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수공업 1 - 까를로 로제티
글쓴이 : 학예실     첨부파일 :       날짜 : 06-02-20    조회 : 4496
일본 예술에 관해 언급하고 있는 책이라면, 어느 책에서든지 오늘날 일본의 예술가들이 감탄하고 있는 아름다운 예술품들 중 어느 하나도 한국의 장인들에 의해 도입되거나 전수되지 않은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일본 제국에서 가장 오래된 예술적 기념품들은 한국인들의 작품들이다. 607년에 만들어진 나라(奈良)의 호류지사 벽화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그림이다. 그것은 한 한국 승려의 작품이다. 역시 나라의 니오사에 있는 아주 아름다운 일련의 목제 수호 신상들도 미개 시대인 7세기에 한국 조각가가 만든 작품으로 추정된다. 한국적 전통은 대단한 진가를 인정받고 있는 일본 자기에서 가장 명백하게 드러난다.
  

1598년 히데요시의 죽음으로 일본인들이 한반도에서 철수할 때, 장군 나베시마가 일본으로 잡아 온 한국인 도공들이 사쓰마의 도자기 문화를 만들어 낸 것으로 생각된다. 사실, 알렌 박사는 나베시마에게 잡혀 온 도공들이 히겐 지방 사쓰마의 한국인 거주 지역에서 살았고, 그 다이묘(영주, 나베시마)가 다른 기회에 건설했던 그 지방에는, 오늘날에도 한국에서 유래했음을 의심할 수 없는 마을들이 존재한다고 했다. 어쨌든 한국인들이 일본인들에게 가르쳐 준 다른 예술들처럼 도자기 역시 논란의 여지가 없다.

이렇게 보면 한국에서 하다못해 잔란했던 과거의 호화스러움을 간직한 흔적이라도 다시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가정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불행히도 조금도, 아주 조금도 남아 있지 않다. 한국에서 이토록 예술이 쇠퇴한 것은 최근에 비롯된 일이 아니다. 그것은 5세기 전쯤 현 한국 왕조의 출현 시기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주된 원인은 두 가지였다. 무엇보다도 먼저 지적해야 할 것은 송도로부터 서울로의 천도였고, 그 다음으로 불교의 추방이다. 고려 왕들의 풍요로운 수도였던 송도에서, 그들의 신앙은 한반도에서 가장 기념할 만한 예술품들을 만들어 냈다. 만약 지금 그 한국의 유명한 자기가 어떤 것인지 알고 싶다면, 대영 박물관(The British Museum)이나 루브르(Louvre)박물관에 가면 된다.

더 훌륭한 것들을 보고 싶다면 도쿄의 우에노 하쿠부즈관에 가야 한다. 이 자기들은 송도에서 독점적으로 제작되었다. 이(李)장군이 송도를 버리고 서울로 천도하자, 송도 시민들은 그들에게 많은 손해를 줄 이 천도를 좋지 않게 생각했다. 그리고 옛 왕조의 애국자들을 지지했다. 때문에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새로운 군주들에게 참혹한 박해를 받아야 했고, 다른 이들은 일본으로 이주하면서 탈출구를 찾았다. 예술가들 중 아무도 서울의 새 궁전으로 따라가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예술적인 도자기 생산은 커다란 영광의 순간을 뒤로 하고, 갑자기 중단되었다. 오늘날 남아있는 그 도자기의 적은 잔재들은 대부분 송도의 옛 귀족 가문들이 새로운 왕을 따라 서울로 가면서 가져간 것들이다. 다른 것들은 고대의 무덤에서 발견되는데 유럽인들은 한국인들과 일본인들이 낡은 도기류라고 여기는 그 귀한 귀중품들을 보는 순간 약탈하지 못해 안달을 부린다. 루브르박물관에 있는 도자기들은 대부분, 옛날 태종 임ㄱㅡㅁ의 측근 중 하나였던 사람의 집터에 프랑스 공사관을 짓기 위해 땅을 파다 발굴한 것들이다.
그러나, 송도에서 서울로의천도가 한국의 예술에 잔인한 타격을 주었다고 한다면, 더 치명적인 타격은 한국 왕조에 의한 불교문화의 추방령일 것이다.

불교의 제전과 불교 전례 의식의 제단 장식은 한국에 예술이 존재했던 가장 강력하고도 유일한 이유였을 것이다. 사찰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의식을 더 장엄하게 치르면서, 불교는 활동 역역을 점차 넓혀 갔고, 예술은 그 안에서 계속 경쟁과 진보의 이유들을 찾아냈다. 한쪽의 성취는 다른쪽의 진보였다. 그 안에서 불규칙적인 것은 없다. 우리가 모든 민족의 역사에서 볼 수 있듯이, 예술 이전에 종교가 발생하며, 종교에 의해 발생한 예술은 종교가 발달, 변모, 쇠퇴, 소멸함에 따라 생성, 성장하고, 발전, 퇴보, 소멸의 길을 걷는다.

아주 높은 진보의 단계에 도달한 이후라야만 예술은 종교의 지배로부터 벗어나서, 예정된 모든 관계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안전하게 진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결국 예술이 종교적 개념으로부터 해방된다는 것은 단지 대중의 의식 속에서의 도덕적 변화가 일고 있다는 표식일 뿐이다.

불교가 추방된 후 한국 예술의 모든 생산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며, 불교 사원, 성역, 그리고 가정의 종교적 제단 외에는 다른 아무런 수요도 찾을 수 없었던 자기류, 청동제품류, 그림들, 그리고 조각 작품들에 대한 수요가 일시에 중단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예술가들이 일본으로 집단 이주한 직후의 일이었기 때문에, 누구도 그들이 남겨 둔 공백을 채울 방법을 찾지 못했을 것이고, 결국 예술은 급속하게 쇠퇴했을 것이다.
 
(계속)
 
* 까를로 로제티, 서울학 연구소譯, 『꼬레아 꼬레아니』, 숲과나무, 1996 에서 발췌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