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탑파의 양식변천 3 - 고유섭
글쓴이 : 학예실     첨부파일 :       날짜 : 06-08-10    조회 : 3974
 (2에서 계속됨)

  시간이 많이 경과하였으므로 급히 말하겠는데 석탑 전체가 이와 같이 장식적인 것으로 되어감과 동시에 제 8세기 이후의 형세로서는 두 줄기의 변천의 조류를 말할 수가 있다. 곧 예컨대 갈항사지탑葛項寺址塔과 같은 곳에서는 추섭장식구鎚 裝飾具를 탑 전체에 시행한 흔적이 잘 보이는데 다시 또 경주 원원사지탑遠原寺址塔과 같이 탑의 기단이나 탑신에 더욱 많은 양각을 시행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부분적으로도 점차 장식화의 수법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정형적인 탑파 자신에 시행할 수 있는 장식적인 수법에는 한도가 있는 듯 하여 이에 일전一轉하여 이형異形의 탑파까지도 발생함에 이르렀다. 이곳에서는 설명을 생략하고 종류가 다른 것만을 들겠다. 경주 불국사의 다보탑, 구례 화엄사 효대孝臺의 사자3층탑, 경주 남산의 모사지某寺址의 동모전탑東模塼塔, 경주 옥산玉山 정혜사淨惠寺 13층탑, 남원 실상사 백장암百丈庵 3층탑, 화순 다탑봉多塔峰의 이형탑, 평창 월정사 8각9층탑 - 이 같은 다각원탑류多角圓塔類는 고려시대에 들어서 비로ㅅㅗ 출현하였고, 또 북선지방에 많으므로 요금계遼金系 탑파의 영향인가 생각되는 것이다 -강릉 신복사지神福寺址 3층탑, 철원 도피안사到彼岸寺 3층탑, 서울 원각사지圓覺寺址 13층탑[탑동공원탑]과 같은 것이 그 대표적 작품이라고 하겠다. 서울 원각사지 13층탑[탑동공원탑]은 고려 말 원조의 영향아래 발생한 것으로 이 형식의 탑은 개성 경천사에서 먼저 건조되었고 서울의 이 탑은 조선조 세조시대의 작품으로서 고려 말부터 조선조에 걸쳐서 한때의 유행을 보인 것이다. 

 이와 같이 이형의 탑파가 발생한 것은 신라 중기 이후의 현상인데 또 신라 선종의 발전과 더불어 조사의 묘탑墓塔이 많이 조성하게 되어 조식彫飾의 의욕은 도리어 이 방면에 그 발전의 길을 발견한 듯이 우수한 것이 많이 조성되었다. 보령 성주사 3층탑, 경주 석굴암 3층탑 - 이들은 다층식多層式에 의한 묘탑이다. 원주 흥법사興法寺 염거화상탑廉居和尙塔 - 이것은 팔각원당식八角圓堂式의 묘탑이라 가칭假稱하겠는데 이 종류의 묘탑 중에서 확실한 연대를 실증할 수 있는 최고의 예이다. 충주 정토사淨土寺 홍법국사탑弘法國師塔 - 이것은 스투파형의 사리탑인데 고려 말 이후 묘탑에 많이 사용하게 되었다. 원주 법천사法泉寺 지광국사탑智光國師塔 - 이 묘탑은 특수한 것이다. 이상에서 팔각원당식의 묘탑, 오륜탑형의 묘탑, 스투파형의 묘탑이 조선에 있어서의 묘탑형식의 태반을 결정하고 있는데, 조루彫鏤(새김)가 우수한 것으로는 팔각원당식에 속하는 것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이상에서 말한 바와 같이 신라 중기 이후 장식적 의욕의 발전은 이형탑파를 발생하게 되었는데 다시 타일방他一方에 있어서는 재래의 전형적 탑파 양식에 준칙準則한 변화가 행하여지고 있다. 곧 간략화와 부분적인 장식화가 행하여졌는데 간략화라 함은 탑신의 옥신이 일석조一石造로 되든지 옥개부가 받침까지도 전부 일석화一石化됨과 동시에 받침의 수효도 5단부터 4단, 3단으로 간략화된다. 그중에서도 기단에 있어서 탱주 2주 형식의 것은 제8세기로 끝나고 동시에 탱주 1주의 것이 발생한다. 경주 창림사지의 3층탑[지금 도괴倒壞]과 같은 것은 이 형식의 선구적인 것이어서 하층 기단에 탱주 3주를 갖는 것은 도리어 초기적인 이례異例이며 경주 남산 모사지某寺址의 삼층탑과 같이 탱주 2주의 것이 이형식 중에서 초기적인 일반현상이다. 그리고 이 형식의 것에 이르러 상층기단에 8부중의 양각이 일반적으로 첨가되어진 것도 특색있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다시 일전一轉하여 남원 실상사의 동서 3층탑에서 보는 바와 같이 ㅎㅏ층 기단에 있어서의 탱주가 1주가 됨을 최후의 감축으로서 보겠는데 이와 같이 탱주수의 감소라는 것은 가장 간단한 것이면서 시대 추정 상 큰 역할을 하는 하나의 표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실제에 있어서도 이 탱주가 상단에 있어서 2주, 하단에 있어서 2주까지의 것은 옛 것에 한하였고 지역적으로도 신라의 구영내舊領內 곧 강원도   경상도에만 한정되어 있고, 상단에 있어 탱주 1주의 것이 되어서 비로소 지방으로 분포되어 가고 있다.

