말 도원 골짝일세!” 그때에 옆에 누군가 몇 사람이 두 쪽에서 있는 듯하여 돌아다보니, 정보貞父 최항崔恒과 범옹泛翁 신숙주申叔舟 등 평소 함께 시를 짓던 사람들이었다. 제각기 신발을 가다듬고서 언덕을 오르거니 내려가거니 하면서 두루 살펴보며 즐거워하던 중에 홀연히 꿈에서 깨고 말았다.

  아! 사방으로 통하는 큰 도시는 참으로 번화하니 이름난 고관대작高官大爵이 노니는 곳이요, 골짝이 다하고 절벽이 깎아지른 곳은 바로 그윽하게 숨어사는 은자隱者들의 거처다. 그러므로 몸에 화려한 관복官服을 걸친 자들의 자취는 깊은 신림에까지 미치지 아니하며, 돌과 샘물 같은 자연에 정을 둔 사람들은 꿈에도 궁궐의 고대광실高臺廣室을 바라지 않는다. 그것은 대개 성품이 고요한 이와 번잡함을 좋아하는 이가 서로 길이 다른 까닭에 자연스런 이치로서 그리된 것이다.

  옛사람은 말하기를 “낮에 한 일이 밤에 꿈이 된다”고 하였다. 하지만 나는 궁중에 몸을 담아 밤낮으로 하는 일이 많은데 어째서 그 꿈이 산림에까지 이르렀던가  또 갔더라도 어떻게 도원까지 다다른 것인가  또 나는 서로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많은데 하필이면 도원에서 놀며 이 몇몇 사람들과만 함께 하게 된 것인가  그것은 아마도 내 성격이 고요하고 외진 곳을 좋아하여 평소에 자연을 그리는 마음이 있으며 그 몇 사람과 특히 두텁게 사귀었던 까닭으로 그렇게 된 것이리라.

  그리하여 가도可度 안견安堅에게 명하여 내 꿈을 그림으로 그리게 하였다. 다만 옛날부터 일러오는 도원이라는 곳은 내가 알지 못하니 이 그림과 같은 것일는지 모르겠다. 나중에 보는 사람들이 옛 그림을 구해서 내 꿈과 비교해 본다면 반드시 무어라고 할 말이 있으리라. 꿈꾼 지 사흘째 되는 날, 그림이 다 이루어졌으므로 비해당匪懈堂의 매죽헌梅竹軒에서 쓴다.

  
  [그림 2] 안평대군의 몽유도원기 

  * 안평대군(1418-1453)은 세종의 셋째아들로 자字가 청지淸之, 호號는 비해당匪懈堂 또는 매죽헌梅竹軒이다. 당대의 명필로 유명하였으며, 시詩, 문文, 서書, 화畵, 악樂에 모두 능통하였다고 한다. 안평대군은 어느 날 무릉도원을 거니는 꿈을 꾸고는 가까이 지내던 화원 안견에게 꿈에서 본 무릉도원의 모습을 일러 그림을 그리게 한 것이 현존하는 <몽유도원도>이다. 이 글은 안평대군이 그림을 그리게 된 경위를 손수 유려한 필치로 쓴 발문이다. <몽유도원도>는 당대의 화원 안견이 안평대군에게 들은 도원의 모습을 꼼꼼하고 세밀한 필치로 그려낸 그림과, 안평대군의 멋들어진 글씨, 그리고 그림을 본 박팽년, 신숙주 등의 감상문이 이어져, 조선 전기 문인들의 시서화 취미가 종합적으로 담겨 있는 작품이다. <몽유도원도>는 현재 일본 덴리대 天理大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 <몽유도원기> 번역문은 오주석의  [옛그림 읽기의 즐거움] 1권에서 발췌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