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활옷에 씀 題霞帔帖 - 정약용
글쓴이 : 학예실     첨부파일 :       날짜 : 06-05-20    조회 : 4693
내가 강진에서 귀양살고 있을 때 병든 아내가 낡은 치마 다섯 폭을 부쳐왔다. 그녀가 시집오던 날 입었던 붉은 색 활옷이었다. 붉은 색은 이미 씻겨나가고 노란 색도 희미해져서 책 장정으로 삼기에 적당했다. 그래 가위로 말라서 작은 공책을 만들어 놓고 손가는 대로 훈계하는 말을 적어서 두 아들에게 남겨준다. 아마도 훗날 이 글을 보게 되면 감회가 일어날 것이고, 두 어버이의 아름다운 은택恩澤을 어루만지게 되면 뭉클하고 감동이 일지 않을 수 없으리라. 이름을 하피첩霞帔帖이라 했으니 이것은 붉은 치마를 돌려 은근히 말한 것이다.
가경嘉慶 경오년(1810) 초가을(7월)에 다산의 동암東菴에서 쓰다.
 
 

고대 박물관에는 다산이 그린 <매화병제도> 하나가 소장되어 있다. 매화와 새를 그린 이 그림에는
 
  

 
라는 시와 함께, 하피첩에 쓰이고 남은 치마감에 매화와 새를 그려 윤창모尹昌謨에게 시집 간 외동딸에게 그림 가리개를 만들어 주었던 사연이 적혀 있다. 자신들의 혼례복 치마를 말라서 자식들에게 남기는 교훈을 쓰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축원하는 그림 가리개를 만들어 줄 만큼 이들의 부부생활이 아름다운 것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한 성실한 보통의 남편으로서, 부부의 결혼생활이 참으로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자식들에게 이처럼 아름다운 유산도 달리 없으리라.

다산은 15살 되던 1776년 2월 22일에 풍산 홍씨와 결혼하여 만 60년을 해로하였다. 다산은 부부의 회혼일回婚日인 1836년 2월 22일에, 회혼일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일가와 제자들 가운데서 서거한다. 다산이 남긴 마지막 시는, “육십 년 세월, 눈 깜박할 사이 날아갔으니, 복사꽃 무성한 봄빛은 신혼 때 같구려”로 시작하는 「회혼시[回巹詩]」였다.
 
  

  


 *  정약용, 『뜬세상의 아름다움』,  박무영 옮김, 태학사, 2001에서 발췌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