 지방으로 분포됨으로써 그곳에 지방색이 가미되어 감도 당연한 일이며 통칭 백제식 탑파라는 것도 그 시초는 이곳에 있다. 이 예로서 홍유 무량사 5층탑, 서산 보원사 5층탑을 들겠는데 그 옥개의 첨단곡율 端曲率의 자태가 재래의 신라탑과 다르고 부여탑   미륵탑의 그것과 유사한 것이 되었다. 그리고 기단부에 있어서도 상층기단의 자태만 남아있는 것 - 예컨대 문경 봉암사 3층탑 또는 실상사의 3층탑과 같이 3단의 형식으로 되어서 기단 외곽에 탑구塔區라고도 칭할 만한 광대한 지대가 조성된 것 등의 변화가 있고 부분적으로는 기단 갑석甲石의 연광緣 이 사분원四分圓의 큰 원형이 있는 것으로부터 고려에 들어 드디어 연화형蓮花形으로 되어서 예컨대 도피안사 3층석탑의 기단이 불상의 불단佛壇과 같은 것으로 되어 있는 것, 또는 보원사탑과 성주사탑에 있어서와 같이 초층탑신을 받는 옥신괴임을 별석조別石造로 끼워놓는 형식이 되면서 고려에 들어 연화형이 되는 예컨대 예천 개심사지 5층탑이 그것이다. 이와 같이 탑신이라는 것ㅇㅡㄴ 더욱더욱 기단 위에 실린 장식적인 것의 의미를 강하게 갖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기단 그 자체도 초기의 실제적인 건축기단의 재생 의사로부터 장식적인 것으로 화하여 가는 것이어서 그 가장 현저한 특색은 기단에 안상眼象을 만들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순서로 말하자면 구례 화엄사 서5층탑과 같이 하층기단에만 안상眼象이 있고 다음에 상층 기단에 미치는 것이 의당할 것이로되 후에는 탑신에까지 만들게 되었다.

 시간이 많이 초과되어 자세히 다할 수 없으므로 한 두가지 예만 들어보겠다. 합천 해인사 3층탑은 수리 이전의 원형태에 있어서 기단이 3단으로 되어 중단   하단에 모두 안상이 있는 예이다. 다음에 개성 현화사지탑을 들겠는데 이 탑은 그 탑신 각층 옥신 전부의 안상 중 불보살상이 양각되어 있는 예이다. 그리고 이 탑이 옥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첨단곡율 端曲率은 백제식이라는 것보다도 더욱 심하게 굴곡되고 있어 고려식의 한 특색을 표시하고 있는데 첨하 下의 받침도 재래의 단층형段層形의 것이 아니고 일종의 특별한 장식적인 것으로 되어 있다. 이 탑의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서울 홍제원의 사현사지沙峴寺址 5층탑을 들겠는데 첨단 端의 곡율曲率이나 그 두꺼움이, 그리고 고란高欄의 자태 등이 모두 특색이 있는 것으로서 고려 탑파의 특색이 잘 보일 것으로 생각한다. 

 이외에도 논할 것이 많이 있으나 제한 시간도 이미 초과하였으므로 이것으로써 나의 말을 그치겠는데 결론으로 간단히 말하고자 함은 조선의 탑파는 예술학적인 양식론에 입각하여야 비로소 많은 문제가 해결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실제에 있어서도 조선의 석탑은 예술적 작품으로서 움직이고 있다. 그와 동시에 그것은 단순한 예술적 작품은 아닌 것으로, 곧 신앙의 대상물이어서 탑파의 변천의 자태는 곧 이것이 또 신앙의 변천의 자취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유래由來 문헌적인 것의 잔류殘留가 거의 없는 조선에 있어서의 문화현상, 특히 불교문화의 유전流轉의 자태를 천명하는 데 있어서도 탑파의 고찰이 중요한 과제라는 것을 말하여 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