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도경』제30권 그릇붙이[器皿] 2 - 서긍
글쓴이 : 학예실     첨부파일 :       날짜 : 06-01-20    조회 : 4368
기름병
기름병[油 ]의 형상은 술두루미와 비슷하다. 백동白銅으로 만들었는데, 위에 뚜껑이 없다. 쓰러지지 않게 나무쐐기로 밑을 막는다. 높이는 8촌, 배의 지름은 3촌, 용량은 1되 5작이다.

  
정병
정병淨甁은 목이 길고 배가 넓으며, 옆에 부리가 하나 있고, 중간은 두 마디로 되어 있으며 테가 있다. 뚜껑 목 중간에 턱이 있고 턱 위에 다시 작은 목이 있는데, 잠필簪筆의 형태를 본떴다. 존귀한 사람과 나라의 관원, 도관, 사찰, 민가에서 다 쓰는데 물만 담글 수 있다. 높이는 1척 2촌, 배의 지름은 4촌, 용량은 3되다.
 
꽃병
꽃병[花壺]은 위가 뾰족하고 아래가 둥글어, 마치 쓸개를 달아 매놓은 것처럼 생겼다. 역시 네모난 받침이 있고, 사시사철 물을 담아 꽃을 꽂는다. 전에는 잘 만들지 못했지만 근래에는 꽤 잘 만든다. 전체 높이가 8촌, 배 지름이 3촌, 용량이 1되다.
 
물솥
물솥[水釜]의 형상은 세발솥[ 鼎]과 같은데, 동으로 주조하였다. 짐승 모양의 고리가 두 개 있어, 거기에 나무를 꿰면 짊어질 수 있다. 고려인의 방언으로는 큰 것 작은 것을 막론하고 모두 요복야( +幼)僕射라 하는데, 관사 안의 여러 방에 다 공급한다. 높이는 1척 5촌, 너비는 3척, 용량은 1섬 2말이다.
 
물통
물통[水 ]은 물솥과 형태가 같으나 약간 작고, 또 동으로 만든 뚜껑이 있다. 그것을 써서 물을 긷는데, 중국의 수통水桶을 본뜬 것이다. 위에 귀가 두 개 있어서 쳐들 수 있다. 고려 사람들은 지고 이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 그릇이 가장 많다. 높이는 1척, 배의 지름은 1척 2촌, 용량은 1말 2되다.
 
탕호
탕호湯壺의 형태는 꽃병과 같은데, 약간 납작하다. 위에는 뚜껑을 덮고 아래는 받침을 받쳐 더운 기운이 새나가지 않게 하였으니, 역시 음식을 끓이거나 데우는 데 쓰는 그릇의 일종이다. 고려인이 차를 끓일 때는 자주 탕호를 사용한다. 전체 높이는 1척 8촌, 배의 지름은 1척, 용량은 2말이다.
 
백동 대야
백동 대야[白銅洗]는 검은 꽃무늬 세숫대야나 은색 꽃무니 세숫대야와 모양이 흡사하나, 단지 무늬가 없다. 고려인은 그것을 빙분氷盆이라 한다. 또 한 등급 낮은 적동赤銅으로 만든 대야가 있는데, 만듦새가 약간 조잡하다.
 
정로
정로鼎爐의 만듦새는 박산로와 비슷한데, 위에 꽃 모양 뚜껑이 없고 아래에는 발이 셋 있다. 도관이나 사찰, 신사神祠에서만 쓴다. 높이는 1척, 꼭대기의 너비는 6촌, 아래 쟁반의 너비는 8촌이다.
 
온로
온로溫爐는 솥처럼 생겼는데 주둥이가 밖으로 향하고, 배 아래의 세 발은 짐승이 물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온로에 물을 담아서 궤안 案에 놓아두는데, 이는 겨울철에 손을 데우는 기물이다. 면의 너비는 1척 2촌이고, 높이는 8촌이다.
 
큰 종
큰 종은 보제사에 있는데, 형체는 크나 소리는 시원하지 않다. 위에는 이뉴 紐가 있고, 중간에는 날아다니는 신선 한 쌍이 있다. 새겨 넣은 글자는 “갑술년주 용백동 1만 5000근甲戌年鑄用白銅二萬五千斤”이라고 되어 있다. 고려인이 말하기를, “전에는 이중의 높은 전각에 설치했는데, 소리가 거란에까지 들리므로 선우單于가 싫어하여 지금은 이곳에 옮긴 것”이라고 한다. 틀림없이 과장한 말로, 반드시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계속) 
 
 
- 중국 송나라 때 문신 徐兢(1091~1153)의 『高麗圖經』중에서 발췌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