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 그림 그리고 인품(1)- 강우방
글쓴이 : 학예실     첨부파일 :       날짜 : 05-03-01    조회 : 5327
글씨, 그림 그리고 인품 - 김홍도의 작품세계-

소리를 그린 화가를 아는가.
깊어가는 가을밤, 앙상한 나뭇가지에 잎들은 다 떨어지고 소슬한 가을밤 소리가 한없는 적막감을 자아낸다. 휙휙 낙엽을 스치는 바람소리를 단원 김홍도는 갈필로 화면의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빠른 속도로 그리고 있다. 둥근 달이 희미한 빛을 발하는 창백한 화면은 여기저기 스치는 검은 소리와 어울려 마치 말러(Gustav Mahler)의 흐느끼는 듯한 암울한 현의 선율을 듣는 것 같다. 집 안에 단정히 앉아 앞마당 달빛과 가을의 소리에 응시하고 있다가 손님이 왔다는 머슴의 소리에 고개를 돌린 노인은 바로 단원의 마지막 모습일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죽음의 손님인가. 길이 2m가 넘는 이 작품을 그린 바로 그 해에 김홍도는 세상을 떠난다. 필자는 김홍도 말고는 바람을 그린 화가를 아직 보지 못했다. 이처럼 자신의 심정을 자전적으로 표현한 화가도 그리 흔하지 않다. 화원으로서 정조의 측근에서 파격적인 총애를 받았던 김홍도는, 정조가 정치와 문화의 과감한 개혁을 끝내 완수하지 못한 채 1800년 의문의 죽음을 맞은 이후, 온갖 수모와 가난 속에서 5년 만에 병사한다.
  

경주에서 보낸 4년이란 세월은 필자에게 매우 중요한 시기였다. 이순(耳順)이 되기 전 하늘이 필자에게 내린 은총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그리고 지난해는 필자의 생애에서 가장 격동의 해였으며 동시에 풍성한 해였다. 그리고 하늘의 눈부신 은총은 계속 필자를 비추어 주었다. 귀중한 4년 동안의 체험을 대학 강단에서 학문으로 되살리고 글로 남기게 되었으니까. 경주에 있으면서, 학문은 물론 필자 자신의 생의 완성을 위한 경주에 있는 것이 행복하다고 썼는데, 이제 새해를 맞아 서울에서 더 높은 차원에서 그 말을 되풀이 할 수 있게 되었다. 신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필자는 이 회색빛의 서울에서 그 투명하고 밝았던 서라벌 들녘의 공기를 매일 마시고 있다. 서라벌의 그 빛과 산하와 예술을 모두 마음에 담아 왔기 때문이다. 서라벌에서 사는 동안 백제와 고구려를 이해하게 되었고 중국을, 그리고 중앙아시아, 인도, 그리스, 로마 등 온 세계를, 그리고 더 나아가 우주를 인식하게 되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것은 결코 ㅇㅜ연이 아니다. 우리 인생은 온통 우연 아닌 것이 없지만 그 우연은 필연으로 바꾸는 노력은 스스로 기울일 수밖에 없다. 이 지구의 역사에 한 발자국이라도 자신의 자취를 남겨야 할 것이 아닌가. 아무리 인생이 허망하다고 하더라도.
  

