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수공업 2 - 까를로 로제티
글쓴이 : 학예실     첨부파일 :       날짜 : 06-03-05    조회 : 4530
한국 예술의 황금 시대가 남겨준 마지막 잔영은, 히데요시의 원정 동안에 자행된 일본인들의 파괴로 인해서, 그리고 대개의 원정에서처럼 얼마 남지 않은 예술가들조차 일본으로 끌려감으로써 사라져 버렸다.
반면 일본에서는 불교의 빠른 전파와 쇼군과 다이묘 등 봉건적 신하들이 누렸던 호화로운 생활이 예술 발달에 유리한 조건이 되었다. 때문에 한국 장인들이 도입했던 예술은 이미 일찍부터 메이지 시대 초기에 볼 수 있었던 완벽함을 갖추게 되었다.

한편 한국에서는 끊임없는 내부 분쟁, 주변 국가들의 끊임없는 약탈, 그리고 적들에게 새로운 침략의 구실을 주지 않기 위한 과장된 빈곤의 과시가 자발적이고 단순한 어떠한 예술적 표현의 시도조차도 불가능하게 했고, 이로써 예술의 재발생도 억압되었다.
그러한 예술적 생산의 부족은 특히 자신들에게 그 축복 받은 땅-일본-에서 날마다 부러움의 한탄을 짓게 만들었던 닛고와 교토 그리고 수많은 카키모토, 인로, 네쭈케, 자수, 도자기, 병풍, 갑옷의 섬세한 선들의 화려함을 눈과 마음 속에 가득 담고, 일본으로부터 온 사람들에게 한국에 대한 첫인상을-내 생각에- 황폐함 뿐인 것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서울 어디에서도 주의를 끄는 독창적인 형태나 정교한 선을 가진 물건을 파는 상점을 찾을 수 없다. 만약 당신이 일정이 급한 여행객이라면, 값어치 있는 물건을 가지고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찾지 못한 채 서울을 떠나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만약 오랫동안 머물 수 있고, 많은 인내심과 그만큼의 강인함을 갖고 있다면, 천천히 돌아다니며 탐문함으로써 몇 가지 작은 발견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말했던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생산되어 온 약간의 예술품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예술품들 가운데 첫 번째로 꼽아야 할 것은 의심할 바 없이 강화도와 교동도의 볏짚으로 만든 돗자리이다.
이 섬들에서 만들어진 것보다 더 정교하고, 더 가볍고, 더 조화로운 디자인을 가진 돗자리를 한국의 다른 곳에서 찾기는 어렵다. 가장 훌륭한 것들은 궁에서 감상할 수 있는데, 50평방미터 이상 되는 아주 커다란 것도 있다. 그렇지만 그것들은 황궁이나 황제에 대한 공물로 특별히 생산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와 같은 것을 손에 넣기는 어렵다. 반면에 적당한 크기의 교동 돗자리들은 상대적으로 쉽게 구할 수 있다.

이 돗자리에 관해서 한 독일인 상인이 들려준 일화가 생각난다. 이 이야기는 한국인들이 물건의 값을 정하는 방식을 아주 잘 표현해 준다. 돗자리의 아름다움을 본 그 독일인은 한국에서는 일반적으로 그 값이 아주 싸지만, 그것들을 유럽으로 가져가면 훨씬 비싸게 팔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윤이 많이 남는 수출업이 될 것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가장 유능하다고 알려진 장인들 중의 한 명을 찾아갔다. 수없이 논의하고, 일상적이고 무의미한 얘기들을 끝없이 나눈 뒤에 단가(單價)에 합의를 보았다. 그것을 3달러라고 가정해 보자. 가격을 결정한 후, 그 독일인이 말했다.
“좋습니다. 그러나 만약 내가 당신에게 1,000개를 주문한다면, 3,000달러를 다 내는 것은 너무 비싸요. 그렇지 않습니까 ”
“맞습니다. 맞아요. 알겠습니다.” 그 한국인 장인이 대답했다.
“그렇다면 1,000장의 돗자리에 얼마로 할까요 ”
그 늙은 한국인은 잘 생각하고 계산을 했다. 그리고 나서 말했다.
“그렇다면 1,000장의 돗자리 값으로 4천 달러를 주시오.”
“뭐라고요  우리는 한 장에 3달러라고 얘기했소. 그런데 이제 와서 1,000장에 4천 달러를 원한다고요 ”
“예, 그래요. 그렇지만 나는 당신이 그렇게 많이 필요로 하는지 전혀 몰랐었소.”
그의 마음을 바꿀 순 없었다. 그가 말하길, “3달러에 한 장은 당신에게 줄 수 있소. 하지만 당신이 1,000장을 원한다면, 그것은 당신이 그것을 많이 필요로 하고 있으며, 나와 맺은 계약이 당신에게 너무 유리하다는 증거요. 그러니 나에게 더 많이 주셔야 하오.” 이를 통해서 한국인들과 교역을 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다.

