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에 가는 까닭 - 정약용
글쓴이 : 학예실     첨부파일 :       날짜 : 06-04-05    조회 : 4281
귀는 어째서 잘 들리는 것일까? 부르는 소릴 듣고서 달려가고, 꾸짖는 소리를 듣고서 멈추며, 포효하는 소리를 듣고서 해를 피하기 위해서다. 나아가서는 금석사죽金石絲竹의 온갖 악기로 음악을 연주하는 것을 듣고 즐기기 위함이다. 눈은 어째서 환하게 보이는가? 험하고 평탄한 것을 변별하고 마르고 젖은 것을 구별하여, 취하고 버리거나 나아가고 물러가게 하기 위해서다. 나아가서는 온갖 이상하고 아름다운 화초와 서화, 골동품 같은 것들을 즐기기 위해서다. 산은 어째서 거대한가? 바람을 막고 샘물을 저장하며 금‧은‧구리‧철, 좋은 재목과 보석을 생산해 내니, 그것을 이롭게 사용하여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다. 나아가서는 금강산 같은 것이 솟아 있기도 하니, 이처럼 만물의 이치란 쉽사리 따져 물을 수 없는 것이다.

금강산에선 오곡이 나지 않는다. 또한 금‧은‧구리 같은 금속이나 여덟 가지 중요한 돌들, 녹나무나 예장나무와 같은 진귀한 목재, 동물의 뼈나 가죽, 털 따위의 자원은 어느 한 가지도 얻을 수 없다. 그저 가파른 봉우리와 빽빽한 바위의 기이한 모습과 깊은 못이나 급하게 쏟아지는 폭포의 쟁그랑거리는 소리나 넘실거리는 물결이 비할 데 없어 뛰어나 사람을 놀라게 하고, 그리하여 천하에 이름을 떨치는 것에 불과할 뿐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마른 식량을 싸들고 들판과 시내를 건너 우거진 수풀을 헤치고 가파른 바위를 지나 등에 땀이 흐르고 숨을 몰아쉬면서도 기필코 한 번 구경하고야 마는 것을 호쾌한 일로 여긴다. 이것은 또 어찌된 까닭인가? 현악기와 피리로 연주하는 음악으로도 부족해서 쟁그랑거리는 물소리와 사납게 쏟아지는 폭포소리를 듣고 기뻐하려는 것이요, 꽃과 나무, 골동품으로도 부족해서 가파른 봉우리와 괴석들을 보고 즐기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목의 욕심에 탐닉하는 것이 너무 심하지 않은가? 내가 보기엔 욕심이 많은 것인데, 어째서 세상은 이 사람들을 맑고 고상하며 마음이 편안하고 담백한 사람이라고 하는가?

내가 그 까닭을 알겠다. 귀와 눈이 부르는 소리와 꾸짖는 소리를 변별하고 평탄하고 험한 것을 구별하는 것은 모두 그 육신을 기르려는 것이다. 현악기나 관악기, 꽃과 나무 같은 것들은 마음을 기르는 것이다. 산이 보화 등 여러 가지 물건들을 생산하여 이롭게 쓰도록 하는 것은 모두 그것으로 사람의 몸을 기르려는 것이다. 가파른 봉우리나 괴석들, 쨍그랑거리는 물소리나 급하게 쏟아지는 폭포가 되어 구경거리를 제공하는 것은 마음을 기르기 위해서다. 몸을 기르는 것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탐닉하면 사욕이 된다. 그러나 마음을 기르는 것은 설령 탐닉하여 돌아 나올 줄 모르더라도 군자는 탐욕스럽다고 하지 않는다.

내 벗인 심화오와 이휘조가 금강산으로 유람을 떠나려 한다. 그들이 떠나려 할 때 이 글을 써서 준다. 두 사람이 마음을 기르는 방법을 알았으면 싶어서다.

  

 
조선 후기는 금강산 유람이 일대 유행이었다. 사람들은 왜 금강산에 그처럼 가고 싶어하는가? 금강산에선 우리의 일상적인 필요에 부응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생산되지 않는다. 그래도 사람들은 고기가 물을 향하듯 금강산으로 끌린다. 그것은 ‘쓸모 없는 것의 아름다움’에 끌리는 인간의 마음이다. 이 ‘쓸모 없는 것의 아름다움’에 끌리는 것은 한갓 호사 취미일까? 아니다.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육체적인 존재일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존재라는 증거다.
다산은 매우 현실적인 사람이다. 인간의 기술과 실용을 중시하고, 인간 기술사를 발전사로 파악한 당시로선 혁신적인 사고를 하던 사람이다. 이 글의 도입부도 그런 실용적 사고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그러나 ‘쓸모 없는 것의 아름다움’과 그 중요함을 이야기하는 것에서 우리는 인문학적 사고의 바탕을 잃지 않는 과학적 사고의 조화로움을 보게 된다.

 
*  이 글은 정약용, 『뜬세상의 아름다움』,  박무영 옮김, 태학사, 2001에서 발췌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