경주의 산하는 정말 청아하다. 그것은 아마도 그 산하에 수많은 고귀한 예술품들이 어울려 있어서 그럴 것이다. 아침 저녁 출퇴근길에 보고 또 보고, 주말이면 카메라를 등에 지고 산을 넘고 내를 건너는 동안, 필자를 매혹시킨 것은 철따라 시간 따라 변하는 산하의 빛이었다. 필자는 불상이나 탑들이 시시각각 다른 모습으로 변하고, 또 다른 빛을 띠고 있음을 알고 나서 같은 유적이라도 자주 사진을 찍었다. 그래서 어떤 때는 한 유적의 슬라이드만 수백 컷이 됐다. 한 풍경 속에서 유적은 시간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그 산수란, 계절 따라 다를 뿐만 아니라 그날그날 다르고 아침, 낮, 저녁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그 모든 순간마다 다른 빛과 모습을 찍느라고 얼마나 헤맸는지 모른다. 그러는 사이 불상과 탑은 나무나 돌 같은 사물로 변해 버렸다. 나무, 산 그리고 오솔길의 빛을 찍기 시작하면서 더욱 바빠졌고 지쳐버리기도 했다. 때때로 카메라가 없었으면, 카메라로부터 자유스러워졌으면…. 그러나 카메라는 ‘ㅅㅜㄴ간’의 모든 것을 찍는 것, 사물의 천기는 한 찰나에만 나타낼 뿐. 차츰 카메라는 내 몸의 일부가 되었다. 이 모든 앵글과 모든 빛을 심상의 깊이를 살리기 위해서 흑백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갑자기 여유가 생기고 한가해지며 사물을 관조하게 되자 내 자신의 마음으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그 흑백이란 바로 먹으로 통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필자는 친구의 권유로 장파가 쓴 《중서학과 문화정신》(우리나라에서는 《동양과 서양, 그리고 미학》이라 제목을 고쳐서 번역출간되었다)을 읽고 많은 것을 배웠다. 참으로 좋은 책이다. 중국에서 이 책이 출간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며 경하해야 할 일이다. 왜냐하면 그는 서양미학과 동양미학이 얼마나 근본적으로 다른가를 극명하게 기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동양을 모르면서도 서양미학이론을 동양미술의 해석에 적용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분명하게 알게 될 것이다. 필자는 일찍부터 우리ㄴㅏ라 미학계의 그러한 작업들을 비판하여 왔으나 이론적으로 전개시킬 수 없었다. 필자부터도 어릴 때부터 서양문화를 보고 듣고 배워 왔으니, 온갖 노력을 기울여 한국문화의 본질을 인식하려는 지금, 우리가 구사하는 용어나 개념들은 동서양의 것이 뒤죽박죽 뒤섞여 있어서 두 세계의 다름을 분명히 알고 있지 못하다. 역시 중국미술의 사상과 이론은 글씨와 그림에 집중되어 있어서 중국의 글씨와 그림을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 것도 이해할 수 없다. 서양미술을 알기 위해서는 그리스, 로마의 미술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처럼, 우리 미술을 알기 위해서는 중국미술을 공부해야 한다. 서화에 비하면, 불교조각을 그리스, 로마와 인도의 영향을 받은 외래적인 성격이 강한데 거기에서 얼마나 중국적인 것이 실현되었는지 살피고 있는 중이다. 다만 모두가 과도기 양식으로 보는 북제와 수의 추상화의 완성을 필자는 중국적인 성격의 완성이라고 보고 싶다. 그토록 시시각각 다르게 보이는 자연을 필자가 여러 앵글에서 살핀 것을 단 한 번에 살릴 수 있다면 그것을 오직 동양화에서만 가능하다. “중국화가는 실컷 돌아다니고 실컷 보며 한걸음 옮기면서 그 면면을 살피고, 그렇게 유람하며 충실히 수양을 쌓아 아름다운 산과 강이 가슴속에 역력해지면, 그것은 우주적 차원에서 그려 낸 것이다”라고 장파는 정리하고 있다. 서양화에서는 야외에 이젤을 세워놓고 자연을 직접 상대하여 초점투시로 자연을 사생하지만, 중국화에서는 그런 일이 결코 없었다고 한다. 그러니 우리나라의 이른바 진경산수도 우리의 산천과 사람이 그림에 나타났다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표현방법은 여전히 산점투시의 방법이다. 곽희의 삼원법은 산점투시의 카테고리에 든다. 겸재 정선의 광대한 <금강전도>는 산점투시법으로만 가능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민화야말로 때때로 산점투시의 극치를 보여 주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서양식 초점토시에 의한 엄밀한 사생은 동양화에는 없다.

(그림1) 김홍도, 송하취생도, 종이에 담채(고려대학교 박물관)
(그림2) 김홍도, 추성부도, 조선 1805년, 종이에 담채(호암미술관)

강우방, 『한국미술, 그 분출하는 생명력』(월간미술, 2001)에서 발췌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