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 비석머리 - 최순우
글쓴이 : 학예실     첨부파일 :       날짜 : 05-02-20    조회 : 4492
삼척 비석머리
 
강원도 삼척에 있는 동해 척주비 옆에 또 하나의 돌비석이 서 있다. 우리나라 시골에 가면 어느 곳에나 돌비석은 있지만 이 비석머리에 새겨진 무늬가 보여주는 야릇한 추상미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무엇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며 석공은 무슨 기쁨을 품고서 이것을 새긴 것인지 그 천진스러운 선의 율동과 원의 점철을 보고 있으면 마치 현대 추상미의 본바탕을 이런 데서 보는구나 싶은 느낌을 갖게 된다. 일렁이는 파도무늬를 새긴 것인가 하고 보면 크고 작은 동그라미가 불규칙하게 군데군데에 새겨져 있어서 산과 하늘 사이인 듯싶은 환상도 가져 보게 된다. 현대 추상미술이 난해하다는 말을 주위 사람들에게 자주 듣게 되고 또 현대시의 난해성을 말하는 분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말하자면 추상의 아름다움이란 알고 보면 그다지  난해한 것이 아니라는 본보기를 나는 여기에서도 본다는 느낌이 없지 않았다. 이 비석머리의 작자는 물론 무명의  석공에 불과하고 또 유식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도 짐작이 된다. 그러나 그 흔한 용을 새기고 싶었다면 하다못해 못생긴 지네만치라도 표현할 수가 있음직하고 산이나 물을 그리고 싶었다면 유치원 아이들 그림만치라도 못 그릴 까닭이 없었을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 비석머리의 작자는 소박하고도 단순한 선과 원을 새겨 넣으면서 그 나름으로 추상조형의 흥겨움을 감추지 못할 만큼 즐거웠던 것이 아닌가 한다. 물론 현대 지성작가들이 가지고 있는 이론이나 감흥의 발단과는 거리가 멀었다 해도 그는 이로써 일종의 추상 정신을 지니고 있었다고 보아야 옳다.  한국 사람들 특히 조선시대의 이름없는 목공, 석공,도공,화공들에게는 이러한 추상의욕이 스스로 마음 본바탕 속에 도사리고 있어서 작품에 그렇게 주저없이 표현되었던 것이 아닌가 싶은 작품들이 너무나 많은 것이다. 이렇게 써 놓고 보면 한국인들의 천성 속에는 추상미의 본바탕을 이루는 일종의 이상시각 감흥이 맥맥히 흘러 내려오고 있다는 말이 될는지도 모른다. 
 
(사진 1) 삼척 비석머리
 
최순우,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학고재, 1994) 에서 발췌했습니다.