돗자리 다음으로 가장 일반적인 은제(銀製) 상감(象嵌)이 있는 철제품들을 들 수 있다. 이 제품의 생산은 황해도 지방에 국한되고, 이 역시 궁정의 필요나 몇몇 양반들의 주문에 의해서만 만들어진다. 가장 일반적인 제품은 여닫는 뚜껑을 가진 차(茶) 상자와 손잡이와 비밀 자물쇠를 가진 아주 큰 담배 상자이다. 보통 아주 정교한 장식은 각각 주제(Motif)를 담고 있는데, 가장 많이 사용되는 주제는 일반적으로 행복, 부, 다산(多産)을 의미하는 문자들이다. 쟁반, 화로, 촛대, 재갈, 등자 그리고 맹꽁이 자물쇠 같은 제품들도 한때는 그 정도의 수준으로 제작되었지만, 오늘날에는 훌륭한 것을 찾기란 매우 어렵다. 나는 운이 좋아서, 서울 체류 초기의 어느 날, 아주 우아하게 만들어진 훌륭한 촛대 하나를 입수했다. 그리고 다른 것을 더 입수하고 싶었지만, 처음의 10배를 지불하겠다고 해도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그런 제품 외에도 서울의 가구 거리-파는 것이 따라 이름 붙여진-에서 파는 작은 보석상자를 꼽을 수 있다. 한국 예술품들 중에 현재 생산되는 것들의 목록은 이것이 끝이다. 그 보석상자들은 서울에서 만들어졌는가, 또는 전라도나 평안도에서 만들어졌는가에 따라 세 가지 주요한 종류로 구분된다. 서울에서 제조되는 것들은 일반적으로 덜 아름다우며, 놋쇠 장식이 달리 ㄴ자연목으로 만들어진 크고 묵직한 것들, 또는 더 작고 값싼 놋쇠 장식이 달려 있고 붉은 색의 조잡한 옻칠이 되어 있는 것들이다. 더 나은 것은 전라도에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그것들은 아주 평범한 검은색 옻칠에 진주 가루를 입힌 것이다. 그러나 예술적인 특성들을 갖고 있는 유일하고 가장 가치 있는 것은 평안도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아주 간결한 형태에 검게 염색한 자연목으로 만들어졌고, 섬세하고 정밀한 디자인의 철제 양각 장식만으로 장식된다.

그것들은 어떤 면에서 옛날 300년전, 세련되고 엄격하게 선을 꾸미던 피렌체나 시에나의 보석 상자들을 연상시킨다. 가격은 적당한 편이며, 이제까지 언급한 다른 모든 제품들과는 달리 국민들의 일상적인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는 유일한 것이다. 그래서 별 어려움 없이 시장에서 구할 수 있다.

때때로 서울의 시장에서 발견되는 돗자리, 철과 은으로 만들어진 상자, 그리고 아주 희귀한 병풍과 그림들은, 도시의 북쪽 구역에 있는 몇몇 작은 소매 상점에 가야 구할 수 있다. 서울을 이루고 있는 수많은 돌산들 건너편에 있는 그곳은 파산한 부잣집의 마지막 잔재들이 모이는 곳이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정말로 무언가 좋은 것을 찾고 있다면, 그 불결한 골동품 상점들을 자주 찾아갈 필요가 있다. 그곳에서 당신은 아주 섬세한 니엘상감의 차 상자 곁에 놓인, 굶주린 농부가 몇 푼의 돈 때문에 두고 간 닳아빠진 신발이나, 손잡이와 뚜껑이 없는 차 주전자의 잔해와 교환된 밑이 빠진 모자 등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곳에는 아주 지저분하고 먼지투성이로 어질러진 채, 렌즈가 없는 안경, 낡은 단추, 옥으로 된 장식, 비단옷, 면으로 된 넝마조각, 중고 파이프 담배통, 고색창연한 관리들의 허리띠, 찢어진 책, 털이 빠진 붓, 뜯어진 돗자리, 옛날 동전, 이가 빠진 도자기, 깨진 유리, 청동 촛대 등 ㅇㅣㄴ간이 만들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모든 시대의, 모든 계층의 그리고 모든 보존 상태의 제품들이 서로 뒤섞여 있다. 나는 그 상점들을 자주 방문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그곳의 상품들은 계속적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어떤 제품은 아주 빨리 팔리고, 즉시 구입자가 나타난다. 당신이 오늘 본 제품을 내일은 다시 보지 못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

(계속)
 
* 까를로 로제티, 서울학 연구소譯, 『꼬레아 꼬레아니』, 숲과나무, 1996 에서 발췌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